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석의 B딱하게 보기]
[B딱하게 보기] 작은 정원이 진리를 포함하듯, <콘스탄트 가드너>
2006-04-21
글 : 김봉석 (영화평론가)
<콘스탄트 가드너>

레이첼 바이즈가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콘스탄트 가드너>는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어떻게 제3세계를 착취하고 이용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스릴러영화다. 스파이소설에서는 가히 최고라 할 존 르 카레의 원작을 각색한 스토리도 뛰어나고, <시티 오브 갓>을 만들었던 페르난도 메이렐레스의 힘이 넘치는 연출도 탁월하다. 모든 면에서 인상적인 영화지만, 개인적으론 무엇보다 저스틴의 선택에 눈길이 갔다.

<콘스탄트 가드너>는 케냐에 파견된 영국 외교관 저스틴의 아내 테사가 살해되면서 시작한다. 저스틴은 인권운동가였던 테사가 누구에게, 왜 살해되었는지를 알아내려 한다. 테사가 추적했던 것을 밝혀내려는 의도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질투도 있다. 저스틴은 테사가 무엇을 하는지 몰랐다. 흑인 의사와 자주 만나는 것을 알고 때로 의심도 했지만, 테사에게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죽은 뒤에야, 저스틴은 진실을 알고 싶었다. 자신이 계속 테사를 가슴속에 간직해도 좋은지를. 제약회사의 음모를 폭로하는 것은, 물론 중요한 일이다. 테사가 원했던 것도 그것이다. 하지만 나는 저스틴이 원하는 것을 보고 싶었다. 저스틴이 테사를 사랑하게 된 것은, 그들이 전혀 다른 성질이기 때문이다. 정열적이고 직선적인 테사와 조용하고 차분한 저스틴은, 서로 갖지 못한 것에 이끌린다. 결혼을 해서도, 그들은 서로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테사는 제약회사의 비리를 캐기 위해 목숨을 걸고, 저스틴은 틈만 나면 정원을 가꾸며 소일한다. 그들은 서로 다른 길을 걸으면서 함께 살아간다. 서로 사랑하면서. 아마도 그들은, 서로의 생각이나 살아가는 방식을 근원적으로는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대신에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자신을 단지 수단으로 이용한 것이 아닌지 의심하고 괴로워하던 저스틴은, 마침내 알게 된다. 누구나 예상했던 대로, 테사는 그를 사랑했다.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은 뒤, 저스틴이 처음 하는 일은 첼시에 있는 집의 마당을 정리하는 것이다. 저스틴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오로지 그것이다. 자신의 손길이 닿은 정원을 가꾸는 것. 그 소박한 꿈이 저스틴의 행복이자 평화다. 저스틴에게는, 정원을 가꾸는 일이 제약회사의 음모를 폭로하는 것보다 중요하다. 작은 생명을 가꾸는 일을 좋아했던 저스틴이기에, 거대한 이상을 향해 달려가는 테사를 사랑할 수 있었다.

개인이 더 중요한지, 사회가 더 중요한지 같은 허무한 질문에 답을 내릴 생각은 없다. 필요한 것은, 각 개인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그가 말끝마다 사회를 외치든, 역사를 외치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아니 의미가 없다. 필요한 것은, 각자가 정당하게, 자신에게 책임을 지며 살아가는 일이다. 역사나 사회 따위 관심이 없거나 알지 못해도, 자신에게 충실한 개인사는 충분히 의미를 갖는다. 한개의 정원이, 때로는 이 세계와 우주의 진리를 포함하고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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