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제7회 전주국제영화제 가이드 [5]
2006-04-26
글 : 씨네21 취재팀
광대 3인방도 인정한 왕초보를 위한 선택

한판 신나게 놀아볼깝쇼?

육갑이 형님, 대체 방금 본 영화 줄거리는 뭐람유? 졸음만 쏟아지는 게 이젠 머리까지 아프당께. 뭔 놈의 영화가 논어, 맹자보다 어렵댜? 놀려고 왔건만 지쳐서 가겠네. 칠득이 형님은 볼려고 노력이라도 했소? 지는 그냥 자빠져 잤당께요. 야들아, 그래서 이제 재미난 거 보러 가지 않냐. 우리 노는 거 마냥 웃기기도 하고 감동도 있다니까, 한번 믿어보자고. 왕을 갖고 노는 것만큼 재밌을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한판 놀아볼깝쇼?

오프사이드 Offside
자파르 파나히/ 이란/ 2006년/ 88분/ 개막작

여성들의 축구장 입장이 관습법에 의해 금지된 이란. 남장을 한 소녀가 광적인 축구팬으로 가득한 버스를 타고 국립 경기장으로 향한다. 하지만 축구장 진입을 시도하던 소녀는 군인한테 발각되어 다른 소녀들과 함께 경기장 주위의 임시 울타리 속에 갇히고 만다. 경기장에서는 흥분한 관중의 열광이 들려오고, 동참하고픈 소녀들은 군인들의 눈을 피해 어떻게든 울타리를 탈출하려고 시도한다. <오프사이드>는 스크린을 뚫고 나올 듯한 현장성으로부터 영화적 힘을 얻는 작품이다. 감독과 제작진은 실제 경기가 벌어지고 있는 국립 경기장에서 “영화 촬영을 막으려는 정부의 시도를 피해” 아마추어 배우들을 데리고 게릴라처럼 영화를 찍어냈다. 그래서 <오프사이드>는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경계를 넘나들며 긴박한 소동극의 맛을 전해준다. 2000년작 <써클>로 이란 여성들의 억압된 삶을 고통스레 그려냈던 파나히의 어조는 언제보다도 희망적이다. 특히 그는 경찰서로 향하던 군인과 소녀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과 승리를 축하하는 마지막을 통해 선언을 하고 있는 듯하다. 이란은 스스로 짊어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인간의 땅이며, 이란의 소녀들 역시 함께 축제를 즐기기 위해 계속해서 ‘오프사이드’를 넘어갈 것이라는 선언을. 2006년 베를린국제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작.

나인 라이브스 Nine Lives
로드리고 가르시아/ 미국/ 2005년/ 114분/ 시네마스케이프

<나인 라이브스>는 제목 그대로 9개의 삶을 담은 영화다. 영화의 감독이 <그녀를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것>의 로드리고 가르시아라고 한다면, 그 삶이 여성들의 그것임은 짐작할 수 있을 것. LA 인근을 배경으로 9명의 여성의 삶을 차례로 보여주는 이 영화의 첫인상은 집요함이다. ‘산드라’, ‘홀리’식으로 한 여성씩 주인공으로 내세워 9개의 에피소드로 이뤄져 있는 이 영화에서 각각의 에피소드는 모두 한컷으로 구성된다. 유려하게 움직이는 스테디캠은 주인공의 행동보다는 내면을 향한다. 감옥 생활의 유일한 낙인 딸과의 면회가 잘 안 되자 분노하는 산드라, 과거에 사귀던 남자를 마트에서 만나면서 마음이 흔들리는 다이아나, 양아버지에게 복수하기 위해 집을 찾은 홀리, 친구 앞에서 내밀한 삶의 이야기를 폭로하는 남편에게 분노하는 소니아, 장애인 아버지와 정신적으로 피로한 어머니 사이에서 씩씩한 삶을 꾸려가는 사만다, 전남편 부인의 장례식장에서 전남편의 거센 성적 욕망과 만나는 로나, 외간 남자와 모텔을 찾아 성적 욕구를 해결하려는 사만다의 엄마 루스, 유방 수술을 받으러 병원에 와서 극도의 불안을 보이는 카밀, 딸 아이와 어느 무덤가를 찾아와 울컥하는 슬픔을 느끼는 매기 등 <나인 라이브스>의 여인들은 일상 속의 고통 안에 빠져 있다. 9명의 여인들은 간혹 다른 에피소드에 조연으로 등장하지만, 모두가 자기 인생에서는 주연이듯 서로 얽히지는 않는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아들이기도 한 가르시아 감독은 캐시 베이커, 글렌 클로스, 홀리 헌터, 로빈 라이트 펜 등 호화스러운 여배우들을 내세워 창백한 여성의 내면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모래의 집 Casa de Areia
앤드루차 와딩턴/ 브라질/ 2005년/ 115분/ 시네마스케이프

빚을 갚아준 남자와 결혼한 아우레아는 정착지를 세우려는 남편과 함께 사막에 온다.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녀는 도시로 돌아가자고 남편에게 애원하지만, 그가 사고로 죽은 다음, 어머니와 사막에 남겨지고 만다. 아이 마리아가 열살이 되었을 무렵, 아우레아는 일식을 관찰하기 위해 사막에 온 과학자 일행과 함께 떠날 수 있는 기회를 잡는다. 그러나 아우레아에게 연정을 품은 부근 마을 원주민 마쑤는 과학자들이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도 침묵을 지키고, 희망을 버린 아우레아와 부부처럼 살기 시작한다. <모래의 집>은 2000년 <미 유 뎀>으로 주목을 받았던 앤드루차 와딩턴이 그 영화의 작가였던 엘레나 소아레즈와 함께 만든 영화다. 하얀 사막 가운데 외딴집을 찍은 사진에서 영감을 받은 이 영화는 시간이 정지한 듯한 사막의 본질을 마술처럼 포착한다. 십년이 넘는 시간을 바람 한번 불듯 가볍게 날려보내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무의미한 사막에서 여인들은 탈출하려는 욕망을 잊고 있는 그대로 삶을 받아들이는 법을 깨우친다. 실제 모녀지간인 두 여배우가 나이 든 어머니와 딸의 1인2역을 연기했다.

우크라이나에서 온 편지 Everything Is Illuminated
리브 슈라이버/ 미국/ 2005년/ 106분/ 영화궁전

유대인들의 박해사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는가. <우크라이나에서 온 편지>는 우크라이나에서 있었던 유대인 집단학살 사건을 배경으로 정체성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는 영화다. 작가인 조나단(엘리야 우드)은 할머니가 돌아가시며 남긴 사진 한장에 사로잡힌다. 사진 속의 주인공은 조나단의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미국 망명을 도와준 소녀 어거스틴이다. 그는 할아버지의 은인을 직접 만나고 싶다는 생각에 우크라이나로 향하고, 현지에서 돈 많은 유대인의 가족상봉을 주선하는 여행사 직원 알렉스(유진 허츠)와 그의 할아버지를 만난다. 유대인에게 적대적인 듯 보이는 할아버지는 조나단의 사진을 보고 표정이 미묘하게 흔들리고, 이들 세명의 ‘열정적인 여행’이 시작된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자전적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이 영화는 <맨츄리안 캔디데이트> 등에 출연한 리브 슈라이버의 연출 데뷔작이기도 하다. 묵직한 주제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유머러스하고 유쾌한 분위기를 시종 드러내며, 드넓은 평원이나 해바라기밭 등 우크라이나의 풍광 또한 가슴 뭉클하게 한다. <우크라이나에서 온 편지>는 아직도 과거 속에 살고 있는 사람, 과거를 묻고 사는 사람, 그리고 과거를 파헤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배드 뉴스 베어즈 Bad News Bears
리처드 링클레이터/ 미국/ 2005년/ 113분/ 영화궁전

1976년 마이클 리치 감독의 동명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 <스쿨 오브 락> 이후 리처드 링클레이터가 만든 두 번째 오락영화다. 예전엔 프로야구선수였지만 지금은 알코올 중독자에 백수로 살아가는 버트메이커는 우연한 계기로 꼬마 야구팀 ‘베어즈’의 코치를 맡게 된다. 대회는 코앞에 닥쳤지만 ‘베어즈’팀의 실력은 시합조차 불가능한 상태. 팀은 패배를 계속하고 버트메이커는 기대도 하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베어즈’팀의 꼬마들은 팀의 해산을 결정하고, 버트메이커는 도리어 코치 일에 열정을 갖게 된다. 그는 소프트볼 선수 출신인 딸 아만다와 아웃사이더 켈리를 새로운 멤버로 충원하고, 팀은 일취월장한다. 실제로 야구선수 출신인 링클레이터 감독은 원작에 충실해서 <배드 뉴스 베어즈>를 완성했다. 후반부의 베어즈와 양키즈의 결승전은 실제 야구시합을 보는 듯한 생동감을 가져다준다. 1976년작에서 월터 매튜가 맡았던 버트메이커 역은 빌리 밥 손튼이 연기했으며, 그의 연기는 영화 개봉 당시 큰 호평을 받았다. 링클레이터의 <비포 선셋> <웨이킹 라이프> 등과는 전혀 다른 재미를 맛볼 수 있는 유쾌한 영화.

아름다운 천연 Nuages d’Hier
쓰보카와 다쿠시/ 일본/ 2005년/ 95분/ 인디비전

1996년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온 쓰보카와 다쿠시 감독은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마을의 극장이 얼마 전 발생한 지진으로 철거될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최소한 이 극장을 필름으로라도 남겨야겠다고 생각하고 영화 <아름다운 천연>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감독의 실제 경험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름다운 천연>은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연민을 담은 영화다. 1930년대 일본의 작은 마을, 한 극장에서는 영화 <아름다운 천연>이 상영 중이다. 마을 사람들은 한데 모여서 영화를 보고 있고, 극장 밖에는 한 소년이 영화의 마지막 릴을 배달하고 있다. 극장으로 가는 길, 소년은 우연히 영화의 결말을 알게 된다. 자신이 좋아하는 여배우가 비극을 맞는다는 사실에 그는 마지막 필름을 땅속에 묻어버린다. 시간은 흘러 소년은 노인이 되고 영화는 노인의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본다.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촬영이 지연되곤 했던 이 영화는 9년 만에 완성됐으며, 주연을 맡았던 히토시 다카기는 영화가 완성된 지 1개월 뒤에 세상을 떠났다. 피터 그리너웨이의 <필로우 북>에 출연했던 히데코 요시다의 모습도 찾아볼 수 있다.

스키 점핑 페어: 2006 토리노로 가는 길 Ski Jumping Pairs: Road to TORINO
마시마 리치로, 고바야시 마시키/ 일본/ 2006년/ 81분/ 영화궁전

마시마 리치로의 2002년작 <스키 점핑 페어스>는 레스페스트디지털영화제 같은 발랄한 영화제를 통해 국내에서도 상영된 바 있다. 5분 남짓한 이 컴퓨터그래픽애니메이션은 두 사람이 하나의 스키를 타고 점핑 묘기를 펼치는 가상의 스포츠를 소재로 한다. 대회에 출전한 몇개 팀이 괴상한 묘기를 펼치는데, 그 황당함과 그를 중계하는 아나운서의 진지한 멘트가 웃음을 자아낸다. 이 애니메이션이 크게 인기를 끌자 마시마 리치로는 이후 몇개 시리즈를 더 만들었다. 그리고 급기야 (실제로는 없는) 이 이상한 경기가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떻게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되게 되었는가를 설명하는 가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으니 그것이 바로 <스키 점핑 페어: 2006 토리노로 가는 길>이다. 영화는 한 물리학자가 ‘쭈쭈바’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스키 점핑 페어스’라는 새 스포츠 경기를 만들어내고, 이 스포츠가 많은 이의 노력에 의해 올림픽 공식 종목으로 채택되는 과정을 그린다. 거짓말임이 뻔한 내용을 자못 진지하게 포장해놓은 것이 웃음의 포인트. 애니메이션 <스키 점핑 페어스>에 등장한 선수들의 출전 배경도 설명해준다. 영화 말미에는 문제의 2002년작 <스키 점핑 페어스>가 삽입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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