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것과 조형이 혼재한 카오스
<서머 오브 샘> <이터널 선샤인>의 엘렌 쿠라스
여성 촬영감독이 흔치 않은 건 한국이나 할리우드나 마찬가지다. 남성들이 주도하는 판 안에서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서 그들에게는 실력이 우선이다. 엘렌 쿠라스는 다방면의 재주를 갖고 있다. 가령, 다큐멘터리 촬영을 통해 선댄스에서 두번이나 상을 탈 만큼 현실에 대한 명철한 시선을 견지하고 있는 촬영감독임은 물론이고, 디지털로만 가능한 다양하고 세심한 후반 공정의 세공술에도 일찌감치 눈을 뜬 진보적 스타일리스트다. 그 균형이 엘렌 쿠라스의 실력을 보증한다. 그건 모두 “세계를 보는 것에 대한 대안적 방법”이 곧 촬영이라는 그녀의 소신을 지키는 것이다. 누군가는 그것을 “쿠라스적 프레이밍”이라고 이름 짓는다.
<4 리틀 걸스> <히 갓 게임> <뱀부즐리드> <서머 오브 샘> 등을 통해 스파이크 리와 여러 편의 다큐멘터리와 극영화 작업을 하면서 엘렌 쿠라스의 균형미는 빛을 발했다. 스파이크 리가 흑인이 등장하지 않는 백인 배우들로만 구성한 첫 영화 <서머 오브 샘>을 우리는 특히 더 잘 알고 있다. 1977년 데이비드 버코비츠라는 ‘실제’ 연쇄살인범에 모티브를 두고 만들어진 <서머 오브 샘>에서 “뉴욕의 당시 후끈한 분위기를 표현해 달라”는 스파이크 리의 요구에 쿠라스는 노랑, 오렌지, 붉은색의 톤을 강조하되, 주로 낮장면은 특수 필터를 통한 단색의 느낌으로, 밤장면은 어둠 속의 탁한 기운이 살아 있듯 축축한 느낌으로 양쪽을 대치시켰다. 그건 스파이크 리가 원한 대로 70년대 뉴욕을 일종의 낮과 밤의 이중주 혹은 카오스적 비주얼로 뒤덮기에 충분했다.
최근에 미셸 공드리와 작업한 <이터널 선샤인>은 엘렌 쿠라스의 또 다른 비주얼적 카오스를 선보였다. 공드리는 뉴욕의 실제 장소를 최대한 이용하면서도, 자연광만으로 그리고 지속적인 핸드헬드와 롱테이크를 통해 반쯤은 다큐멘터리처럼 기억이 말소된 연인의 이야기를 다루고 싶어했다. 거기에 엘렌 쿠라스는 최소한의 조명으로, 두대의 카메라를 동시에 돌리며 장소와 감정의 세심함을 살려냈다. 동시에 후반 디지털 공정을 통해 환상적인 분위기의 조형적 이미지까지 손봄으로써 ‘날것과 조형이 혼재한 카오스적 세계’라는 완성품을 만들어냈다. 날것과 조형, 앨렌 쿠라스의 촬영술은 주로 그런 두 요소가 뭉치는 영화들에서 빛이 난다. 그리고 촬영감독으로서 엘렌 쿠라스의 입지 또한 날카로운 다큐멘터리스트 혹은 환상적인 스타일리스트의 경계가 섞여 있는 바로 그 자리에 있다.
이 장면! <이터널 선샤인>의 빙판
중심인물과 주변 어둠의 극단적 대비
<이터널 선샤인>에 특별한 장면은 많다. 조엘(짐 캐리)과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럿)의 설레는 첫 만남. 이 영화는 말소된 사랑의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첫 번째 장면은 영화의 후반부를 거치고 나서야 두배의 감동을 전하는 평범하지만 비범한 자리다. 또는 실내에서 해안가 모래사장 위로 옮겨져 있는 침대 위의 두 사람. 그것으로 대표되는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는 장소의 무차별적 이동. 각본가 찰리 카우프만과 감독 미셸 공드리의 합작품다운 영상이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촬영감독 엘렌 쿠라스의 장점은 이런 독특한 비주얼 뿐아니라 주어진 한계를 극복하는 데 있다. 일체의 인공조명없이 자연광으로만 찍었으면 좋겠다는 공드리의 비주얼 컨셉은 촬영감독 엘렌 쿠라스를 당황시키기에 충분했다. “미셸, 다큐멘터리에서도 자연광만으로는 못 찍는다고요”라고 하소연해야만 했다. 하지만 공드리가 자연광을 고집한 건, 이 기억의 말소가 현실 안에 있음직한 것으로 보였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고, 더군다나 그것이 매끈한 선이 아니라 울퉁불퉁한 비주얼로 표현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엘렌 쿠라스는 최대한 그 컨셉을 실현하기 위한 방책으로 많은 장면에서 강력한 주 조명(키 라이트) 위주로만 사용하여 중심인물과 주변 어둠과의 대비를 극단화했다. 그중에서도 얼음판 위의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장면은 특히 눈에 띈다. 감정적으로도 흡족한 이 장면은 오로지 엘렌 쿠라스의 혜안으로 만들어진 특별함일 것이다. 그녀의 혜안 덕에 <이터널 선샤인>은 특별한 변조 없이도 기억과 현실의 괴상한 실타래를 갖게 된 것이다.
거칠고 어두운 몽환의 숲
<파이> <레퀴엠>의 매튜 리바티크
대런 애로노프스키가 배트맨이라면 매튜 리바티크는 로빈쯤 될 것이다. “촬영감독으로서 나의 첫 직업은 가라오케 영상물을 찍는 것”이었다고 고백한 적이 있는 매튜 리바티크.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동조자>를 보고 촬영에 매혹되어 할리우드로 가 잡일부터 배워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고, 결국 촬영 공부를 위해 AFI에 들어간 첫날, 이야기가 잘 통하는 친구 한명을 사귄 것이 훗날 인생이 풀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가 바로 대런 애로노프스키다. 매튜 리바티크는 대런 애로노프스키의 단편 <프로토조아>를 포함해 장편 데뷔작 <파이> <레퀴엠> <파운틴> 등 지금까지의 모든 장편 작업을 함께했다. 물론 그동안 조엘 슈마허의 <폰 부스>, 스파이크 리의 <그녀는 나를 싫어해> <인사이드 맨> 등도 있었지만, 매튜 리바티크의 진가는 특히 대런 애로노프스키와 일할 때 나온다.
리바티크의 장점은 일종의 환각 비주얼 혹은 테크노적인 화면을 만들어낼 때다. 강박과 노이로제에 시달리는 인물들을 만들어내는 데 대런 애로노프스키가 강하다면, 그들의 환각적인 상태를 비주얼로 표현해내는 것은 매튜 리바티크의 몫. <파이>와 <레퀴엠>에서 그 느낌은 휘어져 늘어진 듯한 왜곡된 화면으로 혹은 두 인물의 상황을 빠르게 동시 진행시키는 분할 화면의 과감한 쓰임으로 혹은 배우의 몸에 부착된 보디 캠의 흐름으로 긴장감을 조성한다. 그것들이 끊임없이 사물 내지는 신체 일부의 거친 클로즈업과 겹치면서 거칠고 어두운 환각의 장면이 펼쳐진다. “세트의 분위기를 창조하는 것”이 촬영감독이 해야 할 중요한 몫 중 하나라고 말하는 걸 보면, 당분간 매튜 리바티크는 환상적이거나 인조적인 세트 위에서 몽환의 그림을 그려나가는 테크니션의 길을 걸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