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나니아 연대기: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 미리 보기 [2]
2005-12-14
글 : 박혜명

4남매가 가족애를 회복하는 과정 그린 모험담

나니아는 피터, 수잔, 에드먼드, 루시가 옷장을 통해 들어가게 된, 지도에 그려져 있지 않은 나라다. 말하는 동물들과 파우누스, 켄타우루스, 미노타우루스 등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반인반수족들이 살고 있는 그 땅은 본래 따뜻하고 아름다웠는데 하얀 마녀의 지배 아래 놓이면서 몇 백년째 크리스마스도 없는 불행한 겨울 속에 있다. 말하는 비버 부부에 따르면 페벤시 가의 4남매는 그 땅의 겨울을 없애고 왕좌에 오를 예언의 인물들이다. 아름다운 노랫가락으로 나니아를 창조한 황금빛 갈기의 사자 아슬란이 오면 이루어진다는 그 예언을 아이들은 믿지 않고 돌아가려고 한다. 그런데 루시의 친구이기도 한 파우누스족 툼누스와 셋째 에드먼드가 하얀 마녀에게 붙잡히면서 페벤시 가의 아이들은 나니아 왕국의 전투를 피할 수 없게 된다.

J. R. R. 톨킨의 <반지의 제왕>이 현실 너머를 믿지 않게 된 어른들의 이성과 논리력을 방대함과 치밀함으로 굴복시킨 판타지 세계사이고, 조앤 K. 롤링의 <해리 포터>가 21세기를 바라보는 시기에 태동한, 선과 악의 경계를 명확히 하지 않는 잔인하고 현대적인 성장담이라면 C. S. 루이스의 <나니아…>는 세계 자체는 방대하면서도 문학적으로 <반지의 제왕>보다 단순간략하고, 잔인하지만 <해리 포터>와 달리 절대 선악과 구원에 대한 고전적인 믿음 위에 세워진 이야기다. 기독교인이거나 기독교에 관한 지식을 가진 사람은 <나니아…>가 그 종교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쓰여졌다는 사실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터키 젤리를 빌미로 하얀 마녀의 유혹에 넘어간 셋째 에드먼드는 사탄이 건네준 선악과를 먹고 원죄를 지은 인간을 뜻하고, “나니아의 법을 어긴 죄인은 내 것이 아닌가”라며 에드먼드의 피를 요구하는 하얀 마녀에게 대신 자기 목숨을 내놓는 (그리고 부활하는) 아슬란은 메시아를 상징한다. <나니아…>의 절대 선악과 구원의 이야기 구도도 거기에서 비롯됐다.

종교적 상징과 은유들을 차치하고 나면 <나니아…>는 어느 집 안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옷장을 통해 신비한 나라로 들어선 아이들의 모험담이다. “8살짜리 애가 성경적 알레고리의 의미까지 생각하면서 책을 읽지는 않는다. 선과 악, 용서와 희생은 보편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가치”라고 말하는 감독은 <나니아…>를 위기에 맞서는 네 남매의 용기와 가족애의 이야기로 그려내고자 했다. 그래서 영화 <나니아…>는 원작에서 가족구성원으로서 각각의 역할이 분명하지 않았던 네 아이들의 캐릭터를 구체화한다. 1차대전 중에 집이 폭격맞는 상황에서도 셋째 에드먼드는 아버지의 사진을 챙기느라 나머지 식구들의 피난길을 늦춘다. 이 장면 때문에 영화에서 에드먼드는 아버지의 부재를 인지하고 있는 유일한 아이로 설명되고, 부모 노릇을 대신하는 피터와 수잔에게 곱게 굴지 않는 이후 모습들과도 겹쳐진다. 에드먼드와 피터의 갈등관계나 수잔과 루시의 자매애도 원작보다 부각되게 그려져 있다. 네 남매가 온전히 화목함을 되찾는다는 감동적인 결말로 이어지는 <나니아…>는, 아이들이 하루가 다르게 쑥쑥 큰다는 실질적 이유와 아역배우들을 드라마에 몰입시킨다는 연출상 이유에서 시나리오 순서대로 촬영됐다. 에드먼드 역을 맡은 스캔더 케인즈는 18개월의 촬영기간 동안 키가 15cm나 자랐고, 나니아 왕국에서 현실 세계로 돌아온 페벤시 가의 아이들은 육안으로 보기에도 영화 초반부에서보다 성숙해져 있다.

5년 전엔 불가능했을 최첨단 테크놀로지

영화화를 위해 다시 원작을 꺼내든 애덤슨은 책을 읽다 중대한 고민에 부딪혔다. 그는 <나니아…>의 이야기 구조며 클라이맥스의 전투신이 자신의 30여년 전 기억만큼 웅장하거나 복잡하거나 스릴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책 두께만 해도 어릴 때 기억보다 훨씬 얇았다. 어른이 되어서 보니 아담해져 있는 원작을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 포터>의 규모에 뒤지지 않으면서 개성있는 영화로 만들어내기 위해 제작진은 프로덕션디자인과 각종 시각효과 및 특수효과에 아낌없는 비용을 들이기로 했다.

1억8천만달러의 제작비, 4년6개월의 제작기간이 소요된 <나니아…>는 수백년 내린 눈으로 뒤덮인 나니아 땅을 225여종의 생나무와 에어폼 및 종이로 만든 인공눈을 갖고 세트 위에 지었다. 하얀 마녀가 페벤시 가의 아이들을 뒤쫓는 장면에 등장하는 얼음강과 얼음폭포도 세트 안에 만든 것. 원작에서 구체적으로 설명되지 않은 하얀 마녀의 성을 얼음성으로 만들 계획을 짜고서 “멋있겠다!”며 좋아라 한 제작진은 폴리스틸렌과 불침투성 플라스틱, 섬유유리로 거대한 얼음성 내부를 표현했다.

<나니아…>가 무엇보다 자랑스러워하는 테크놀로지는 반신반수 캐릭터에 사용된 CGI 합성 기술이다. 상반신에만 특수 분장을 한 배우들이 하반신에 ‘그린 스크린 팬츠’를 입고 연기하면 특수팬츠가 배우의 움직임을 감지해서 컴퓨터상으로 배우의 하반신에 입혀진 CG를 실시간 배우와 일치시켰다. 100% CG 캐릭터일 수밖에 없는 황금빛 사자 아슬란은 그 우아하고 섬세한 표정 변화와 몸의 움직임이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버드나무 같다. 판타지영화의 상상력은 테크놀로지의 발전을 떼고 생각할 수 없다. 앤드루 애덤슨 감독은 “불과 5년 전이었으면 <나니아…>는 못 만들었을 영화”라고 말한다.

아울러 애덤슨 감독은 피터 잭슨과 마찬가지로 뉴질랜드 출신이어서 웨타 스튜디오 스탭들을 여럿 알고 있었다. 원시성을 띤 자연 풍광이나 고블린 등 인간 외 종족 캐릭터들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반지의 제왕> 프로덕션디자인과 비교 요소가 다분한 <나니아…>는 60여종의 캐릭터디자인 및 제작을 웨타에 맡겼다. 웨타 스튜디오의 슈퍼바이저 리처즈 테일러는 C. S. 루이스의 원작이 J. R. R.톨킨의 원작보다 구체적이지 않아서 훨씬 많은 상상력을 동원해 종족 디자인을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전문가가 아닌 보통 사람의 눈으로 가장 먼저 구별되는 것은 <나니아…>의 종족들이 <반지의 제왕>의 종족들보다 친근한 동물 형상에 가깝다는 것이다. 본디 나니아 왕국이 반인반수들과 동물들로 가득한 나라라서 그 점을 캐릭터디자이너들이 참고하기도 했겠지만 <나니아…>에는 생김새만으로 혐오감을 주는 캐릭터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특수분장 및 캐릭터디자인 담당 하워드 버거는 “이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생김새 자체로 선악을 구분하기 어렵다. 착한 편에 서면 착한 캐릭터가 되고 나쁜 편에 서면 나쁜 캐릭터들이 된다”고 <나니아…>의 캐릭터디자인 방향을 이야기했다.

소박하게 빚어낸 온가족용 판타지 영화

첨단 기술과 엄청난 비용으로 물리적 세계를 창조한 <나니아…>는 아이러니하게도 웅장하고 격한 드라마를 연출하지 않는다. 피터 잭슨은 <반지의 제왕>에서 영혼을 집어삼킬 듯한 절대 악의 힘과 대량학살에 가까운 살육의 전쟁을 공포스럽게 전시했지만 <나니아…>는 그런 심리적 충격을 시각적으로 최대한 피해간다. 어른이 된 애덤슨 감독은 원작의 대형 전투신이 의외로 작은 규모라 실망했다면서도 영화 안에서 피 한 방울 뽑아내지 않는다. 아슬란의 군대와 하얀 마녀의 군대가 만나는 벌판은 무성한 잔디와 밝은 햇빛으로 푸르고 따사롭다. 1300여종의 무기를 저마다 쥐고 서로에게 달려드는 짐승들의 전투가 잔인한 클로즈업에 들어설 무렵, 영화는 죽은 아슬란을 붙들고 밤새 울다 지친 수잔과 루시의 얼굴을 비춘다. 원작에서도 눈부시게 아름답다고 묘사된 하얀 마녀는 외모만으로 보아서는 어느 착한 나라의 얼음공주라 해도 믿을 수 있다. 판타지 블록버스터의 어마어마한 스케일 안에서 롤러코스터 같은 스릴과 공포를 기대하는 관객이라면 <나니아…>가 절반의 재미로만 다가올 것이다.

앤드루 애덤슨은 이 영화를 자신의 딸에게 보여주기 위해 만들었다고 말했다. “나는 나니아가 <오즈의 마법사>나 <피터 팬>의 세계처럼 갈 방법이 없는 막막한 세계가 아니라 어딘가를 통하면 반드시 갈 수 있을 것 같은 곳이길 바란다. 단순히 치기어린 상상의 나라도 아니고 도피처도 아닌, 현실과 닮은꼴을 한 어떤 세계 말이다.” 4남매 중 제일 처음으로 나니아에 들어선 루시의 손에 닿는 나뭇가지, 툼누스와 루시가 서로 친구가 되는 애틋한 순간, 친절하게 터키 젤리를 건네던 하얀 마녀가 무섭게 돌변해 에드먼드의 뺨을 때리는 장면 등은 <나니아…>를 읽고 다채로운 꿈으로 며칠 밤을 보낸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그럴듯해 보이는 세계의 일부로 전해질 듯싶다. 그러나 <나니아…>는 상상의 마지막 대목을 눈앞에 드러내지 않고 관객의 몫으로 남겨둔다. 이 영화가 그려내는 용기와 두려움과 감동은 아이들이 감당할 만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것은 루이스의 원작이 지닌 단순명쾌한 매력이기도 하다. “여자가 무기를 사용하면 보기 안 좋다”는 원작의 구절이 맘에 안 들어 수잔의 캐릭터를 원작보다 강한 여성으로 현대화하고 C. S. 루이스의 짧은 문체가 가진 비뚜름한 유머감각을 살리지 못한 것을 빼면, 애덤슨 감독의 <나니아…>는 원작의 묘사 한 줄에도 충실하려고 한다. 아슬란의 구원과 하얀 마녀의 멸망, 착한 본성과 가족애를 회복하고 안전하게 현실로 돌아오는 아이들의 모험을 그리는 <나니아…>는 모든 가능한 판타지를 리얼하게 극대화하려는 욕심없이 페벤시 가의 아이들처럼 옷장 속으로 기어들어가던 누군가의 어린 시절에 소곤소곤 호소한다. 그리고 어린 마음에 또 다른 상상의 여지를 남긴다. 판타지영화로서 <나니아…>가 지닌 미덕 역시 아이의 그 소박한 심성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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