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메마른 인생이 데워질 그 순간, <열혈남아> 촬영현장
2006-03-20
글 : 이영진
사진 : 서지형 (스틸기사)

“건들면 달려든다”는 건달들을 군산의 한 초등학교에 불러모은 <열혈남아> 촬영현장. 용문신 휘날리는 건달들이 공을 이리저리 몰고 다니면, 스테디캠이 그 뒤를 쫓느라 정신없다. 쨍한 햇살 알갱이를 야무지게 물어서인가. 멀리서도 등의 용문신은 살아 꿈틀거린다. 구름 한점 없는 파란 하늘, 만국기가 펄럭이는 운동장. 그런데 어찌해서 영락없는 운동회에 웃통을 벗어젖힌 험악한 모습의 청년들이 득시글거린단 말인가. 궁금증을 감독에게 풀기란 쉽지 않다. “호랭이에게 패스했다. 좌측 빈 공간을 달리는 호랭이… 중략)… 요새 애덜 문신은 봐도 모르겠어.” 이정범 감독은 빈 운동장을 바라보며 중계방송을 하는 이장 역의 배우와 리허설을 연거푸 진행 중이라 좀처럼 끼어들기가 쉽지 않다. “이거 독한 드라마 아닌데. 어리버리 드라마인데….” 궁금증은 오전에 주요 촬영을 모두 끝내고서 유유자적하는 설경구가 풀어줬다. 이날 촬영장면은 ‘1회용 칫솔’ 취급을 받는 재문(설경구)이 새끼건달 치국(조한선)을 데리고 벌교를 찾았다가 복수 대상인 상대조직의 대식(윤제문)과 맞닥뜨리기 직전의 장면. 설경구는 재문에 대해 “눙치다가 살인하고, 칼부림하면서도 눙치는 새끼”라고 설명한다. “마냥 헤벌쭉한 놈은 아니고. 순간순간 잔혹함이 엿보이고. 근데 누구도 그걸 눈치채지 못한다는 거지. 자신도 예상 못하는 놈이야.” 해가 뉘엿뉘엿 기울 무렵, 드디어 설경구가 운동장 한가운데 섰다. 그러나 ‘찌릿’ 하는 날카로운 눈빛을 한번 선보이고는 끝이다. “원래 시나리오에는 재문이 얼떨결에 장화 신고 이어달리기를 하게 되고 1등을 하는데. 감독님한테 바꾸자고 했어. 다 말해주면 재미없고. 다음 장면과 관련이 있는데. 어쨌든 바꿨더니 재문이란 놈이 더 재문다워졌어.” 설경구는 제목 때문에 누아르 혹은 남성영화라고 오해하기 쉬운데 절대 아니라고, 재문이든, 치국이든, 대식이든 극중 등장하는 ‘열혈남아’들을 묶어주는 고리는 ‘엄마’라고 덧붙인다. “조폭 이야기가 전부가 아니다. 그 이면에 따스한 이야기가 있다”는 이정범 감독은 휑한 벌판 같던 메마른 인생들의 내면 풍경이 잠시나마 온기로 데워지는 ‘순간’들을 보여줄 예정이다. 그 ‘순간’ 들은 엄마라는 그리움의 단어가 환기시키는 이미지들로 채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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