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루이스는 생전에 아이들과 어울려 있는 것이 항상 불편했다. 마흔 한살즈음, 2차대전의 폭격으로 집을 잃은 런던의 피난 아동들 몇 명을 제 집에 머물게 하면서 비로소 아이들에게 애정을 느끼기 시작한 그는 그 때 처음 <나니아 연대기>에 관한 영감을 떠올렸다. 간단한 노트만을 기록해두고 집필을 계속 미뤄온 루이스는 6년 뒤에야 <나니아…> 시리즈 첫번째권 <나니아 연대기: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7권으로 이뤄진 <나니아…>는 지난 50년간 세계적으로 1억부가 팔려나갔다.
<반지의 제왕>과 <해리 포터>가 판타지 프랜차이즈의 최고 쌍봉을 사이좋게 점령하고 난 영화 시장에 뒤늦게 <나니아…>가 나타났다. 원작의 유명세를 감안할 때 영화화 자체는 놀랍지 않다. 원작 7권 중 다섯 권을 영화화할 것이라는 제작사 월든 미디어와 브에나비스타의 원대한 계획도 놀랍지 않다. 다만 영화 <나니아…>는 <반지의 제왕>과 <해리 포터> 사이에서 어떤 개성과 미덕을 가진 판타지 영화로 시장 안에서 자리매김할 것인지 궁금했다. 지난 11월14일 (루이스의 고향 아일랜드가 아닌) 잉글랜드에서 세계 최초 프리미어를 가진 <나니아 연대기: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을 미리 뜯어보자. 감독 앤드루 애덤슨과 주연배우 틸다 스윈튼, 프로듀서 마크 존슨 등 현지 인터뷰도 함께 싣는다.
<나니아 연대기: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을 영화화한 제작자 페리 무어는 영화 개봉을 앞두고 사적인 어투로 가득한 메이킹북을 내면서 앞페이지에 thanks to 리스트를 길게 적었다. 리스트 맨 마지막에 단 한 사람을 위해 special thanks to를 덧붙였는데, 그 사람은 다름 아닌 그의 엄마였다. “내가 어렸을 때 엄마한테 <나니아…> 책을 받았기에 이 모든 것을 시작할 수 있었다.” <나니아…>는 그림 위주의 책만 읽던 페리 무어가 처음 접한 글 위주의, 100페이지 넘는 책이었다. 소설 <나니아…>는 영어권 국가의 소년 소녀들이 딱 그 나이 때에 읽은 책이다. 긴 문장을 이해할 만한 지적 능력을 가졌으면서도 현실 너머에 존재할 법한 세계 또한 믿는 나이. 7권으로 구성된 <나니아…> 전편을 읽고 그 세계에 푹 빠진 페리 무어는 얼마 뒤 부모님과 가구점에 갔다가 그곳 창고에 들어찬 옷장들 중 하나를 골라 그 안에 들어갔다. 열살도 안 된 아들이 없어졌다며 부모님이 경찰까지 불러다 가구점을 발칵 뒤집어놓는 동안, 페리 무어는 행여나 별천지로 가는 길이 열릴까 싶어 옷장 벽을 두드리고 있었다 한다.
평범한 옷장은 당연히 어린 소년에게 새로운 세계를 인도하지 않았지만 <나니아…>는 그 절망적인 마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소설 속의 켄타우루스와 파우누스와 난쟁이들이 들판에서 뛰노는 모습을 상상하던 소년의 마음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때마침 무어가 <나니아…>의 영화화 판권을 C. S. 루이스사로부터 완전히 확보한 해에 <해리 포터>와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각 첫편이 연이어 개봉하면서 박스오피스 히트를 쳤다. 프로덕션 규모로나 프랜차이즈 규모로나 방대할 수밖에 없는 판타지물이 코믹북과 함께 할리우드를 먹여살릴 새로운 젖줄로 환대받는 분위기였다. 페리 무어, 제작사 월든 미디어 대표 필 안슈츠, 그리고 <나니아…>의 영화화를 15년간 추진해온 C. S. 루이스의 양아들 더글러스 그레셤(루이스의 아내 조이 그레셤이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두 아들 중 차남)은 잠정적으로 5편 제작을 예정하며 시리즈의 첫 번째 연출자로 <슈렉>의 앤드루 애덤슨 감독을 결정했다. CGI 분야 스탭 경력을 오래 쌓았고 데뷔작과 그 속편으로 상업적 감각까지 인정받은 애덤슨 감독에게 무어와 그레셤은 “원작에 충실해달라, 미국화하지 말아달라, 현대화하지 말아달라”고 재차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