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부르는 플레이백 싱어, 춤추는 아이템걸을 아시나요
소수민족의 독립운동 세력인 테러리스트를 취재하던 방송 기자와 무장 테러단체의 일원인 여주인공의 사랑을 그린 영화 <딜세…>는, 열차 위 흥겨운 군무장면으로 유명하다. 가만히 앉아 있기도 힘든 달리는 열차 꼭대기에서 촘촘히 모여앉은 사람들이 위험천만한 춤을 선보인다. 이때 배꼽을 드러내는 전통의상을 입고, 주인공 샤루칸과 아슬아슬한 커플 댄스를 선보이는 아리따운 무용수, 말래카 아로라는 단연 돋보이는 존재. 이 유명한 장면만 접한 사람이라면 여주인공은 당연히 아로라라고 여길 것이다. 그러나 이후 아로라의 얼굴은 더이상 볼 수 없다. 중요한 장면에서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 것이 그녀의 임무였던 것.
언젠가부터 발리우드영화에는 이처럼 전체 내용과는 무관하게 등장하여 인상적인 춤을 선보이는 여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이들은 아이템걸로 통한다(<까알>의 오프닝처럼 영화와는 아무 관계없이 관객몰이를 위해 삽입되는 노래는 아이템송이다). 심오한 연기를 선보이는 배우를 꿈꾼다면 이러한 비아냥거리는 호칭이 마음에 걸릴 수 있겠지만, 아이템걸들은 여배우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는 당당한 대중문화의 스타다. <딜세…>의 아찔한 춤으로 스타덤에 오른 아로라 역시 “영화의 주인공이 꼭 되어야 한다거나, 틀에 박힌 여배우가 되고 싶었던 적은 없다. 무엇보다 난 춤추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고 말한다. 사실 <딜세…> 이후 아로라는 몇편의 영화에 배우로 출연했지만, 대중은 연기하는 아로라보다는 춤추는 아로라를 더 좋아했다고.
뜬금없이 섹시한 춤을 선보이는 무용수도 신기하지만, 매번 노래장면에서만 배우에게 목소리를 대신하는 플레이백 싱어 역시 낯설다. 발리우드영화를 처음 접한 사람이라면 배우가 대사를 할 때와 노래를 부를 때 목소리가 변하는 것을 기이하게 여겼을 것이다. 발리우드영화 속 대부분의 노래는 배우가 아닌 플레이백 싱어가 부른다. 발리우드의 각종 영화상 중 플레이백 싱어 부문은 모조리 석권한 소누 니감 역시 엄연한 발리우드의 스타다. 최근 그가 노래한 영화 <까알>은 발리우드의 다른 영화 O.S.T처럼 개봉 3개월 전 출시됐고, 당연하다는 듯 인기를 끌고 있다. 뭄바이의 고급맨션에 위치한 그의 집 응접실엔 온갖 트로피가 가득하다. 한쪽 벽엔 1942년부터 현재까지 350편이 넘는 영화 속에서 젊은 여배우의 목소리를 대신한 전설적인 플레이백 싱어, 라타 만게슈카르의 사진이 걸려 있고, 반대편엔 니감이 3살 무렵 처음으로 노래를 부르기 위해 무대에 올랐던 사진이 놓여 있다. 가수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니감은 지난 20년 동안 150편의 영화 속 노래를 불렀다.
영화 노래는 물론 자신의 음반, CM송까지 불어야 하는 니감은, 최대 하루 18곡까지 녹음했다고 회고한다. 실제로 그가, 새 영화 <Mr.&Miss>의 노래를 처음으로 접한 자리에서 30분 만에 녹음에 들어가는 광경을 목격했다. 악보도 보지 않고 감정을 실어 노래하는데 가사를 외우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의 매니저는 매일 2, 3곡씩 꼬박꼬박 녹음하는 니감이 1곡을 마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대부분 15분, 최장 1시간이 고작이라고 덧붙인다. 발리우드영화 속 노래는 인물의 풍부한 감정을 전달하는 중대한 도구. 단순히 음정과 박사, 가사를 기계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연기에 버금가는 가창연기가 필요함을 생각할 때 이는, 엄청난 속도다. 니감에 따르면 “목소리만으로 로맨틱함, 슬픔, 기쁨, 분노 등의 극단적 감정을 전달하는 테크닉이, 플레이백 싱어에겐 필수적”이다. 니감도 아로라와 마찬가지로 몇편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별다른 재미는 보지 못했다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 발리우드영화의 세계적 인기에 힘입어 전세계에 팬을 거느린 그에게, 무비스타는 그닥 매력적인 존재가 아닐 것이다.
저마다 다른 영화에서 매번 다른 춤을 추면서 일관된 배역을 맡지 않는 아이템걸과 제각기 다른 나이와 성격의 숱한 캐릭터에게 목소리를 빌려주지만 정작 자신의 얼굴을 스크린에 전시하지 않는 플레이백 싱어. 그리고 이들을 배우가 아니라 그 자체로 사랑하는 무수한 팬. 이들이야말로 현재의 발리우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멤버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