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부산의 한국영화 7편 [5] -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2006-10-24
글 : 최하나
미로를 헤매는 청춘, 하지만 희망은 있다

노동석 감독의 두번째 청춘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자신이 없어요 그런데.” 서투른 순수함으로 가득한 청춘은 냉혹한 세상의 벽에 부딪혀 신음한다. 장편 데뷔작 <마이 제너레이션>으로 카드빚의 늪에 빠진 청춘을 담담하게 직시했던 노동석 감독은 다시 한번 신열과도 같은 젊음의 시간을 스크린에 담아냈다. 낭만의 거품을 걷어낸 청춘의 방황은 여전하지만, 3천만원의 저예산으로 제작됐던 전작과 비교할 때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제작 규모가 커졌을 뿐 아니라 연출 또한 한결 안정되고 세련돼졌다. 감독 자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맨 얼굴”과도 같았던 <마이 제너레이션>에 비해 <우리에게…>는 “화장을 한” 셈이다.

<우리에게…>는 대리운전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기수(김병석)와 그를 친형처럼 따르는 종대(유아인) 이야기다. 기수는 드러머를 꿈꾸지만 현실의 무게 탓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세상을 향한 불안감에 휩싸인 종대는 뒷골목을 배회하며 총을 구하고자 한다. 두 사람 곁에는 기성세대의 질서를 대표하는 인물인 김 사장이 있다. 그는 종대를 조직폭력의 세계로 이끌고, 안마 시술소에서 일하게 된 종대는 여자아이를 구하려다 ‘사고’를 저지르게 된다.

“<마이 제너레이션>은 아마추어영화의 극한까지 갔던 작품이다. <우리에게…>는 상업영화로서 요구되는 규범들을 갖추면서도,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놓치지 않으려 했던 노력의 결과다.” 현실의 리얼리티를 고스란히 가져와서 에피소드식으로 재구성했던 전작과는 달리 <우리에게…>는 영화적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기수와 종대는 김 사장으로 대표되는 조직폭력계와 뚜렷한 대립각을 형성하고, 총이라는 소재는 장르적인 폭력의 세계로 이야기를 인도한다. 인물들을 엮는 관계의 고리에는 사랑, 꿈, 우정 같은 대중적 코드들이 얽혀 있다. 하지만 현실을 응시하는 시선은 무뎌지지 않았다. <마이 제너레이션>에서 카드깡의 세계로 관객을 안내했던 종로의 뒷골목은 무기 밀거래의 무대인 을지로의 골목길로 이어지고, 평온해 보였던 일상의 세계는 어느새 숨막히는 미로가 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느낌이랄까. 분명 일상의 현실인데 조금만 비껴가면 출구를 알 수 없는 공간에 빠져버리는, 그렇게 헤매는 청춘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우리에게…>는 결정적인 파국을 맞이하지만, 동시에 결말을 통해 희망의 실마리를 암시하기도 한다. 이는 “사람들과 소통하려면 내 안에 있는 희망을 보여주어야 할 것 같았다”는 감독 자신의 변화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의 제목이 빚어내는 모순은 흥미롭다. <우리에게…>의 영문 제목은 아이러니하게도 <Boys of Tomorrow>, 즉 ‘내일의 소년들’이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아니 내일은 있다. 그 어딘가를 향해 펼쳐진 길 위에서 잠시 막을 내리는 청춘. 그들의 다음 여정을 그려나가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영화 속 얼굴들

김병석·유아인·이동호·최재성

노동석 감독에게 배우를 캐스팅하는 것은 친구를 사귀는 것과 비슷하다. 논리적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직관에 의지하는 것. “보통 젊은이들과는 다른 삶의 리듬이 매력적”이었던 김병석이 <마이 제너레이션>에 이어 다시 한번 부름을 받았고, <반올림>의 청춘스타 유아인은 울컥하며 내뱉은 “슬프죠”라는 말 한마디로 종대 역에 채택됐다. 기수 형의 아들 요한을 연기한 것은 <괴물>에서 고아성과 생사고락을 함께한 ‘천만 배우’ 이동호. 대다수의 아역배우들처럼 “조신하게 앉아 있다가 준비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테이블 위에 놓인 초콜릿으로 곧장 달려드는 모습에 바로 캐스팅이 결정됐다. 가장 반가운 얼굴은 김 사장을 연기한 최재성. “<공포의 외인구단>의 까치, <여명의 눈동자>의 최대치를 어린 시절의 우상으로 삼았던” 노동석 감독은 ‘야인’처럼 생활하던 그의 연락처를 어렵사리 얻어내 캐스팅에 성공했다. “배우의 느낌이 거의 없고, 동네 형같이 털털한” 모습이 감독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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