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괴물>의 박해일,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2006-07-21
글 : 이다혜
사진 : 이혜정

<괴물>에 출연한 배우들 사이에서 박해일은 ‘박 서방’으로 통한다. 결혼한 뒤 술을 많이 안 하는데다 어쩌다 술을 해도 전화기를 오랫동안 붙들고 있다는 웃음 섞인 타박의 대상이 된 그는, 촬영 중인 <극락도 살인사건> 때문에 햇볕에 그을린 얼굴로 나타났다. 개봉을 앞둔 <괴물>에서 박해일이 맡은 역은 대졸 백수 남일. 남일은 비딱하고 말만 많은 캐릭터에서 시작, 비장하고 행동력있는 인물로 변화해간다. 봉준호 감독의, 그의 반듯한 이미지가 아닌 다른 면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의도는 영화 속에서 성공을 거두었고 실제 생활에서의 ‘박 서방’은 배우들 중 가장 먼저 자리를 뜨는 것으로 애처가라는 동료들의 말을 몸소 증명해 보였다.

-결혼해서 좋은가.
=결혼? 뭐, 오래 사귀고 결혼한 거라서. 동거하는 기분이라고 할 수 있을까. 밖에서 따로 만나지 않아도 된다는 게 다르다는 정도다. 아직까지는 결혼 전과 크게 다른 건 없다. 연애할 때부터 영화 촬영 들어가면 자주 못 보고 그런 건 비슷하니까. 지금도 <극락도 살인사건> 촬영 때문에 목포에서 배 타고 4시간을 가야 닿는 소흑산도에 있다가 올라왔다. 서울에 자주 오지도 못했다.

-<괴물>은 인물들이 진정한 가족의 구성원이 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영화 속에서는 현서의 삼촌으로 출연했지만 이제 결혼을 했으니 현서의 삼촌인 남일의 입장에서뿐 아니라 현서의 아버지인 강두 입장에서 이야기를 생각하게 되지는 않던가.
=아직은 조금 이르지 않나 싶다. 다만 딸을 둔 아버지 강두의 심정이라든가, 자식을 둔 희봉을 연기한 변희봉 선생님의 연기 정서를 그냥 흘려보낼 수는 없더라. 앞으로의 상황과 연결해 생각하게 되고. 가족이라는 건 삶에서 중요한 요소인데, 가족을 예견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던 것 같다. 나는 또 어떤 아버지일까 하고.

-선량하고 착한 이미지를 주로 연기하다가 최근에는 그런 이미지를 깨는 역할들을 선택하고 있다. 의식적으로 고정된 이미지에서 탈피하려는 건가. <괴물>의 남일은 대졸 백수고 꼬인 게 많은 비딱한 인물이다.
=봉준호 감독님은 내가 유순한 성격에 한 여자만 보듬는 인물을 자꾸 연기하는 게 싫었던 모양이다. 가증스럽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웃음) 얼마 전에 들은 얘기인데, 봉준호 감독님이 나의 그런 이미지를 바꾸고 싶어했다고 하더라. 그런 생각을 하면서부터 <괴물>의 남일을 염두에 두었던 모양이다. 망가뜨린다기보다는 ‘쟤가 저런 모습이 아닌데, 이런 것도 있을 텐데’ 하는 걸 표현해준 것 같다.

-봉준호 감독뿐 아니라 본인 스스로도 정형화된 이미지로 굳어가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끼지는 않았나. 너무 착한 역으로 고정되는 건 아닐까 하고. <연애의 목적>이나 <살인의 추억>에서 약간 다른 모습이 보이기도 하지만 선량한 그림자는 계속 남아 있다.
=길게 보는 거다. 시작할 땐 착한 이미지가 많았다면 이제는 변화를 주고 다른 것을 해보는 식이다. 앞으로 어떤 것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구애받고 싶지 않다. 아직은 모든 게 과정에 있을 뿐이다. 목표는, 글쎄. 송강호 선배처럼 그만의 향기가 있는 배우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전까지는 다양한 것을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괴물>은 흔히 말하는 원톱, 투톱 하는 식으로 한두 사람의 배우가 극을 이끄는 게 아니라 앙상블 연기를 요구하는 작품이었다. 게다가 가족이라고 언뜻 생각하기 힘든 배우들이 함께 연기했다.
=개성이 센 네 배우가 가족이라는 얘기를 듣고, 도대체 무슨 영화를 만들려는 걸까 조합이 안 그려졌다. 상상도 많이 하고, 혼자서도 많이 웃었다. 괴물보다는 그쪽에 더 호기심이 가더라. 영화를 찍다보니 가족이란 냄새를 알아서 풍기게 되고 어느 순간 하나처럼 되는 순간이 오더라. 실제로 영화를 봤을 때도, 가족간에 정서적으로 울림이 느껴지는 장면들이 좋았다. 괴물에 관해서라면… 괴물을 앉혀놓고 인터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웃음)

-촬영현장에는 괴물이 없었지만, 괴물을 보는 배우들의 연기만큼은 정말 괴물을 마주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칸영화제의 호평 중에 배우들의 연기에 대한 찬사도 꽤 많았고. 그런데 촬영할 때 얘기를 들어보니, 어쩌다 괴물 스케치가 현장에 오면 배우들을 부르지 않아도 어떻게 다들 모여들어서 ‘저게 괴물이구나’하고 골몰하며 쳐다봤다고 하더라.
=괴물에 대한 정보를 누가 얘기한다 싶으면 우르르 몰려들었다, 정말. 작은 정보라도 숙지해서 괴물과 사투를 하는 장면에서 끄집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뭘 알아야 상상을 보태, 좀더 정확한 감정을 찾을 수 있으니까. “여기 와서 보세요” 하지도 않았는데 배우들이 순식간에 사방에서 나타나서 괴물을 조금이라도 더 보려고 했다. 직업정신이 투철한 건가.

-괴물에 대한 모든 것을 완성하고 촬영을 시작한 게 아니라 더욱 궁금했겠다.
=<괴물>의 괴물이 63빌딩을 반 토막내는 포악한 카리스마의 제왕도 아니잖나. 이 영화의 괴물은 한마디로 악동 같은 데가 있다. 감독님은 괴물이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다고 표현했다. (웃음) 어떤 장면에서는 진돗개 같다고 느끼기도 했다. 그래서 괴물에 대한 감정이 단순할 수가 없다.

-화염병 만들어 던지는 장면에서 꽤 능숙해 보이더라. 화염병을 만들어 괴물에 대항한다는 대목은, 한국 관객과 외국 관객이 다르게 느낄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들었고.
=제조 및 투척에 대해서는 다들 아시나? 도구에 대해서.

-90년대 중반 정도까지 한국에서 대학 나온 사람들은 대개 알고 있으니까. 화염병 만들고 던지는 방법은 봉준호 감독에게 배운 건가.
=총 쏘는 것도 그랬지만 화염병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전수받거나 연습한 건 없었다. 감독님이 “이렇게 하는 거래, 해일아” 하면서 간략하게 알려주었다.

의상협찬 솔리드 옴므, WESS, TOD’S, M.VIO, 지오 송지오·헤어 라뷰티 코아(정준)·메이크업 라뷰티 코아(제이원)·스타일리스트 DR(정주연, 이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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