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괴물>의 배두나, 나의 본질은 유체이탈
2006-07-21
글 : 이다혜
사진 : 이혜정

배두나는 <괴물>의 남주가 “나중에는 게릴라 같은 모습으로” 괴물을 쫓아다닌다고 표현했다. 모습만 게릴라 같은 게 아니라, 촬영현장에서도 남자배우들이 많다보니 스스로 너무 거칠어진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절로 들었다. 양궁을 배우느라 생긴 어깨 통증은 아직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괴물>이 흥행에 성공하면 <괴물>은 배두나가 출연한 영화 중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하는 데 성공한 영화로 기억되겠지만, 배두나를 긴장하게 만드는 건 완성된 영화의 흥행 여부보다는 새로 찍을 작품에 대한 설렘이다. 배두나는 런던에서 찍은 사진에 글을 쓴 책 발간을 앞두고 있고, 가을 즈음에는 새 영화도 찍을 생각이다.

-눈물 연기를 할 때 티어스틱을 사용해서 인공적으로 눈물을 만들지 못한다고 했다. <괴물>의 합동장례식장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감정적으로도 격앙된 느낌인데다 꽤 길어서 매번 감정을 끌어내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4일인가 5일 동안 밤을 새서 그 장면을 찍었는데, 내 장면을 다 찍고 다른 장면을 찍는 식이 아니었다. “자, 두나 컷 됐으니까 이번에는 해일이 컷!” 하는 식이니 카메라가 올 때마다 매번 모래성을 쌓는 기분으로 감정을 새로 생각해야 했다. 나중에는 막 짜증이 나더라. 봉준호 감독님이 “자, 아까처럼, 눈물 가득”이라고 하시면 난 속으로 현서랑 동대문에 쇼핑 갔던 생각, 현서가 첫 생리했을 때 어땠고… 하는 맥락을 상상하기 시작하는 거다. 감정에는 면역이 되는데 자꾸 리프레시시키느라 힘들었던 셈이다. 감독님은 한마디로 “응, 아까처럼 울면 돼. 왕창 울어”라는 게 다고. 봉준호 감독님과 영화를 찍으려면 배우도 기술이 있어야 한다. 이런 표정을 해주세요, 하면 딱 그렇게 해줄 수 있는 배우. 나는 그렇게 하기는 힘들었다.

-그간 연기했던 작품들에서는 무심하고 엉뚱한 느낌이 강하지만, 남주는 그렇지 않다. 양궁을 열심히 하지만 결정적 순간에서는 좌절하는 인물이고, 조카를 구하기 위해 끝까지 매달린다.
=예전에는 현실에 있을 법한 인물을 비현실적인 연기로 보여주었다. ‘이런 상황에서 저런 연기 안 할 것 같은데’ 싶은 연기를 하는 게 좋았다. 이번에는 무의식적인 내 버릇들, 표정을 만화적으로 짓는다든가 하는 점을 자제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물론 남주도 나의 한 모습이다. 감독님이 나를 두고 쓴 인물이니까. 내가 양궁 선수에 어울릴 수 있었던 건… 내가 집착하고 있는 것 외의 것에는 신경을 잘 안 쓰잖나. (웃음) 양궁 선수들은 야구장에서 꽹과리치는 응원단 옆에서도 연습을 한다. 배경으로부터 자기를 격리시키는 훈련을 하는 거다. 내가 원래 갖고 있던 느낌도 비슷한 점이 있고. 감독님이 남주를 만들면서 그동안 내가 해온 역할보다는 그쪽에 초점을 맞춘 것 같다. <괴물>에서 잘린 장면 중에는 너무 특이해 보여서 감독님이 잘라냈다는 부분도 있었다. 인간이 너무 특이해 보여서.

-다른 사람들은 도망가거나 총을 쏠 때, 남주는 괴물에게 활을 쏜다. 단순히 특이한 게 아니라 진공상태에 있는 느낌마저 든다.
=남주는 그렇다. 나도 그런 면이 없지 않고. 나의 본질은 유체이탈이라고 하잖나. 그래서 외계인 같다는 말이 붙었는지도 모르겠다. 주위 상황과 격리되어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듯해서. 그런 점은 나와 남주가 비슷하다. 아쉬운 부분이 없지는 않다. 솔직히, 남주를 연기하면서 가졌던 감정을 영화에서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부터 남주에게는 딱 하나라는 생각을 했다. 현서에 집중. 게다가 영화에는 남주 말고도 재밌는 부분이 많으니 딱히 시선이 집중되는 역할은 아니다. 게다가 연기하고 나면 특이하다고 막 편집되잖나. 힘들다. (웃음)

-양궁 배우느라 많이 아팠다고 들었다.
=그것도 그래. 고생 많이 했는데 고생한 티가 하나도 안 난다. 번쩍 들고 탁 쏘니까 하나도 안 무거워 보이잖나. 남자들도 활시위 못 당긴다. 쉬워 보이게 하려고 3개월을 연습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너무 쉬워 보여서 오히려 아쉽네 하는 느낌도 들었다.

-<떨리는 가슴>에서 고아성과 함께 연기한 뒤, <괴물>의 현서 역에 추천했다고 들었다. <떨리는 가슴> 때, <괴물>을 찍을 때, 그리고 지금… 고아성이 크고 있는 게 눈에 확 띈다.
=딴사람 같다. 지금은 아성이를 봐도 어색하고. 내가 이기적인 데가 있다. 영화를 찍는 동안은 마인드 컨트롤을 위해 내게는 아성이가 현서였다. 아성이를 아성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현서라고 생각하면서 영화를 찍었다. 그러다 <괴물>이 끝나고 내가 남주를 버렸잖나. 아성이가 교복을 벗은 모습을 보니까 좀 어색하다. 그 친구도 내가 달라 보인다고 하더라. 고모, 이모로 나왔을 때랑 다르다고.

-처음 <괴물>에 대해 들었을 때, 가족 구성원들이 누구인지를 듣고 가족 그림이 바로 그려졌나.
=처음 얘기 들었을 때 나는 가족 구성원이 아니었다. 시간이 흘러 다섯이 가족이라는 얘기를 듣고 딱이라고 생각했다. 연기를 잘하는 선배들이니까 개성이 독특하다고 앙상블이 안 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물론 ‘이 사람들이 어떻게 가족이야’ 하는 생각도 없지는 않았다. 주워온 남매들 같지 않나. (웃음) 그런데 어느 순간 보니 다들 너무 닮았더라. 나는 선배를 어려워하는 편이다. <복수는 나의 것>을 같이 했지만 (송)강호 오빠가 마냥 편했던 건 아니다. 그런데 <괴물>을 찍다 보니 어느새 강호 오빠가 선배라기보다 바보 같은 큰오빠라는 느낌이 들면서 마음이 편해지더라. 몇년 동안 어려웠던 분이.

의상협찬 아일랜드 스타일, JINA KIM·헤어 및 메이크업 알트 앤 노이(임진옥, 김미진)·스타일리스트 안미경, 박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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