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괴물>의 변희봉, 아버지는 언제나 변신 중
2006-07-21
글 : 문석
사진 : 이혜정

송강호부터 고아성까지 <괴물>의 연기자들은 하나같이 최고의 연기를 보여줬지만, 변희봉이야말로 진정한 발견이라 할 만하다. 그동안 어수룩하거나 비딱한 성품의 인물을 연기해왔던 변희봉은 <괴물>에서 인상적인 한순간을 보여준다. 자식들과 손녀를 위해서 정의롭고 강인한 모습을 드러내는 그의 모습은 기존의 허허실실 이미지를 뒤집어버린다. 예순이 다 되어가던 2000년, 봉준호 감독의 <플란다스의 개>를 통해 ‘재발견’된 그의 연기는 <괴물>을 통해 다시금 한발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면서도 “모든 공은 감독에게 있다”면서 자신을 낮추는 그의 모습은 한없이 넓은 등을 가진 우리의 아버지를 떠올리게 한다.

-현장에서 만났을 때 <괴물>이 그동안 연기생활에서 가장 좋고 흐뭇하다고 말했었는데.
=그건 이번에 봉준호 감독에게 출연 제의를 받았고, 그로써 그의 영화 세편에 모두 출연하게 됐다는 말이다. 그런 면에서 배우로서 정말로 흐뭇하고 좋다는 이야기다.

-그만큼 봉 감독을 높이 평가한다는 것 같다.
=나한테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리고 봉 감독과 같이 일해본 사람이라면 나와 크게 다르지 않게 생각할 것이다.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은 어땠나.
=봉준호 감독의 시나리오는 정말로 앞뒤가 맞아떨어진다. <플란다스의 개>를 할 때는 영화와 봉 감독에 대해 잘 몰랐다. 그래서 당시 봉 감독이 시나리오가 어떻냐고 물어보기에, “베스트셀러 한편 읽는 것과 다를 게 뭐 있느냐”고 시큰둥하게 말했었다. 찍고 나서도 그 영화를 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보게 됐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과 영화가 전혀 다르게 나왔더라. 그제야 ‘아, 이것이 바로 영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한강에 괴물이 출현한다는 이야기가 황당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나.
=작품을 시작하기 전에 남모르게 할리우드 괴수영화를 여러 편 갖다 봤다. 여러 가지 스타일의 영화가 있지만, 돈과 과학기술을 그야말로 쏟아부어 만든 것이 많더라. 그런데 문제는 우리는 그런 여건이 안 되지 않나, 마음속으로 상당히 우려가 됐다. 하지만 찍으면서 안심이 되더라. 가족들의 분위기가 척척 맞아가는 게 괴물이 없더라도 볼 수 있는 영화가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됐다. 물론 괴물이 어떻게 나올까, 우리도 굉장히 궁금했다. 그러다가 나중에 믿음이 생겼던 것은 후시녹음하다 막상 괴물을 보니까 ‘우리 괴물이다’ 하면서 친근감이 들더라. 괴물도 우리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

-그동안 허허실실이랄까, 뭔가 부족한 듯한 캐릭터를 주로 맡았는데, 이번에는 굉장히 큰 품을 가진 아버지 역할을 했고, 강인한 모습도 보여준다.
=봉준호 감독의 리더십이 그렇게 만들어주지 않았나 생각한다. 배우는 감독을 잘 만나면 변신할 수 있다. 만약 배우가 변신을 못한다면 감독이 배우에게서 뽑을 것을 다 못 뽑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렇게 변신하는 캐릭터라는 점 때문이라도 굉장히 의욕적으로 임했을 것 같다.
=내가 이 시점에서 어떤 것은 의욕이 있고, 어떤 것은 의욕이 없고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어떤 영화든지 최대한 노력해야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감독과 제대로 부합했을 때는 좋은 면을 보인다. 내가 앞으로 몇편의 영화를 더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변화시켜줄 수 있는 감독과 몇편을 더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봉 감독의 영향도 있겠지만, 그동안 맺혔던 것을 풀어내는 듯한 모습도 엿볼 수 있었다.
=그런 점도 있다. 감독의 것을 물론 앞에 놓겠지만, 은연중에 내 것을 뒤에 놓을 수 있는 것 아니겠나. 겉모습은 감독의 의향대로 가지만 눈빛이나 마음속에 가진 것은 내 것을 슬쩍 가져갈 수 있는 게 배우 아닌가. 그런 지점은 있을 수 있다. 봐주는 사람이 변했다고 해주면 정말 고맙게 느낄 것이고, 다시 말하지만 그 공은 감독에게 있다.

-연령을 고려할 때 체력적으로 힘든 연기도 많이 해야 했을 것 같다.
=평소에는 상당히 힘이 부친다는 생각도 한다. 그런데 나는 일만 들어가면 그런 게 없어진다. 일을 하고 있을 때는 힘들다는 것을 전혀 모른다. 와이어를 매달고 연기를 하기도 해서 아무래도 고생스러운 면도 있었지만, ‘아이구 죽겠다’ 이럴 정도는 아니었다.

-봉 감독에 따르면, 극중에서 졸고 있는 자식들에게 일장 연설하는 장면이 약간 편집됐다는데 아쉽지는 않았는지.
=조금은 아쉽다. 어떤 분이 영화를 보고나서 “좀 아쉬웠습니다. 그 대목에서 뭔가 한두 마디를 더 했으면 완벽할 수 있었을 텐데 끝나서 아쉬웠습니다” 라고 하던데, 나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봉 감독이 대본에서 그 대목을 너무 여러 번 고쳤다. 나중에는 내가 “더이상 고치지 말자, 명대사다” 이러면서 막았다. 그런데 봉 감독은 이 부분이 너무 나가면 신파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사실 나는 신파가 조금 있었으면 했다. 그건 보는 사람에 따라서 다를 텐데 감독의 선택이니 전적으로 믿고 존중한다.

-그 대사에 애착을 갖고 있는 게 본인의 생각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은 아닌가.
=그게 강두에 대한 진한 애정을 피력하는 모습인데, 자식을 키울 때나 세상을 살아올 때나 그런 지점을 갖고 살아오지 않았겠나. 어차피 사람이라면 다 그럴 것이다. 인간은 대동소이하지 않나. 그래서 이번 영화는 연세 많은 분들도 와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다음 작품은 어떤 게 있나.
=시나리오 하나를 검토하고 있다. 장규성 감독의 <이장과 군수>다. 군수와 이장 사이에서 왔다갔다하는 백 사장이라는 인물인데 아직 감독을 못 만나서 결정을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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