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21세기 촬영감독 10인 [4] - 디온 비비, 앤서니 도드 맨틀
2006-09-15
글 : 오정연

화려함과 단순미의 강약조절

<시카고> <게이샤의 추억> <마이애미 바이스>의 디온 비비

<마이애미 바이스>

밥 포스의 뮤지컬을 고스란히 스크린에 옮긴 <시카고>. 관객은 화려한 무대를 주시하듯 스크린에서 눈을 돌리지 못했다. 촬영감독 디온 비비는 브로드웨이 안무가 출신 감독 롭 마셜이 자신의 장기를 충분히 살려 할리우드에 입성할 수 있도록 돕는 충실한 조언자가 되어주었다. 12주라는, 다소 긴 프리 프로덕션 동안 이들은 영화 속에서 반복되는 뮤지컬 장면을 리허설했다. 춤과 노래가 지닌 고유의 흡인력을 렌즈 안에 담기 위해 비비는 다수의 카메라를 무용수들 사이로 밀어넣었다. 별다른 스토리보드 없이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집중하여 담아낸 뮤지컬 넘버는 화려한 쇼의 활력으로 넘쳐나지만 그외의 장면은 낮은 채도와 콘트라스트 등 평범함으로 일관한다. 더욱더 간절히 관객은 무대의 화려함을 기다리게 된다. 비비는 매혹의 기술을 알고 있다.

호주에서 할리우드로 건너와 촬영한 두 번째 영화 <시카고>로 오스카 촬영상 후보에 오른 디온 비비는 단번에 할리우드에서 가장 잘나가는 촬영감독의 명단에 이름을 올린다. 비주얼의 민감함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마이클 만이 <콜래트럴> 촬영에 들어간 지 3주 만에 폴 카메론에서 디온 비비로 촬영감독을 교체한 것은 떠오르는 신예로서 비비의 명성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맨헌터>부터 호흡을 맞췄던 거장 단테 스피노티를 제외하면 두 작품 이상 같은 촬영감독과 일한 바 없는 마이클 만은 HD 촬영의 비중을 한결 높인 <마이애미 바이스>의 촬영감독으로 또다시 비비를 지목했다. 그 사이 비비는 <게이샤의 추억>으로 오스카 촬영상과 미국촬영감독협회에서 수여하는 상을 동시에 거머쥐었다.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 있기 때문에 장편영화를 찍는 틈틈이 광고 촬영을 즐긴다는 비비의 중요한 장기 중 하나는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는 것. 무대에 대해 전혀 아는 바 없었던 그는 <시카고>를 촬영하기 위해 무대조명 전문가 줄스 피셔와 페기 아이젠하우어를 영입하여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조명을 선보였다. 다른 사람이 찍던 영화를, 그것도 자신이 한번도 다뤄본 적이 없는 HD카메라로 찍어야 했던 <콜래트럴>도 그에겐 부담이 아닌 도전할 만한 무엇인가였다. “LA의 야경, 야자수의 실루엣과 밤하늘의 디테일을 눈에 보이는 그대로 담을 수 있”는 HD의 장점에 대해 들떠 이야기하던 그는, 이제 <마이애미 바이스>에 이르러 한결 강렬하고 업그레이드된 자신만의 HD 비주얼을 선보였다.

디온 비비의 초기 필모그래피의 상당수는 클라라 로, 홀리 헌터, 미라 네어 등 여성감독의 작품으로 채워져 있다. 직관에 의지하여 주관적인 뉘앙스를 살려내는 방식으로 그는 여성감독들과 공명을 일으킨 것이다. 홀리 헌터가 그와 함께 만든 <홀리 스모크>와 <인 더 컷>의 화면은 <피아노> 등 간결하고 서정적인 헌터의 전작에 비하면 감성적인 아름다움으로 충만하다. <인 더 컷>에서 그는 광고 촬영에서 주로 사용하던 특수렌즈를 써 한 화면 안에서 초점의 위치를 변화시키는 방식으로 주인공의 아늑한 방과 뉴욕의 뒷골목을 민감하게 포착했다. 신기술을 적극적으로 끌어안되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중요시하는 그의 화면들은 객관적으로도 매혹적이다. 지나친 아름다움, 이는 비비의 강력한 장점인 동시에 치명적인 단점이다.

이 장면! <게이샤의 추억>의 사유리 춤

온전히 스며들 수 없는 미지의 유혹

“우리는 그녀가 눈부시게 빛나길 원했다.” <시카고>에서 디온 비비가 했던 말은, 사유리의 춤을 촬영할 때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낯선 시대, 낯선 문화를 재현해야 했던 <게이샤의 추억> 제작진은 일본에 건너가 문화체험을 하면서 촬영방식을 논의했다. LA 근교에 만들어진 ‘상상의 교토’ 세트에서 촬영된 이 영화는 온전히 스며들 수 없는 세계를 엿보는 달뜬 시선으로 가득하다. 사유리의 매력을 한껏 뽐내야 하는 이 장면에는 미지의 존재가 지닌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을 시각화해야 했다. 일찍이 <시카고>를 통해 ‘무대 위의 여자’를 카메라에 담는 것을 연습한 마셜-비비 콤비는 시각적으로 상품화된 일본적인 분위기를 겻들여 이 장면을 완성했다. 타인을 유혹시키기 전에 자신이 기꺼이 빠져들 것. 그것은 매혹의 기술이 갖춰야 할 첫 번째 덕목이다.

도그마의 영혼, 도그마의 심장

<셀레브레이션> <도그빌> <28일후…>의 앤서니 도드 맨틀

그는 도그마의 숨겨진 핵이다. 최초의 도그마영화 <셀레브레이션>을 포함한 토마스 빈터베르그의 영화 네편, <도그빌> 등 라스 폰 트리에 영화 두편, 하모니 코린의 <줄리앙 동키 보이> 등 도그마 핵심 감독의 영화 촬영을 전담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35mm 카메라에 대한 도그마의 계율을 디지털카메라의 계율로 바꾼 앤서니 도드 맨틀. “관습은 깨지기 위해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스타일이 아니라 영혼”이라고 믿는 그는 도그마의 룰 이전에 정신을 이해한, 강력한 조력자였다.

<도그빌>

예산문제로 <셀레브레이션>의 포맷을 35mm에서 다른 것으로 바꿔야 했을 때, 미니DV로 촬영하겠다는 도드 맨틀은 모두의 만류에 부딪혔다. 그러나 그는 자연스러운 연기를 위해, 카메라가 배우들처럼 민감하게 반응하기 위해 미니DV는 유일한 선택이라고 결론내렸다. DV는 정해진 동선에 익숙한 배우들에게 자유를 줬고, 필름 카메라에 익숙한 배우들의 경직을 풀어주기 위해 그는 “사전에 약속한 곳이 아닌 곳에 카메라를 위치하는 속임수를 쓰기도 했다”. 또한 도드 맨틀은 30대의 카메라를 사용한 <줄리앙 동키 보이>의 촬영원칙은 ‘실수-주의’(mistake-ism)였다고 말한다. 카메라에 ‘집착’하는 라스 폰 트리에가 <도그빌>의 일부 컷을 직접 촬영한 것에 대해서 도드 맨틀은 “내가 연출작을 만들면 라스 폰 트리에를 촬영감독으로 영입하려 한다”며 농담을 던진다.

“영화와 연극, 비디오의 중간지점에 있는 <도그빌>을 촬영하면서 시나리오와 대사, 배우의 얼굴에 집중”했다는 그에게, 고전적인 의미에서 촬영감독의 역할은 별로 중요치 않다. 도드 맨틀은 그런 종류의 예술적 엄숙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과학자 아버지와 화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20대 중반까지 여자친구와 세계 각지를 돌아다녔다. 우연히 발견한 구식 카메라로 인도를 여행하며 찍은 7천, 8천여장의 스틸 사진을 직접 현상한 뒤 사진에 흥미를 느껴 미술대학에 진학했고, 서른살에는 덴마크 국립영화학교에 들어갔다. 덴마크 여자친구에게서 배워둔 덴마크어가 아니었다면 힘들었을 선택이었지만, 언제나 여지를 남겨두는 낙천주의 덕에 그는 덴마크의 거장 라스 폰 트리에를 만날 수 있었다.

언제나 핸드헬드로, 스튜디오와 영화조명을 배제하고, 동시녹음 사운드만 사용할 것. 오래된 농담처럼 시시해진 도그마의 계율은 오늘날 저예산 디지털영화가 맞닥뜨리는 한계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치기어린 도그마는, 제약을 미학으로 승화시키는 영화 정신을 교훈으로 남겼다. 800만달러의 저예산으로, 디지털카메라를 사용해 <28일후…>를 찍어야 했던 대니 보일이 계속해서 호흡을 맞췄던 브라이언 투파노 대신 도드 맨틀을 택한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나 감각적 영상으로 승부하는 보일과 <밀리언즈>까지 촬영한 도드 맨틀은 여전히 자신은 “비주얼이 최고라고 믿는 독재자가 아님”을 강조하기에 급급하다. 디지털 역시 불변의 원칙은 아니다. 디지털과 필름 사이의 선택은 “흑백과 컬러, 두대의 카메라와 세대의 카메라, 인공조명과 자연조명”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여타의 선택과 다름없다. 중요한 것은 “이야기에 어울리는 스타일”이다. 간단하고도 어려운 그 원칙은, 촬영감독 도드 맨틀의 가장 큰 매력이다.

이 장면! <28일후…>의 텅 빈 런던 거리

디지털영화의 새로운 미학

텅 빈 런던의 묵시록적 풍경. <28일후…>의 세계를 단번에 설명한 이 장면은, 대니 보일이 필름을 포기한 첫 번째 이유였다. 러시아워 직전의 시간대에 런던 한복판을 통제하면서 복수의 카메라를 운영하려면 DV의 기동성은 필수적이다. 캐논 XL1 카메라 여덟대를 운영한 도드 맨틀은 험한 욕을 일삼는 성급한 군중에 둘러싸인 상황에서 전대미문의 이미지를 담아냈다. 이 매혹적인 장면은 또한, 온갖 제약을 넘어서면서 깊이를 더한 <28일후…>의 비주얼을 대표한다. 데이 포 나이트(밤장면을 낮에 촬영하는 기법)로 촬영한 전기 끊긴 대도시의 밤, 온갖 종류의 불완전한 필터를 통해 순화한 디지털의 이미지, 도시인을 감시하는 CCTV의 시선까지 재현한 <28일후…>은, 디지털영화의 새로운 미학을 자연스럽게 설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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