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축제, 애니 세상이 시작된다!
제10회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이 5월24일부터 28일까지 5일간의 축제를 시작한다. 올해 SICAF는 거대한 변화의 물결을 타고 개최되는 첫 번째 행사다. 개최 시기는 지난해 8월에서 5월로 변경되었고, 덕분에 여름 휴가를 차마 희생하지 못해 방문을 꺼려왔던 유명 애니메이션 작가들과 산업 관계자들의 방문이 크게 늘 전망이다. 메가박스와 코엑스를 중심으로 개최되던 행사의 무대를 CGV용산와 서울무역전시장(SETEC)으로 옮겨온 것은, 복잡한 대규모 쇼핑몰을 떠나 축제 자체에 집중하겠다는 SICAF의 의지로 보여 환영할 만한 일이다. 청계천 만화광장이나 앙굴렘 국제만화전의 기획작품인 쥘 베른의 ‘상상의 세계’ 전시처럼 종합적인 만화 축제로서의 면모는 여전하고, <씨네21> 독자들이 가장 촉각을 세우고 있을 애니메이션영화제의 프로그래밍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사자의 서>나 이지 트릉카 회고전, 헨리 셀릭의 새로운 단편 등 애니메이션 예술의 절정을 탐하는 작품들에서부터 <강철의 연금술사> 극장판 등 대중적 애니메이션까지 골고루 차려져 있는 수라상이다. 다카하다 이사오, 클램프, 가와모토 기하치로, 페렝 카코 등 SICAF를 방문하는 만화·애니메이션 분야의 거장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강철의 연금술사> <사자의 서> 등 <씨네21>의 추천 6선
올해 SICAF, 이것만은 놓치지 말자!
<강철의 연금술사-샴발라의 정복자> 劇場版 鋼の鍊金術師 シャンバラを征く者
미즈시마 세이지/ 2005년/ 104분/ 일본/ 장편경쟁 부문
무시무시한 연금술의 어둠에 도전했다가 신체의 일부와 전부를 빼앗긴 에드워드와 알퐁소 형제. 그들의 여정을 그린 <강철의 연금술사>는 소년만화적 판타지의 세계 속에서 인간의 책임감을 이야기하는 21세기 소년만화의 걸작 중 하나였다. 극장판인 <강철의 연금술사-샴발라의 정복자>는 주인공들을 평행우주로 날려버리고 끝을 맺은 TV시리즈의 결말에 가슴이 허했던 팬들을 위한 선물이다. 1920년대 독일 뮌헨에 떨어져버린 에드워드는 근대 독일의 로켓 기술을 이용해서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고, 인간의 몸을 되찾은 알퐁소 또한 형을 다시 만날 방도를 찾아 헤맨다. 각각의 평행우주에서 서로를 그리던 형제는 곧 해결방도를 발견하게 된다. 유토피아 ‘샴발라’를 찾는 의문의 단체가 두개의 세계를 연결하는 위험한 비밀을 캐고 있었던 것이다. 제작사가 돈에 굶주리지 않는 한, 이 극장판은 에드워드와 알퐁소 형제가 보내는 마지막 인사가 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100만장 이상의 DVD와 1500만부 이상의 단행본을 팔아치운 <강철의 연금술사>와의 작별을 제대로 즐기고 싶다면 TV시리즈의 세계관을 미리 숙지하고 가는 것이 좋다. 연금술사들의 법칙처럼 “뭔가를 얻으려면 그에 상응하는 동등한 대가가 필요한 것”이다.
<사자의 서> 死者の書
가와모토 기하치로/ 2005년/ 70분/ 일본/ 아시아의 빛 부문
8세기 중반 일본의 수도 나라. 대귀족의 딸인 이라츠메는 부처의 가르침에 귀의하고 살아간다. 어느 날 이라츠메는 후타카미산에 나타난 오모카게비토의 모습에 경도되어 그를 위해 경전 천부를 모조리 베껴 쓰겠다는 결심을 한다. 1년이 지난 뒤 그녀는 갑자기 나타난 오모카게비토를 따라 서쪽 땅으로 향한다. 도착한 장소에서 그녀는 사형 직전에 본 미모의 여인에 사로잡혀 이승을 헤매는 오오츠 왕자의 이야기를 듣게 되고, 이라츠메는 그를 위한 옷감을 짓기 시작한다. 오리구치 노부오의 원작에 감화받은 인형 예술가 가와모토 기하치로가 인형애니메이션 <사자의 서>를 완성하는 데는 30년이라는 방대한 세월이 걸렸다. 무속신앙과 자연과의 합일에 대한 고대 일본의 철학과 장인의 기술로 탄생한 인형들의 섬세한 몸놀림은 일본적 아름다움의 정점에 도달해 있다는 경탄을 일으킨다. 체코의 전설적 거장 이지 트릉카의 사사를 받은 가와모토의 예술적 집념의 결과물인 <사자의 서>는 애니메이션 역사책의 한 챕터를 차지할 만한 걸작이다. 5월27일에는 가와모토 기하치로의 마스터클래스와 팬사인회가 열린다.
<니타보> 仁太坊
니시자와 아키오/ 2004년/ 100분/ 일본/ 장편경쟁 부문
니타보는 19세기 중반 일본에 실존했던 샤미센 연주자의 이름이다. 샤미센은 한자로 삼미선(三味線)이라 쓰는 일본 전통악기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에도막부시대가 막을 내릴 무렵, 근대화 물결에 휩쓸린 일본에서 니타보는 승려만이 연주한다는 전통을 깨고 샤미센을 연주해 지금의 쓰가루 샤미센 연주자의 시조 격이 되었다. <니타보>는 가즈오 다이조가 쓴 <니타보의 일생>이라는 책을 원작으로 삼고 있다. 한살 때 어머니를 잃고 8살 때 천연두로 시력을 잃고 11살 때 아버지를 잃은 불행한 니타보에게 남다른 음악적 열정과 재능이 있었다. 니타보는 아버지 생전에 우연히 샤미센 연주소리를 듣고 이에 반하여, 자신과 같은 시각장애인 연주자로부터 샤미센 연주를 배운다. 마을을 전전하는 떠돌이 샤미센 연주자 니타보는 사람들 사이에 도는 자자한 칭찬에 위로받고, 질투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봉건사회의 잔재와 전통을 거부하면서까지 자신의 음악적 삶을 포기하지 않았던 연주자의 젊은 시절이 시적인 화면과 잔잔한 현악에 담겨 흐른다. 니시자와 아키오 감독은 미술과 미술사를 전공하고 한동안 교육계에 종사한 바 있다. 일본사회와 일본 교육계의 개혁에 대한 거창한 희망으로 자신의 프로덕션을 만든 니시자와 감독은 첫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니타보>를 만들었다.
<이민자들> Immigrants
가버 추포/ 2005년/ 78분/ 미국, 한국/ 장편경쟁 부문
“왜 미국에 이민자들이 계속 생기나? 햄버거 먹으러? 핫도그 먹으러? 파멜라 앤더슨 같은 여자들 보러?” 화려한 할리우드를 곁에 둔 미국 서부. 소수 이민자들끼리 모여 사는 낡은 다세대 주택에서 서로 다른 인사말로 사람들이 잠을 깬다. 러시아인 블라드와 헝가리인 요스카는 절친한 친구. 두 사람은 ‘기회의 땅, 풍요의 땅’ 미국에서 인생 역전을 꿈꾼다. 짐작하는 대로 이민자들이 미국에서 정착하기란 쉽지 않다. 고교생 딸내미의 대학 등록금을 마련해야 하는 블라드는 시민권도 없는 불법체류자라 정규직을 얻을 수 없다. 똥 퍼내기, 페인트칠 등 잡역으로 근근이 살며 목돈 벌 궁리에 요스카와 매일 머리를 맞댄다. <이민자들>은 지지부진한 이민자들의 미국 정착기를 블랙코미디처럼 풀어낸다. 우스꽝스러운 캐릭터 블라드와 요스카가 벌이는 사건사고들은 애들의 장난처럼 철딱서니없고 황당하면서도 있을 법한 문제들의 과장이다. <이민자들>은 사회보장제를 비롯한 미국사회의 제도들이 가진 모순을 틈새마다 드러내면서도 결국 작은 해피엔딩으로 극을 마무리한다. 이민자들이 이루려 했던 ‘아메리칸 드림’은 결국 하루하루 걱정없이 사는 것이다. “이것이 (이민자들의) LA 인생이다”(C’est L.A. vie). <이민자들>은 그들의 수고스럽고 가난한 일상에 관한 한철의 작은 이야기다.
<펫슨과 핀더스> Pettson and Findus-The Tomte Machine
요르겐 레르담, 안데르스 쇠렌센/ 2005년/ 80분/ 독일, 덴마크, 스웨덴/ 장편경쟁 부문
스웨덴의 크리스마스 요정 톰테를 기다리는 동심의 이야기. 심성 착한 노인 펫슨은 발명이 취미다. 스웨덴 시골에서 홀로 사는 그에게는 호기심 많은 개구쟁이 애완고양이 핀더스가 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던 날, 핀더스는 펫슨에게 크리스마스 때 톰테가 집에 찾아와주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한다. 펫슨은 “네 소원이 이루어질 거야”라고 일러주며 그날부터 톰테 기계 발명에 들어간다. 해맑은 크리스마스 이야기답게 <펫슨과 핀더스>는 행복하게 끝날 결말을 향해 귀엽고 따뜻한 에피소드들을 배치해놓는다. 숲속에 놀러갔다가 이상한 우체부를 만나는 핀더스, 애완고양이의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발명실에 틀어박힌 펫슨과 그를 비웃는 친구, 놀아주지 않는다고 투정부리는 핀더스와 그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펫슨. 판타지의 힘을 빌려 핀더스의 소원을 이루어주는 <펫슨과 핀더스>의 은근한 매력은 노인과 애완고양이 사이의 우정을 묘사하는 대목들이다. 자상한 펫슨과 개구쟁이 핀더스의 일상은 인간과 동물 사이의 교감을 넘어서서 예쁜 연인의 모습으로 비치기도 한다. 고전적인 애니메이션 기법을 따른 스쿼시 앤드 스트레치 기법의 움직임과 수채화 같은 그림체가 이같은 우정을 더욱 사랑스럽게 만들어준다. 펫슨의 집에 함께 사는 집쥐들과 암탉들의 캐릭터도 사랑스럽고 앙증맞다. 화면 가장자리에 놓인 자잘한 순간들이 인상에 더 깊게 남는 애니메이션.
<공식경쟁 일반단편 부문>
SICAF의 가장 흥미진진한 부분은 일반단편 경쟁부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거장들의 새로운 작품이 해마다 줄을 잇고 있는 덕이다. 올해 공식 경쟁부문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이름은 빌 플림턴과 헨리 셀릭이다. <뮤턴트 에일리언>과 <나는 이상한 사람과 결혼했다>의 악동 빌 플림턴은 새로운 단편 <안내견>으로 찾아왔다. 안내견으로 취직하길 원하는 못난 강아지의 좌충우돌이 플림턴 특유의 왜곡된 작화와 삐딱한 유머감각을 타고 스크린에서 달음박질친다. 오스카 최우수 단편애니메이션상 후보에 올랐던 <호위견>의 후속작이다. 스톱모션애니메이션 팬들의 기대가 가장 큰 작품은 헨리 셀릭의 <달의 소녀>일 것이다. 거대한 별 물고기를 따라간 소년과 다람쥐가 달의 소녀와 만난다는 내용의 이 단편은 셀릭의 유명한 장편들 <크리스마스의 악몽>과 <제임스와 거대한 복숭아>를 떠올리게 만든다. 사실 이 작품은 스톱모션애니메이션이 아니라 헨리 셀릭 최초의 CG애니메이션이다. 하지만 실망은 금물이다. 스톱모션애니메이션의 거장은 컴퓨터그래픽이라는 새로운 장난감으로 수공예 애니메이션의 기운을 온전히 되살려냈다.
애니로 탄생한 유럽의 아이콘
개막작 <아스테릭스와 바이킹> Asterix and the Vikings
스테판 펠드마크, 예스퍼 묄러 | 2005년 | 78분 | 프랑스유럽 만화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 관객에게 <아스테릭스>는 로베르토 베니니와 제라르 드파르디외가 출연한 수준 이하의 실사영화로만 알려져 있을는지 모른다. 하지만 프랑스의 국가적 자랑거리 중 하나인 <아스테릭스>는 르네 고시니(<꼬마 니콜라>)의 기가 막힌 프랑스식 유머에 힘입어 벨기에의 <땡땡>과 함께 유럽 대중문화의 역사적 아이콘으로 불리는 만화다. 개막작인 <아스테릭스와 바이킹>은 원작 시리즈 중 한편인 <아스테릭스, 바이킹을 물리치다>를 토대로 만들어진 작품. 전통적인 셀애니메이션과 CG의 결합이 일구어낸 결합물은 지난해 개막작인 <르나르 이야기>처럼 현대 프랑스 애니메이션의 미래를 가늠케 하는 잣대가 될 것이다. 감독인 스테판 펠드마크는 1997년작 <인생이 멀어질 때>로 아카데미영화상 단편애니메이션부문에 노미네이트된 경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