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제7회 전주국제영화제 가이드 [3]
2006-04-26
글 : 씨네21 취재팀
광기와 위험을 즐기는 반항아를 위한 선택

세상의 시선 따윈 상관없어!

헤이, 맨∼! 무엇보다 인생에는 록 스피릿이 필요하다고. 응? 알아? 음악, 음악 말야. 그리고! 남들 신경쓰지 않고 하고 싶은 건 하는 정신이지. 우리가 이상한 영화를 좋아한다고? 보고 싶은 건 보는 거야. 식충이, 게으름뱅이, 미친놈, 괴짜, 변태…. 저놈들이 뭐라 해도 신경쓰지마. 그런 소린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버려. 우리는 속박받으려고 태어난 게 아냐. 즐기고 놀려고 태어난 거라곳!

어둠 속의 심장박동 Heart, Beating in the Dark
나가사키 슌이치/ 일본/ 2005년/ 104분

두근거리는 죄의식에 사로잡힌 세 커플의 기이한 고백록. 한때 연인이었던 링고와 이나코는 23년 만에 중년이 되어 다시 만난다. 잊고 살았다지만, 두 사람에겐 지울 수 없는 과거의 악몽이 있다. 그리고 젊은 부부 토루와 유키. 두 사람 또한 과거의 링고와 이나코가 그러했듯이, 똑같은 이유로 경찰의 수배를 피해 도주 중이다. 갑자기 치밀어오른 두려움과 좀처럼 떼내지 못하는 불안에 떨며 섹스를 거듭하는 두 커플은 결국 바닷가를 찾게 되고, 그곳에서 조우한다. 마지막 커플은 23년 전 링고와 이나코. 나가사키 슌이치가 1982년에 만든 동명영화의 리메이크작이고 후속작이기도 한 <어둠 속의 심장박동>은 과거 오리지널 필름을 여러 차례 삽입해 두 커플이 억누르고 싶어하는 죄의식의 근원을 젊은 날의 링고와 이나코를 통해 보여준다. “우리는 인생의 어떤 것을 되돌릴 수 없다. 그러나 또 다른 기회가 있다면 그것을 붙잡으려고 할 것이다”라는 말로 리메이크를 받아들인 감독처럼, 배우들 또한 만회의 기회를 쥐고자 애쓴다(메이킹 다큐멘터리의 형식도 취한다. 원작의 링고와 이나코를 연기했던 두 배우가 실제 중년 커플로 나온다). 극중에서 링고가 과거의 자신이기도 한 토루를 만나면 실컷 패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나이토. 하지만 결국 그는 주먹을 날리지 못한다. 거부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하는 과거, 그것은 떠안고 가는 수밖에 없는 것인가.

광기 Lunacy
얀 슈반크마이에르/ 체코/ 2005년/ 118분/ 불면의 밤

세상에는 많은 선들이 그어져 있다. 그중 어떤 선은 정상 혹은 비정상이라는 말로 세상을 양분한다. 얀 슈반크마이에르의 <광기>는 그 선의 어느 쪽 너머가 진짜 광기인지,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일이 가능한지 묻는 영화다. 장이라는 남자는 가끔 환상을 본다. 두 괴한이 나타나 자신을 정신병원에 가두려는 환상이다. 그의 어머니는 정신병자였고, 장이 보는 환상은 자신도 어머니처럼 감금될지 모른다는 데 대한 강박이다. 어머니의 장례식에 가는 길에 장은 정체불명의 후작을 만난다. 그는 분명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지만 자신의 행위에 대한 분명한 이유를 제시한다. 장은 그가 미쳤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행동과 장광설에 알게 모르게 설득당한다.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이 점점 모호해지는 가운데 장은 한쪽을 선택하고 그 선택은 광기의 실체를 보여준다. 스톱모션 작품으로 명성을 얻은 감독답게, 슈반크마이에르는 생물처럼 살아 움직이는 혀, 고깃덩어리, 눈알이 등장하는 수십편의 스톱모션신을 영화에 삽입했다. 이 영상은 처음엔 그로테스크하게 느껴지지만 반복해서 보고 있자면 꽤나 사랑스럽게 보인다.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광기>의 스토리 역시 곧 현실에 대한 우화로 다가온다.

하바나 블루스 Habana Blues
베니토 잠브라노/ 스페인, 쿠바, 프랑스/ 2005년/ 110분/ 영화궁전

음악이 곧 생활인 쿠바에는 재능있는 뮤지션들이 넘치지만 산업으로서의 음악은 없다. 12년간 쿠바에 살았던 스페인 감독은, 성공하기 위해 유럽시장에 진출해야만 하는 쿠바 뮤지션들의 상황을 따뜻하게 그려낸다. 밴드의 리더인 루이와 티토는 오랜 지기다. 꿈꾸던 유럽 진출을 앞두게 되지만 무명인 그들에게 제시된 계약 조건은 열악하다. 루이는 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돌아서고, 쿠바에서 희망을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티토는 계약이 깨졌음에 불같이 화를 낸다. 밴드를 떠나 혼자 스페인행을 결심하는 티토. 티토 없는 콘서트를 준비하는 루이. 또 다른 한편에선 아내와의 이별이 루이를 기다리고 있다. 쿠바의 색감으로 칠해진 여러 장르의 음악을 들을 수 있음은 <하바나 블루스>가 선사하는 가장 큰 기쁨이다. 그러나 영화는 그에 머물지 않는다. 쿠바의 젊고 펄떡이는 음악을 통해 드러나는 것은 현실이다. 사랑하고 아끼던 이들에게도 헤어짐의 순간은 온다. 각자가 선택한 이별 앞에서, 이들은 아린 마음을 여미며 서로의 앞날을 응원한다. 따로 걷는 걸음이 쓸쓸해 보이지만 빛나는 과거는 그들에게 늘 힘이 되어줄 것이다. 쿠바인들의 건강한 생명력은 보는 이의 가슴에도 힘을 불어넣는다.

홈커밍 Homecoming
조 단테/ 미국/ 2005년/ 60분/ 시네마스케이프

조 단테가 지옥의 사자들을 데리고 돌아왔다. 공화당원으로 추정되는 정치고문이 TV에서 “전사자들이 돌아와 그들의 죽음이 얼마나 값진 것이었는지를 말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하자 죽은 군인들이 무덤을 뚫고 지상으로 기어나오기 시작한다. 문제는 돌아온 사자들이 원하는 것이 공화당 정치고문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 썩은 살을 흘리며 나타난 시체들은 그들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정부를 무너뜨리기 위해 투표권을 요구하기 시작한다. <홈커밍>은 원래 다리오 아르젠토, 토브 후퍼, 존 카펜터 등 13명의 공포영화 거장들이 모여서 만든 미국 쇼타임 채널의 프로젝트 <마스터즈 오브 호러>의 한 에피소드로 기획됐다. 물론 조 단테가 순수한 의미로서의 공포영화 감독이 아닌 만큼 <홈커밍>도 정공법적인 공포영화로서의 흥미는 덜하다. 사실 조 단테(<그렘린> <하울링>)가 애초에 원했던 것은 좀비영화 장르의 관습을 빌려 현실정치를 꼬집을 수 있는 풍자코미디였을 것이다. 이를테면 <홈커밍>은 노골적으로 부시 정부를 놀려먹는 반공화당-좀비영화이며, 오랜만에 메가폰을 쥔 조 단테의 반골정신 또한 여전히 기세등등하다.

까뮈 따윈 몰라 Who’s Camus Anyway?
야나기마치 미쓰오/ 일본/ 2005년/ 115분/ 시네마스케이프

고다르와 베르톨루치 그리고 카뮈. 영화 워크숍 작품을 준비하는 문학부 학생들은 쉴새없이 서양 영화감독과 작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범위도 대중이 없어서 트뤼포와 타란티노를 오갈 정도다. 야나기마치 미쓰오 감독은 서양의 영화와 문학을 무의식적으로 흡수하는 일본의 현재 젊은이들에게서 불안을 잡아낸다. 극중 영화감독 마츠카와 어시스턴트인 히사다, 주연배우 이케다 등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문제가 있다. 마츠카는 복잡한 여자 관계 때문에 골치가 아프고, 히사다는 남자친구가 멀리 떠난 사이 다른 두 남자와 키스를 하게 되면서 고민에 빠진다. 여자 같은 복장을 즐겨입는 이케다는 연기에 대한 감독과의 의견차로 힘들어하고 문학부 교수 나카조는 남몰래 여학생을 훔쳐본다. 영화를 만드는 이들은 영화 속 내용처럼 점점 미묘한 분위기에 휩싸이게 되고, 영화는 극적인 결말을 보여준다. 칸영화제에서 상영된 바 있는 <불의 축제> 이후 야나기마치 감독이 10년 만에 내놓은 작품이다.

지진 속의 피아노 조율사 The Piano Tuner of Earthquakes
퀘이 형제/ 영국, 독일/ 2005년/ 99분/ 시네마스케이프

몽환적인 작품들로 유명한 퀘이 형제의 신작. 그들의 첫 장편인 <밴야민타 학원> 이후 10년 만의 작품으로, 아돌포 비요이 카사레스의 소설 <모렐의 발명>을 모티브 삼았다. 오페라 가수 말비나에게 드로즈 박사라는 인물이 보낸 백합이 배달된다. “신이 우리의 두 영혼은 단단히 묶을 것”이라는 기분 나쁜 쪽지와 함께다. 약혼자 아돌포와의 결혼을 앞둔 말비나는 노래를 하다 쓰러져 그대로 숨을 거둔다. 어디선가 나타난 드로즈 박사가 절규하는 아돌포의 눈앞에서 시신을 거두어간다. 그는 자신의 세상에다 그녀를 되살린다. 그러나 말비나는 인형처럼 멍하게 앉아만 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드로즈 박사는 피아노 조율사를 성으로 불러 이상한 기계 7개를 조율해달라고 한다. 아돌포와 똑 닮은 피아노 조율사는 말비나와 마주치자 묘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이 영화는 퀘이 형제가 대세인 디지털을 따르면서 어떻게 자신들 고유의 색감과 질감을 살릴 것인지 고민한 결과물이다. 쌍둥이 형제는 매킨토시 컴퓨터를 샀고 파이널 컷 프로를 설치했다. 스토리는 다소 지루하지만, ‘바로크 판타지’라고 일컬어지는 환상적 영상은 작업 방식이 바뀌어도 여전히 아름답다.

3일간 불면의 밤을 위하여

컬트, 음악, 광기의 밤이 기다린다

<브라더스 오브 더 헤드>

올해 전주는 마니아 취향의 심야상영 3회를 준비했다. 각회의 키워드는 컬트, 음악, 광기 정도가 된다. 심야상영 첫날인 4월28일 밤에는 컬트의 제왕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초기작들이 기다린다. 장편 데뷔작인 <스테레오>를 비롯, 그가 대학을 졸업하고 호러·고어영화에 경도되기 시작한 당시의 작품들을 볼 수 있다. 텔레파시, 정신병, 성애 등의 소재를 마구 뒤섞어놓은 이 영화들은 이후 <비디오드롬> <플라이> 등의 모태가 되었다. 29일 밤에는 3편의 음악영화가 관객을 부른다. 샴쌍둥이로 결성된 록그룹에 대한 가짜 다큐멘터리 <브라더스 오브 더 헤드>, ‘물건’을 제거하고 여자가 되려는 성전환자의 이야기 <20센티미터>, 그리고 앞서 소개한 <하바나 블루스>다. <하바나 블루스>와 <20센티미터>는 성장드라마 형식을 취하고 있어 음악에 관심이 없는 이라도 즐겁게 볼 수 있다. 마지막 밤엔 광기와 망상이 힘을 떨친다. 스톱모션애니메이션의 거장 얀 슈반크마이에르의 <광기>와 그에게 영감을 받아왔다는 퀘이 형제의 신작이 함께 상영된다. <람포 지옥>은 일본 추리소설의 대부 에도가와 람포의 단편 4편을 영화화한 것. 네명의 일본 감독이 각자의 방식으로 람포의 공포를 풀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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