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게릴라 영화들의 축제가 열린다, 서울영화제
2005-08-31
글 : 김수경
온·오프라인 아우르는 서울영화제, ‘모바일&DMB’영화제 포함해 9월1일 개막
SeNef 2005 공식포스터

온·오프라인을 아우르는 서울영화제(이하 SeNef)가 여섯 번째로 열린다. 단성사에서 9월1일부터 8일 동안 개최되는 이번 SeNef는 일곱개의 섹션에서 160여편의 작품을 선보인다. 전방위적으로 펼쳐지는 SeNef의 진행방식은 변함이 없다. 단성사 전시관과 쌈지길에서 개최되는 삼성미디어라운지는 8월25일 이미 시작되었고, 국내 최초의 ‘모바일&DMB’영화제는 TU미디어 채널 블루와 KTF핌 서비스를 통해 7월부터 제공되는 중이다. 온라인의 넷페스티벌도 지난 5월에 이미 문을 열었다.

제6회 SeNef의 개막작은 구스타프 도이치 감독의 <세계의 거울, 영화: 에피소드 1-3>이다. 2003년 SeNef를 통해 소개된 <세계의 거울, 영화: 1-12>의 후속 연작인 이 작품은 ‘영상’을 통한 영화사적 성찰과 고고학적 접근을 꾀한다. <세계의 거울…>은 1912년부터 1930년 사이에 남겨진 과거의 기록 영상을 통해 당대 역사의 함의를 재해석하는 ‘역사적 콜라주’라 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와 유럽을 넘나드는 이 작품은 수동적으로 대상을 따라다니는 일반적인 다큐멘터리 문법과는 거리가 있다. 이 영화의 시선은 기록된 대상의 이면에 있는 사회문화적 배경을 추적하고 재구성한다. 기록 영상에 나타나는 익명의 인물들과 정경의 의미를 퍼즐 맞추듯 조합하고 이를 역사적 사건들과 연결시켜 새로운 의미를 구성한다.

경쟁부문인 국제경쟁은 디지털 작품에 한정했던 전년과는 달리 모든 매체와 장르에 문호를 개방했고 총 14편이 출품되었다. 이즈미 다카하시의 <어느 아침의 수프>는 강박 공포에 시달리는 남자 기타가와와 여자친구 시쥬간의 집요하고 끈질긴 설득의 줄다리기를 다룬다. 채 10평이 되지 않는 기타가와의 방안에서 롱테이크로 두 사람의 대화를 잡아내는 카메라의 시선은 지극히 건조하다. 인간의 목소리보다 주변음이 큰 소리로 강조되는 사운드의 구성도 긴장감을 조성한다. 기타가와 역을 맡은 히로마사 히로스에의 능숙한 감정 표현이 드라마에 힘을 실어준다. 라파엘 나자리의 <아바남>도 한 여성이 사회와 빚는 불화와 균열을 이야기한다. 텔아비브에 있는 아버지의 회계 사무실에 근무하는 미쉘은 적당히 바람도 피우고 즐겁게 사는 유부녀다. 그러나, 애인이 자살테러로 죽음을 맞이하면서 그녀의 인생도 급변한다. 새로운 시나고그(라비의 배움터)의 건립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미쉘의 감정은 폭발한다. 무작정 아들을 데리고 길을 나선 그녀는 이제껏 실감하지 못한 냉대에 직면한다. 이스라엘의 엄격한 사회구조와 관습이 무거운 공기처럼 시종일관 화면에 묻어난다.

개막작 <세계의 거울, 영화: 에피소드 1-3>

공식 비경쟁 부문인 ‘오버 더 시네마’에는 LA 게릴라영화의 대명사 그렉 아라키의 <신비로운 살결>, 크메르루즈 대학살의 기억을 거슬러오르는 리티 판의 <불타는 극장의 배우들>, 알렉산더 소쿠로프가 자신이 살아가는 도시에서 코진체프의 추억과 모차르트의 음악을 탐색한 다큐멘터리 <상트 페테르스부르크 일기>, 아시아 아르젠토가 연출한 두 번째 장편 <아르젠토의 이유있는 반항>이 포진되었다. 자신들만의 독립된 채널을 계획했던 라디오헤드의 꿈이 담긴 뮤직비디오 모음 <라디오헤드 TV>와 도발적인 필 멀로이가 만든 9편의 ‘익스트림 애니메이션’도 놓쳐선 안 될 작품들이다. 다큐멘터리와 SF영화를 구분할 수 없도록 걸쭉하게 스튜처럼 끓여낸 베르너 헤어초크의 <거친 창공 너머>는 길을 잃은 우주비행사들이라는 상상력에 1947년 미국 로스웰에서 벌어졌던 ‘우주선 발견’ 실화를 밀어넣는다.

‘이미지독’ 섹션은 사운드와 이미지라는 영화의 두 가지 주요 성분에 대해 본질적으로 질문하는 작품들로 채워져 있다. 전체 6부작으로 기획된 베르네 케네스의 <미디어 매지카>는 앤서니 무어의 음습한 음악과 만화경의 이미지로 시작된다. <미디어 매지카>는 영화를 만들어낸 토대가 된 그림자극, 삽화, 그림판 놀이, 스텐실, 종이로 만든 스테레오타이프 등 19세기의 ‘영화 이전의 영화’로 존재하던 마술들을 친절히 소개하는 다큐멘터리다. 이 섹션에 속한 SeNef의 국제경쟁 심사위원으로 위촉된 토니 콕스가 만든 <1!>은 영상이 아닌 전자음과 세세한 록의 연표들을 자막으로 써내려가며 그것의 사회적 의미를 되묻는다. 미카 타닐라의 <옵티컬 사운드>는 <1!>보다 도발적인 표현 방식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구형 도트 프린터의 소리만으로 전위적인 관현악곡을 만들어낸다.

이외에도 한국영화 섹션인 ‘자화상’에는 진자처럼 반복되는 일상을 포착한 윤태식의 <된장>, 군중 속의 개인을 선·형의 반복과 생성의 이미지로 그린 애니메이션 <Yellow3>, 인간관계와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경계에 대해 묻는 다큐멘터리들인 정호연의 <엄마를 찾아서>와 박태영의 <섬>이 자리했다. 매년 SeNef를 방문하는 일반관객에게 열광적인 반응을 끌어냈던 뮤직비디오와 파티가 결합되는 ‘주크박스 미드나잇’은 폐막파티를 겸해 클럽의 메카 홍익대에서 치러진다. 자정을 지나면 DJ 수퍼플라이가 파티를 달아오르게 할 것이다.

고다르의 영화혁명 동지를 만난다

마니페스타 섹션에서 10편 상영하는 장 피에르 고랭

1968년 5월혁명이 끝나자 고다르의 마음은 온통 마오쩌둥을 향했다. 마오이즘에 빠진 <카이에 뒤 시네마>의 기수 옆에는 <르몽드>의 편집장이자, 5월혁명의 시위대를 주도했던 장 피에르 고랭이 있었다. 그뒤 지가 베르토프 그룹을 결성한 두 사람은 1975년 <여기 그리고 다른 곳>을 만들 때까지 공동으로 각본을 쓰고 연출하며 동고동락했다. SeNef가 ‘정치적 담론과 영화’라고 부제를 단 ‘마니페스타’ 섹션에서 그 시절 두 사람이 만든 영화들을 대거 선보인다. 고다르와 고랭의 실질적인 첫 공동작업인 <동풍>은 장르영화인 서부극의 전복을 통해 의도적으로 몽타주를 해체시키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탈리아 투쟁>은 알튀세르의 호명이론에 따라 이데올로기를 해체하는 과정을 그린다. 역할극과 카메라 안과 밖을 넘나드는 토론이 주된 방법이 된 <블라디미르와 로사>를 관통하면, 반자본주의 영화의 대표작 <만사쾌조>와 만난다. 이 영화는 그들 작품 중 가장 상업적이라 평가되며, 동시에 가장 많은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만사쾌조>는 제인 폰다와 이브 몽탕 같은 스타들을 동원해 스타시스템에 역공을 가하고 세트의 안과 밖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68혁명의 불완전했던 상태를 비판한다. <만사쾌조>의 보론격인 <제인에게 보내는 편지>와 <여기 그리고 다른 곳>을 끝으로 고랭은 미국으로 떠난다. ‘남부 캘리포니아 삼부작’을 포함하여 그가 미국에서 만든 작품도 상영된다. 이번 영화제를 위해 내한하는 장 피에르 고랭은 9월5일 강연에도 참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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