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스틸작가 5인의 미공개 화첩 [3] - 전혜선
2006-05-10
글 : 박혜명
전혜선_ 관찰의 눈으로 찍고, 기억으로 유화 리터칭

“나에게 가장 익숙한 것이 영화였고, 인물사진을 찍고 싶었다.” 영화 월간지 <스크린>의 사진기자 출신인 전혜선 작가가 영화 스틸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 동기다. 3년간 사진기자로서 영화와 함께 살다가 프랑스에서 약 4년을 지낸 뒤 귀국했다. 첫 작품은 <불후의 명작>. 일 자체뿐 아니라 기자와 스탭이라는 판이한 입장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스틸작가 8년차에 접어든 중견작가 전혜선씨는 새로운 현장에 들어갔을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배우 관찰이다. 1∼3회차 때까지는 배우들의 얼굴, 배우들의 버릇을 눈여겨본다. “그래야 어느 순간에 사진을 찍을 수 있는지 안다.” 두 번째로는 감독의 스타일을 파악하는 것. 그러고나서 스탭들과 친분을 쌓고 사진촬영에 돌입한다. 영화 스틸은 어디까지나 영화 홍보에 필요한 소스이기 때문에 함께 일하는 팀원에게도 “너의 예술작업이라는 착각을 버리라”고 충고한다. 내 작품활동 같지 않은 스틸촬영을 8년째 해오는 까닭은 “영화의 중독성” 때문인 것 같단다.

영화 스틸 위에 유화를 덧칠하는 작업은 <킬러들의 수다> 때부터 해왔다. 시간이 날 때마다 맘에 드는 사진을 골라, 기분과 기억이 이끄는 대로 작업했다.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의 터치라며, 그는 자신의 유화 리터칭 작업에 대해 말하기를 쑥스러워했다. 기회가 되면 작은 전시를 열 생각도 있지만 “영화의 사진도 다른 쓰임새가 있다는 걸 보여줄 정도다. 대단한 건 아니”라고 덧붙인다.

1. <형사 Duelist>의 강동원과 안성기
2. <사생결단>의 황정민과 류승범
3. <어린신부>의 문근영
4. <킬러들의 수다>의 원빈
5. <형사 Duelist>의 부감숏

1. 안 포교처럼 놀기_<형사 Duelist>의 안성기(오른쪽)
<형사 Duelist>의 안성기가 촬영이 시작되길 기다리며 흙바닥 낙서놀이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진짜 선수라고 부를 만한 배우들은 분장을 하고 현장에 있으면 카메라가 돌아가지 않아도 자신의 캐릭터처럼 생활한다. 놀아도 자기 역할처럼 놀고 쉬어도 자기 역할처럼 쉰다.” 병조판서(송영창)의 아들 결혼식을 촬영하던 때였고, 의금부 군사들이 들이닥치기 직전이었는데 모두가 “죽을 정도로” 추웠던 이날 밤, 안성기는 넉살 좋은 안 포교의 캐릭터에 묻혀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이 한가롭고 따뜻한 순간을 작가는 멀리서 잡아냈다. 붉은 천과 까만 하늘, 피사체가 한데 어우러진 모습도 아름다웠다고 한다.

2. 두 배우의 뚝방 승강이_<사생결단>의 황정민과 류승범
<사생결단>의 도 경장(황정민)과 이상도(류승범)가 뚝방에서 승강이를 벌이는 장면을 촬영하던 중이다. 류승범과 황정민은 짬이 난 와중에 두런두런 정답게 대화하고 있었다. 뚝방은 쥐가 들끓을 만큼 더러웠지만 임재영 조명기사가 만들어놓은 조명과 물에 비친 조명 그림자가 만든 빛덩어리 두개, 뛰어난 호흡과 친분을 과시한 배우 두명이 사이좋게 어우러진 모습이 좋아서 찍었다고 한다.

3. 몽글몽글한 얼굴_<어린신부>의 문근영
<어린 신부> 때 소품사진용으로 찍은 사진이다. 결국 쓰이진 못했다. “지금은 너무 숙녀가 되었지만 이때는 정말 귀여웠다. 근영이의 한때 얼굴이기도 하고, 근영이가 이런 표정을 워낙 잘 짓기도 한다.”

4. 총가지고 혼자놀기?_<킬러들의 수다>의 원빈
<킬러들의 수다> 때 스튜디오에서 포스터 컷을 찍던 날. “낯도 엄청 가리고 말수도 정말 적은” 출연진의 막내 배우 원빈이 포스터 컷 촬영 들어가기 전에 소품용 총을 갖고 이리저리 혼자 놀고 있는 모습이다. “이때는 그저 너무 예쁘고 귀여웠다.”

5. 우르르 무너지네_<형사 Duelist>의 부감숏(아래)
<형사…> 중에서. 역시 병조판서의 아들 결혼식을 촬영하는 장면 중에 찍은 현장 컷이다. 200여명 넘는 엑스트라들이 우르르 무너지면서 하늘을 수놓은 전등 장식물들도 함께 무너지는 신. 이명세 감독은 이 장면의 스틸 컷을 반드시 카메라 앵글과 똑같은 부감으로 찍었으면 좋겠다고 전혜선 작가에게 거듭 이야기했다고. 현장 컨트롤만으로도 까다로운 상황에서 전혜선 작가는 감독이 직접 끌고 온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이 순간을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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