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제7회 전주국제영화제 가이드 [2]
2006-04-26
글 : 씨네21 취재팀
작가와의 만남 꿈꾸는 시네필을 위한 선택

한길을 걷는 이들을 위하여

제아무리 새로운 영화를 찾아 혈안이 된 세상이라지만, 여전히 자신의 길을 꿋꿋이 가는 그분들이 있기에 행복합니다. 마뇰 드 올리베이라와 스와 노부히로와 제제 다카히사… .10년 동안 변함없는 사랑을 바쳐왔던 분들입니다. 성격도 배경도 천차만별이지만, 꾸준하다는 면에서는 저와 통하는 구석이 있죠. 여기에 앤드루 부잘스키, 김영남 등 이름은 생소해도 기질은 다르지 않기에 낯설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화든 여자든 그저 속으로 좋아해선 아무 소용없더군요. 선수들의 충고, 그럴듯하기만 할 뿐 믿을 거 하나 없습니다. 부딪쳐서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요.

마법의 거울 Magical Mirror
마뇰 드 올리베이라/ 포르투갈/ 2005년/ 137분/ 시네마스케이프

어거스티나 베사 루이자의 3부작 <불확실성의 원리> 중 두 번째 소설인 <소울 오브 더 리치>를 각색한 작품. 감옥에서 갓 출소한 루치아노는 형 플로리다의 도움으로 알프레드 부인의 저택에서 일하게 된다. 알프레드 부인은 나이차가 많이 나는 남편과 대저택에서 살고 있다.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던 그녀는 종교에 몰두하고, 신부와 신학 교수들과의 만남에 빠져든다. 그러던 어느 날 헤셸 교수는 알프레드에게 성모 마리아도 부자였을 거라는 말을 하고 그녀는 성모 마리아를 접견하기 위해 기다리기로 결심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루치아노는 알프레드의 소망을 실현시켜주기 위해 거짓 계획을 꾸민다. 그와 피아노 조율사 필립은 한 여자를 고용하고 그녀를 성모 마리아로 변장시킨다. 하지만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하고 알프레드의 몸은 쇠약해져간다. <토킹 픽쳐> <제5제국> 등 세계 정치에 대한 영화를 만들었던 마뇰 드 올리베이라는 다시 문학의 세계로 돌아와 삶과 죽음, 종교를 얘기한다. 루치아노의 누이 카밀라는 영화 초반에 죽음을 맞이하고, 알프레드는 “죽음을 제외하고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되뇐다. 올리베이라의 연극적 스타일과 포르투갈 귀족사회에 대한 묘사도 여전하다. 올리베이라의 뮤즈 레오노 질 베이라가 알프레드로 출연하며, 그의 손자 리카르도 트레파가 루치아노로 분했다.

퍼펙트 커플 A Perfect Couple
스와 노부히로/ 프랑스, 일본/ 2005년/ 104분/ 시네마스케이프

완벽한 커플로 알려졌던 마리와 니콜라는 15년간의 결혼생활을 마무리하려 한다. 아무도 그들의 결별을 믿으려 하지 않기 때문인지, 두 사람의 친구들은 물론 관객마저 그들의 갈등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알 도리가 없다. “어떻게 당신은 하나도 후회하지 않지?”라며 신경질적으로 화를 내다가 닫힌 문 저편에서 울먹이며 “미안해”라고 중얼거리는 마리의 태도에서 그들의 말 못할 감정의 파고를 가늠해볼 뿐이다. <듀오>와 <M/Other>에서 보여주었듯, 이번에도 스와 노부히로는 외화면을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그는 보여지지 않고 말해지지 않는 것들을 드러내는 가장 영화적인 방식이, 프레임을 한정짓고 스토리를 감추는 것이라고 믿는다. 문과 벽, 거울 등 일상적인 소품과 공간으로 구획된 프레임은 한없이 확장되고, 모호한 인물의 감정은 더없이 세밀하고 사실적인 것으로 깊이를 더한다. 40여컷으로 이루어진 이 영화의 매 컷은 세심하게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자크 리베트, 샹탈 애커만 등의 거장과 작업했던 촬영감독 카를린 샹페티에는 일관된 스타일보다는 경제적인 이야기 진행을 더욱 중시한다. 그는 카메라의 고집스러운 위치만으로도 서스펜스를 유발시킬 수 있음을, 언제 인물의 뒤를 집요한 핸드헬드로 따라붙어야 하는지를 알고 있다.

미세스 Mrs.
제제 다카히사/ 일본 /2005년/ 97분

‘핑크영화 사천왕’이라는 꼬리표를 언제나 달고 다니는 제제 다카히사의 근작. 이번엔 죽어서야 손에 넣을, 두 여자의 지독한 사랑 이야기다. 만취한 채 택시를 잡아탄 아키는 얼마 뒤 자신이 쇠사슬에 묶여 있음을 알게 된다. 자신을 옭아맨 이가 유코임을 알고서 아키는 당황하고, 유코는 무죄 선고를 받은 아키에게 자신의 아들을 왜 죽였는지 캐묻는다. 법 대신 아들의 죽음을 앙갚음하려는 여자의 복수극처럼 운을 떼지만, <미세스>는 실은 동성애영화다. 좁은 차 안에서 인질극이 벌어지는 동안 두 여자의 과거가 어지럽게 펼쳐진다. 제제 다카히사의 영화들이 늘 그렇듯, <미세스> 또한 두 여자의 과거를 친절하게 내주지 않고 인정사정없이 토막내서 뒤섞는다. 풀기 어려운 실타래나 맞추기 어려운 퍼즐 같아 일찌감치 낭패감을 느낄지도 모를 일. 그러나 진득하게 참으면 된다. 진실을 말하면 사랑을 잃는다는 아키의 두려움이 죽어서야 유코에게 전달되는 순간 놀랍게도 그 어지러운 파편들은 제자리를 찾게 되니까. 닮고 싶고 갖고 싶은 누군가를 잃어버린 유코의 상실과 닮고 싶고 갖고 싶은 누군가에게 더이상 다가설 수 없는 아키의 상실이 또렷이 대비될수록 죽음의 부운도 점점 짙어진다. <가물치> <히스테릭> 등 전작을 챙겨본 관객이 아니라도 극중 여러 차례 등장하는 새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눈치챌 것이다.

내 청춘에게 고함 Don’t Look Back
김영남/ 한국/ 2006년/ 126분/ 폐막작

<내 청춘에게 고함>은 단편 <나는 날아가고… 너는 마법에 걸려 있으니까>(2001)로 주목받은 김영남의 첫 번째 장편영화다. 김영남은 홍상수의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조감독, <극장전> 편집 슈퍼바이저로 일한 바 있다. 최근작으로는 부산국제영화제 단편부문 선재상을 수상한 <뜨거운 차 한잔>(2005)이 있다. <내 청춘에게 고함>은 세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 정희(김혜나)는 언니와 단둘이 살며, 대학에서 무용을 전공하는 학생이다. 그녀는 남자친구와의 불화, 그녀를 버리고 떠났던 아버지의 방문 등으로 괴로워한다. 두 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전화국에서 일하는 근우(이상우)다. 그는 몰래 엿들은 전화통화에서 어느 여자의 음성을 듣고 사랑에 빠져버린다. 그리고는 급기야 그녀를 찾아가 사랑을 고백한다. 세 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독문학 박사 학위를 준비하다 뒤늦게 군대에 끌려간 병장 인호(김태우)다. 인호는 말년 휴가를 나오지만 특별히 보장된 미래가 없다는 사실에 힘들어한다. 오래전에 잠시 알고 지냈던 여자와 하룻밤을 지낸 뒤 그는 아내에게 그 사실을 고백하지만, 아내 역시 다른 남자가 있다고 고백해온다. <내 청춘에게 고함>은 어려움에 처한 이 세 사람의 이야기를 차분한 시선으로 보여준다.

내가 꿈꾸던 삶은 이런 게 아니었어 Not Exactly the Life I Dreamed of
미셸 피콜리/ 프랑스/ 2005년/ 75분/ 시네마스케이프

언제나 슬픈 표정으로 남편을 쫓는 아내는 남편이 식사하는 접시에 이런 문구를 남긴다. “두명의 여자가 있는 남자는 영혼을 잃을 것이다.” 아내와 정부 사이를 바쁘게 오가는 남자가 맞닥뜨리는 이상한 결말을 다룬 미셸 피콜리 감독의 본업은 배우. 고다르의 <경멸>을 비롯해서 크고 작은 200여편의 영화에 출연한 그는 루이스 브뉘엘, 코스타 가브라스, 알랭 레네, 아녜스 바르다, 르네 클레망, 클로드 샤브롤 등의 거장과 작업한 바 있다. <내가 꿈꾸던 삶은 이런 게 아니었어>는 <어둠 속의 도약>(1980)으로 칸영화제, <이상한 사건>(1982)로 베를린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피콜리의 다섯 번째 연출작이다. 본가와 정부의 집을 모두 관리하느라 누구보다 분주한 가정부의 표정은 능청스럽고, 무뚝뚝한 부부의 식사 도중 들려오는 전쟁터 소리는 알고 보니 TV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며, 아내와 정부의 대조적으로 과장된 행동들은 코믹하지만 왠지 서글프다. 상황과 캐릭터, 음향과 미술 등 영화 속 모든 요소들은 그가 출연했던 브뉘엘이나 고다르 영화로부터 흔적을 찾을 수 있지만, 그 모든 것을 자신의 언어로 녹여낸 피콜리는 자신이 그저 소비되는 배우가 아니었음을 증명한다.

뮤추얼 어프리시에이션 Mutual Appreciation
앤드루 부잘스키/ 미국/ 2005년/ 109분/ 인디비전

밴드 드러머를 구해서 음악을 계속하기 위해 뉴욕을 찾은 앨런은 심드렁하기 그지없다. 처음 보는 라디오 DJ와 하룻밤을 보낸 뒤 맺게 되는 관계는 어정쩡하고, 얹혀사는 오랜 친구 로렌스의 애인 앨리에 대해 심각한 감정을 가지고는 있지만 제대로 그것을 표현할 생각도 없어 보이며, 취직을 닦달하는 아버지에게는 믿음직스러운 대답을 내놓을 수 없다. 부스스한 헤어스타일만큼이나 우유부단하고 열없는 앨런의 행보는 결국 어정쩡한 상호이해 혹은 상호존중(mutual appreciation)으로 마무리된다. 데뷔작 <퍼니 하 하>를 만든 이래, 현재 미국 독립영화계에서 평단의 가장 큰 주목을 받는 감독 중 한명으로 떠오른 앤드루 부잘스키는 다큐멘터리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말한다.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을 연결하는 것은 영화적인 관습에 불과하다는 믿음의 결과, 영화의 오프닝과 엔딩은 물론이고 모든 신의 연결은 숨가쁠 정도로 급작스럽지만 이는 좀더 풍부한 의미를 유발하고, 관객은 색다른 재미를 맛볼 수 있다. 흑백 화면, 건조한 인물, 무의미한 대화 등이 실험적이고 비타협적인 존 카사베츠의 영화를 떠올리게 만든다. 감독 자신이 로렌슬로 출연해 능청스러운 연기를 선보였다.

거장들의 단편을 찾아서

요리스 이벤스, 가인 매딘의 단편을 만난다

<나의 아버지는 100살>

요리스 이벤스, 가이 매딘,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마뇰 드 올리베이라. 올해 전주국제영화제는 이름만 들어도 기대가 되는 거장들의 단편을 모았다. 올리베이라 감독의 단편 <두오로 강의 노동자들>은 그의 첫 연출작이다. 포르투갈 노동자들의 현실을 세세히 담아내는 이 영화는 최근 그가 다루고 있는 영화의 주제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전위적인 다큐멘터리로 유명한 요리스 이벤스의 <콘크리트 컨스트럭션>도 노동자를 다룬 영화. 방파제를 완성해가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30년대 노동계의 문제점을 포착한다. 최근 아시아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신작도 있다. 2004년 쓰나미 참사를 소재로 하는 <아시아의 유령>은 영화와 현실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살아 있는 것의 생동감을 전달한다. 로베르토 로셀리니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가이 매딘의 <나의 아버지는 100살>은 로셀리니의 딸인 이사벨라 로셀리니가 각본을 쓴 작품. 가이 매딘의 영상과 로셀리니의 영화세계가 어우러져 환상적인 조화를 만들어낸다. 이 밖에도 브라질의 떠오르는 신성 에릭 로샤의 단편 <키메라>도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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