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희극지왕을 꿈꾸며, <이대로, 죽을 순 없다>의 최성국
2005-08-18
글 : 박은영
사진 : 이혜정

사자가 배고프다고 풀 뜯어먹나? 최성국은 미니 홈피에 자신의 좌표를 이렇게 적었다. 선이 굵은 미남형 탤런트로 멜로드라마에서 자주 보아왔던 최성국이 어느 날부턴가 우릴 웃기기 시작했다. 사정없이. 거슬러올라가보면, 시트콤 <대박가족>에서 미모와 저음에 어울리지 않는 엉뚱한 행동들을 자주 연출했다고 쳐도, 영화로 옮겨온 뒤의 변신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색즉시공> <낭만자객>에서 그는 폼생폼사하려다 망가지고 마는 캐릭터들을, 시침 뚝 떼고 진지하게 연기했더랬다. 신작 <이대로, 죽을 순 없다>에서는 강력반의 막내 형사로서, <투캅스>의 열혈 형사 김보성을 연상시키며 등장했다가, 자신의 선배인 이대로 형사(이범수)를 추종하면서, 한없이 최성국스러워지는 변화의 과정을 보여주었다. 작품 속에서나 오락 프로그램에서나, 그가 웃기는 순간은, 모든 표현이 너무 진지하고 솔직해서, 멜로스러운 외모와 부조화를 이룰 때다. 그는 그런 편견이 불만스럽다. “왜 잘생긴 사람은 멜로에서 슬픈 사랑만 하고, 우락부락한 사람은 액션에서 싸움질만 해야 하죠?” 데뷔 이래 7년 동안 멜로 연기자로 인식됐던 그가 ‘코미디 예찬’을 늘어놓는 것을 보면, 늦바람이 무섭긴 무섭다.

-내년 여름까지 작품 스케줄이 꽉 차 있다던데.

=사람이 없다고 하더라. 내 또래, 내 스타일의 연기자가 없다고.

-갑자기 왜들 이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할 것 같다.

=11년 동안 2개월 이상을 쉬어본 적이 없다. 7년 동안 드라마를 38편 했고, 그중에서 주연만 27편이었다. <대박가족> 하면서 <색즉시공> 들어갔고, <낭만자객> 한 뒤에 <압구정 종갓집>을 했고 그러면서 <상상 플러스>를 했고 <이대로, 죽을 순 없다>를 하고, 이어 <연리지>를 하고 있다. 계속 맞물려 돌아가는 식이었다.

-<이대로, 죽을 순 없다>는 어렵게 출연 결정을 내렸다고 들었다.

=조심스러웠다. 워낙 바보 짓에 독한 연기를 한 뒤라, 다음 영화 걱정이 많이 됐다. 장르를 못 찾겠더라. 걱정했는데, <이대로, 죽을 순 없다>는 위험 요소가 적었다. 항상 우두머리 역할만 하다가 막내 역할은 처음이라 부담이 덜했다. 스토리라인에 안 걸리는 주변 인물로 지루하지 않게 웃음 소스를 주는 역할이다보니 괴리감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같이 하는 배우들이 좋아서 결정했다. <씨네21>하고 인터뷰가 처음이던가? 그럼, 처음이니까, 이 얘기를 해볼까. (정색하고) 내 목표가 뭐인 것 같나?

-목표?… 짐작하기 힘든데.

=상을 받는 코미디영화에 있고 싶다. 우리 영화계는 이상한 엄숙주의에 빠져 있는데, 나는 가르치려는 영화가 싫다. 희로애락의 감정에 빠져들게 하는, 엔터테인먼트의 기능이 중요한 거 아닌가. 그런데 먹물 든 10%의 지식층이 선호하는 작품만 평가받는 게 현실이다. 가볍다고 뭐라고 하는데, 왜 모든 영화가 무거워야 하나. 그러니까 우리나라에 <인생은 아름다워> 같은 영화가 안 나오는 거다. 로맨틱코미디, 정통 코미디가 인정받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고, 그 첫 작품에 내가 같이 있고 싶다.

-그 좋아하는 코미디를 시작한 건 최근의 일이다.

=그게 다, 멜로로 시작해서 그렇다. 당시엔 집 앞에서 울면서 기다리는 여자들도 있었다.

-코미디로 발을 내딛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어떤 계기였나.

=<좋은 친구들> <대박가족>으로 코믹한 연기를 시작했는데, 어느 날 ‘윤 대리’라는 사람의 전화를 받았다. LG애드 윤제균 대리. <두사부일체>라는 영화로 감독 입봉 준비 중인데, 같이 일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알게 됐는데, 어느 날 울먹거리면서 전화를 했더라. 같이 못하게 됐다고. 그래서 그가 감독직에서 잘린 모양이다 생각했는데, 내가 잘린 거였다. 자기한테 힘이 생기면, 꼭 같이 하자고 해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일곱달 뒤쯤 진짜 전화를 했다. 무조건 같이 해야겠더라. 그 작품이 <색즉시공>이었다.

-차기작 <연리지>는 정통 멜로이고, 코믹한 역할도 아니다.

=궁금해서 해보겠다고 했다. 나한테 정통 멜로를 같이 하자고 하다니, 어떤 사람들이고 무슨 생각인지 궁금해서.

-그 다음 출연 작품들은 코미디라고 했다. 이전 작품들과 어떻게 다른가.

=<이대로, 죽을 순 없다>를 기점으로, 강도가 낮은 코미디, 연기와 감동의 포인트를 노리는 시나리오들이 들어온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상상 플러스> 같은 TV프로에서 내 얘기를 많이 하면서 달리 보이게 된 게 아닌가 싶다. 나는 카메라 앞이라고 달라지지 않는다. 그냥 하던 대로 카페에서 수다 떨듯이 얘기하는데, 그게 웃기면서 무게감도 있고 그런가 보더라.

-현실에서도 웃겨주길 바라는 기대에는 어떻게 대응하나.

=별로 안 웃기시네요, 너무 무서워요,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 있다. 그럼 돈 줘봐, 웃겨줄게, 그런다. 직업이 연기자일 뿐인 사람한테 늘 웃기길 기대하는 건 무리다.

-언제 처음 연기를 하겠다고 마음먹었나.

=삼수하기 싫어서, 집에서 가까운 학교를 찾다가 지원한 곳이, 서울예대 연극과였다. 현역 때는 의대를 지원했고, 재수할 때 문과로 바꿔서 정치학과를 지원했는데, 떨어졌다. 원래 내 꿈은 전원에 목조 카페 짓고, 개 한 마리 키우며 사는 거였다. 전공이 뭐든 상관없었다. 탤런트 시험을 보게 된 건, 길을 가다 커다란 호텔을 보고, ‘갖고 싶다’는 충동이 생겨서, 몸뚱이로 돈 버는 일을 생각하다가 내린 결론이었다.

-이제 좀 덜 망가져야겠다거나, 다른 모습을 보이고 싶은 욕심은 없나.

=망가지는 연기도 연기다. 연기자가 그걸 안 하면, 누가 하겠나. 멋있는 것만 할 생각이었으면 모델 했지, 연기자 안 했다.

-이 말만은 꼭 해야겠다, 별렀던 멘트가 있었나.

=<연리지> 제작발표회 때 일본 기자랑 인터뷰하는 자리에서 한참을 기다린 끝에 한국의 맛집을 추천해달라는 질문을 받았다. 화가 나서 중단하고 나왔고, 이동하던 차 안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홈페이지에 나의 꿈을 적어놓았는데, 그중 하나가 ‘아시아인들이 내가 나온 영화를 나 믿고 사보게 하는 것’이다. 한국에는 왜 주성치, 성룡, 기타노 다케시 같은 사람이 없을까, 내가 그런 사람이 돼야지 결심했던 기억이 났다. 캐릭터를 갖고 있는 아시아의 별. 하긴, 이제 겨우 세 번째 작품이다. 더 내공을 쌓아서, 마흔 전에 이룰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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