[국내 타이틀]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2005-06-20
글 : 듀나 (영화평론가·SF소설가)
작가, 감독이 들려주는 진짜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한국 영화광들의 세계에는 세대를 갈라놓는 깊은 골이 존재한다. 만약 5, 60년대에 옛 할리우드 영화들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며 자랐다면 여러분은 ‘추억의 영화’ 팬이다. 만약 <스크린>이나 <로드쇼>를 읽고 키에슬로프스키나 타르코프스키의 이름을 암기하면서 자랐다면 여러분은 지금 세대의 영화광이다. 물론 그 이후에도 세대를 가르는 건 어렵지 않다. <로드쇼> 세대와 지금 세대의 취향은 또 다르니까. 하지만 이들 사이의 골은 이들과 ‘추억의 영화’ 팬들을 갈라놓는 골만큼 깊지는 않다.

안정효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정지영의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는 (안정효의 표현을 간접적으로 인용한다면) 이런 ‘추억의 영화’ 광들의 단체 사진이다. 할리우드 영화를 보며 5, 60년대를 성장해온 두 영화광 병석과 명길의 이야기는 당시 극장에서 지내며 젊은 날을 보냈던 모든 영화광들이 나누었던 경험의 집합일 수도 있겠다.

여기에 정지영은 또 하나의 차원을 추가한다. 안정효의 소설이 50년대 할리우드 영화 팬들의 회고라면 정지영의 영화는 90년대 초 미국 직배 반대 투쟁을 벌였던 한국 영화인들의 현재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몇 살 차이가 나긴 하지만 비슷한 경험을 하며 자랐던 두 남자의 삶은 여기서 하나로 합쳐진다.

유감스럽게도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에서 가장 멋있는 부분은 대부분 그런 개념적인 것들이다. 이것들이 실제 영화에 투영된 결과는 다소 실망스럽다. 가장 기초적인 문제점들은 연기이다. 어린 배우들은 기초적인 고유명사 하나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나이 든 배우들의 연기는 매너리즘과 폼으로 굳어 있다. 중간 부분을 연기한 홍경인과 김정현은 좋은 연기를 보여주지만 여전히 영화를 마음 놓고 볼 수 있는 정도는 아니다. 안정효의 달콤씁쓸한 회상에 90년대 현재의 정치성을 부여한 정지영의 시도도 지금 와서 보면 실패한 게 분명하다. 특히 메시지가 분명해지는 후반부에 들어와서는 예술적 어색함이 온 몸을 찌른다.

그러나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의 몇몇 부록은 꽤 흥미롭다. 가장 흥미로운 건 안정효와 정지영의 음성해설. 이들이 영화 내내 나누는 회고담은 다소 억지스러운 본편 영화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유려하며 솔직한 오리지널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이다. 이미 본 편을 본 사람이라면 처음부터 이 음성해설을 들어봐도 좋겠다.

다른 부록들은 스펙트럼의 많은 한국 영화 부록들이 그런 것처럼 다소 지나치게 교과서적인 느낌을 주지만 모범적이고 알차다. 특히 이 DVD를 위해 직접 찍은 안정효의 인터뷰가 그렇다. 정지영이 고향 충주를 방문해 찍은 KBS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은 원작 속에 묻혀 비교적 덜 드러나는 정지영의 사적 경험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준다. 그러나 동경영화제 클립은 <하얀 전쟁> 당시의 기록이라 이 디스크엔 별 의미가 없는 것 같고 장선우의 <씻김>에서 발췌한 정지영 파트는 적당히 예의 차리는 정도의 의미 이상은 없는 것 같다.

안정효 작가
정지영 감독(좌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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