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2006 한국영화 기상도 [3] - 액션·스릴러·범죄
2005-11-02
비열한 뒷골목엔 비가 내린다

LA의 인터넷 포르노사이트 운영진을 배경으로 음모와 배신을 그리는 누아르 스타일 영화 <러브 하우스>(감독 김판수·출연 박상욱)는 LA 촬영을 마치고 현재 후반작업 중이다. 컴퓨터 전문가가 사업가의 꾐에 빠져 범죄의 세계를 경험한다는 이야기 <모노폴리>(감독 이항배·출연 양동근, 김성수)는 현재 촬영 중이며, 세상의 ‘예의없는 것들’을 상대하는 한 농아 킬러의 이야기 <예의없는 것들>(감독 박철희·출연 신하균)과 통일 1년 뒤 일어난 쿠데타를 그리는 <9시뉴스>(감독 김두영·출연 최윤영, 김정욱)는 캐스팅을 마치고 촬영에 돌입할 채비를 하고 있다. 허영만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노름에 빠지면서 음모와 배신 속에 휘말리는 주인공을 그리는 <타짜>(감독 최동훈)와 진정한 고수가 되기 위해 전국을 누비는 두 청년의 이야기 <무림고수>(감독 임순례)는 시나리오를 다지고 있다.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오는 것인가. 떼인 돈 받아내는 해결사 역할로 만족하며 사는 삼류조직의 2인자 병두(조인성). 철거촌에 살며 홀어머니와 두 동생을 부양하는 그는 조직 내에서도 철저히 무시당하는 인간이다. 어렵게 따낸 오락실 경영권마저 후배에게 뺏긴 그에게 어느 날 조직의 뒤를 봐주는 황 회장(천호진)이 제안을 해온다. 미래를 보장할 테니 자신을 괴롭히는 부장검사를 처리해달라는 것이다. 위험한 거래를 받아들인 그는 과연 비열한 거리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유하 감독의 전작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현수가 쌍절곤을 꺼내드는 순간이 “조폭이 생성되는 순간을 보여줬다”면, <비열한 거리>는 “조폭이 소비되는 과정”을 보여준다고. 제작진은 영화감독이 되어 병두를 찾아온 친구 민호(남궁민)를 통해, 조폭이 실은 비린내나는 사회의 먹이사슬 중 가장 하층에 위치한 존재들임이 드러난다고 덧붙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종의 상부상조로 출발한 보험제도는 현대와 와서 종종 피비린내 나는 살인극을 빚는 빌미가 되곤 한다. <검은집>의 모티브는 바로 이 보험이다. 보험회사 직원 신우는 한 고객의 불만 섞인 상담요청을 받은 뒤 그의 집을 찾아갔다가 고객의 어린 아들이 자살한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보험금을 노린 살인극일 수도 있다고 의심한 그는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하고, 이 사건이 잇단 의문사와 관련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영화의 원작은 제4회 일본 호러소설 대상 수상작 기시 유스케의 소설 <검은집>이다. 1999년 일본에서 영화화되기도 했다. 전작 <거울속으로>를 통해 백화점이란 현대적 공간이 품은 공포를 묘사했던 김성호 감독은 물리적 공간뿐 아니라 인간 내적 공간에 깃든 어두움을 드러낼 전망이다.

1988년 10월 올림픽 게임의 흥취에 아직 젖어 있던 그때, 이른바 지강헌 사건이 일어난다. 재소자 지강헌이 탈주하여 인질극을 벌인 것. 지강헌이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외친 것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몰고왔던 사건이다. 영화의 제목인 <홀리데이>는 경찰과 대치 중이던 지강헌이 경찰에 틀어달라고 요구한 비지스의 음악 제목에서 따온 것. 영화는 이 소재를 탈주범 지강혁(이성재)과 교도소 부소장 김안석(최민수)의 대결 구도로 풀어낼 예정이다. 경찰관 김안석의 총에 후배를 잃은 지강혁과 김안석, 그 둘은 교도소 재소자와 부소장으로 다시 만난다. 김안석은 지강혁을 끝없이 괴롭히고, 강혁은 탈옥한다. 영화는 다시 지강혁과 김안석의 대치로 치닫는다.


퇴물 형사는 수술비가 필요했고, 누명을 쓴 청년은 복수를 해야 했다. “누명을 벗는 일을 도와주면 수술비를 마련해주겠다.” 수현(천정명)과 성우(박중훈)는 이렇게 서로에게 유리한 조건을 주고받으며 일시적인 연대를 맺는다. <강적>은 인생 막다른 골목에 처한 비루한 두 남자가 서로를 믿지 못하면서도 협력할 수밖에 없는 관계를 다룬 액션드라마다. 전작 <정글쥬스>에서 두 양아치 청년이 우연히 마약을 손에 넣으며 겪는 소동을 코미디와 액션으로 풀어냈던 조민호 감독은 두 번째 영화 <강적>에서 액션을 확장하고 휴먼드라마의 숨결을 강하게 녹여내고자 한다. 대사도 처절하다. “난 뼛속까지 다 닳아서 너덜너덜해졌거든. 그래서 난 걸리는 게 없거든.”(성우) “좃 같은 세상. 시궁창같이, 빠져나오려고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달라지는 게 하나도 없어.”(수현) 원제가 <죽기를 각오하다>였던 <강적>의 액션은 감독의 의도대로라면 “끝까지 사력을 다할 때의 액션”이 될 것이다. 죽기를 각오한 성우와 수현의 공간은 종로. 9월 말 촬영을 시작한 <강적>은 광화문에서 피맛골 거리를 거쳐 종로4가에 이르는 뒷골목 곳곳을 누비고 있다.

복수 의식을 끝끝내 치러야 하는 한 건달의 일주일을 따르는 영화. 절친한 형의 죽음을 앙갚음하기 위해 재문(설경구)은 상대파 중간 보스인 대식(윤제문)의 고향인 벌교로 향한다. 대식은 이미 험한 바닥 생활을 정리한 상태. 조직의 허락없이 단독 복수를 결행키로 한 그는 후배 치국(조한선)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대식을 찾는 데 골몰한다. 대식의 엄마를 만나면서 잠깐 의지가 흔들리지만, “죄책감인지 수치심인지 모를 감정에 휩싸인” 재문은 결국 마을 체육대회가 열리는 한 학교의 교실에서 대식과 맞닥뜨린다. “조폭이 등장하지만 액션이 주가 되는 영화는 아니다. 선악을 동시에 갖고 있는 사람의 본모습이 재문을 통해 제대로 드러나서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그런 영화였으면 좋겠다.” 영상원 출신인 이정범 감독은 시나리오를 읽은 뒤 설경구가 남긴 말이 “정”(情)이었다며, 끈적끈적한 삶을 묘사하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말한다.

변두리 허름한 이발소의 이발사 안창진(성지루). “이발도 예술”이라고 자부하는 그는 어느 날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 김양길(명계남)로부터 영문을 알 수 없는 협박을 당한다. 감당하지 못할 사채까지 끌어다 쓰고, 자신의 아내가 희롱당하는 것을 바라봐야 하는 안창진. 결국 흥신소에 의뢰해 김양길의 뒷조사를 시작하고 너무나 뜻밖인 김양길의 정체에 안창진은 당혹스럽다. 점점 목을 죄어오는 협박의 그물에서 벗어날 방도를 찾지 못한 안창진도 응전을 모색한다. 결국 이발소에서 선혈이 낭자한 살인사건이 벌어지지만, 그 사건의 진실은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협박하는 자와 협박당하는 자, 악한과 선인의 구분도 무의미한 어쩌면 슬픈 두 남자의 운명적 대결이다. 도식적인 선악의 구분은 무의미해지고 이 진실의 영역 안에는 가해자도 피해자도 없다. 다만, 일류가 되지 못한 인간들의 절절한 존재증명의 메아리가 깊고 긴 여운을 남긴다. 서울예대 광고창작과를 졸업한 뒤, 미주리주립대와 캘리포니아주립대에서 영화를 전공한 오기현 감독의 장편데뷔작.

세상은 전쟁터다

<사생결단>의 최호 감독 (이메일 인터뷰)

-마약 세계를 영화화하게 된 계기는.

=그 세계가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기 때문이고, 강자들이 친 연막 때문에 우리 사회에선 확연히 드러나지 않는 모순이 그 세계에선 선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자료조사와 인터뷰를 직접 했다.

=그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며 취재했다. 실제 에피소드라기보다는 그들의 말에서 느껴지는 일상의 원리원칙들을 드라마에 적용했고, 주로 대사에서 그들이 쓰는 용어, 농담, 비유 등을 많이 반영했다.

-어떤 이야기이고, 그 속에서 무엇을 보여주려 하는지.

=모두에게 세상은 전쟁터라는 것. 특별한 그들만이 아니라 우리 역시 마찬가지로 약육강식의 들판 위를 브레이크 나간 이동수단을 타고 질주하고 있다는 것. 엔딩을 보며 ‘그래. 이래’ 하고 무릎을 칠 것이다.

-작품 규모와 액션 스타일이 궁금하다.

=내가 붙인 수식은 ‘남성오락대작’이었다. (후카사쿠) 긴지의 70년대 영화 예고편을 보다가 따온 개념이다. 스케일은 중요치 않고, 누아르 장르와 다큐적 생동감을 접목시키는 것이 스타일의 주안점이다. 개인 취향상 멜빌에서는 멀고, 줄스 다신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준비 단계에서 긴지의 70년대 야쿠자영화를 즐겨 봤다.

-황정민과 류승범, 두 배우에게 무엇을 주문하고 있나.

=스타일에서의 주안점과 마찬가지로, 장르적 캐릭터와 생생한 캐릭터 둘 다를 현신해달라고 스트레스를 마구 주는 중이다.

-조연 명단에 김희라씨가 있다.

=<짝코> <증발> 등의 김희라씨가 맞다. 부산에 오늘 도착해서 촬영준비 중이다.

-부산 올 로케를 결정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부산의 특별한 그들을 만나며 만든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영화 안에 ‘부산 갈매기가 부산을 몬 뜨는 이유’가 나온다. 음습한 다이내믹의 도시, 과거와 현대가 무질서하게 공존하는 도시. 부산일 수밖에 없다.

변두리 토박이 스릴러랄까

<구타유발자들>의 원신연 감독

-시나리오가 2004년 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 최우수 작품이다. 어떤 내용인가.

=메인카피로 ‘변두리 토박이 스릴러’를 생각 중이다. 바람둥이 음대 교수가 뮤지컬 배우 오디션장에서 만난 자신의 여학생을 꼬셔서 서울 외곽으로 나간다. 교수로부터 극적으로 도망친 여학생은 행방이 묘연해지고, 그녀를 찾아나선 교수는 산속에서 수상한 동네 토박이 다섯명과 맞닥뜨린다. 그리고 이들은 상상 이상의 폭력적 상황에 빠진다. 스릴러라는 장르의 특성상 기대해도 좋은 반전도 기다리고 있다.

-작업은 얼마나 진행됐나.

=등장인물이 교수, 여학생, 토박이, 경찰까지 여덟명인데 모두 주연이다. 현재 캐스팅은 마쳤고, 11월5일쯤 촬영을 시작할 것이다. 모든 사건이 한곳에서만 일어나고 실내 촬영도 없이 자연경관 그 자체를 배경으로 한다.

-데뷔작인 <가발>과 비교할 때, 준비하는 심정은 많이 다를 것 같다.

=아무래도 한 작품을 해봐서 그런지 순발력이 많이 는 것 같다. 일단 <구타유발자들>은 스스로 작업한 시나리오인 만큼 훨씬 마음이 편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가발>에 대해서도 후회는 없다. 하고 싶었던 얘기를 했을 뿐이고, 관객도 다음 영화를 통해서 내가 하려던 얘기가 무엇인지를 알게 될 테니까.

-촬영을 앞두고, 가장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대사량이 많고, 영화 속 상황 자체가 굉장히 흉포함에도 촬영 회차는 적다. 그래서 대부분의 상황을 연극적으로 구성하려고 한다. 배우들은 10분, 20분짜리 테이크를 이어서 연기하고, 두세대의 카메라를 동원해서 그것을 날것 그대로 잡는 것이 목표다. 일종의 도그마영화를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글 <씨네21> 취재팀·사진 <씨네21> 사진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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