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관에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하기 전, 스크린에 노란 상자가 통통 튀어와 펑 하고 터지는 영상이 나타난다. 그리고 깔리는 목소리. “쇼우-박스.” 굳이 영화광이 아니더라도, 영화관을 종종 찾는 관객이라면 금방 떠올릴 수 있는 목소리다.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에서 배급하는 모든 영화의 리더 필름(leader film)에 등장하는 이 로고 목소리의 주인공은 그랜트 스톰보 아메리칸 보이싱 서비스 대표. 한때 한국에서 전무하다시피한 영어 전문 성우였기에 웬만한 영어 로고나 CF 징글은 모두 그를 거쳤을 정도다. 대표적인 것은 배우 이덕화가 닫힌 문을 두 주먹으로 때리는 1982년의 유명한 광고 “TRY”. 90년대 말 출범한 신생 케이블 영화채널들도 그의 목소리를 빌려 자신의 존재를 시청자에게 각인시켰다. “오-시-엔”, “캐치온”, “캐치 플러스”부터 “에로틱~아일랜드”까지, 모두 깊고 중후한 스톰보의 목소리다. 노벨상 받은 의학박사님의 진지한 얼굴 위로 겹쳐지는 “헬리코박터 프로젝트 윌”, 초콜릿을 깨물며 황홀해하는 신부의 얼굴 위로 흘러 나오는 “페레로 로쉐”, 하얀 바탕 위 빨간 캐논 로고에 어김없이 함께하는 “캐논” 등에서도 그의 목소리를 확인할 수 있다. KTX 열차에서 다음 정거장을 안내하거나 종착역 도시의 명소를 간략히 소개하는 안내 멘트도 그가 녹음했다. <태극기 휘날리며> <바람의 파이터> 등 해외 필름마켓이나 칸영화제에 내보낼 한국영화 홍보영상 다수에서도 내레이션을 맡았다. 북한에 해외 투자자를 유치하려는 현대아산의 홍보 필름도 그의 목소리를 거쳐 완성됐다. 안정적이고 신뢰감있는 톤이 특징인 그는 지금은 주로 GS, 삼성, 현대 등의 기업 홍보영상에 목소리를 제공하고 있다.
스톰보가 80년대 초 이래 거의 유일한 영어 전문 성우로 알려지게 된 건, 그가 1979년부터 8년 동안 주한미군방송 AFKN에서 아나운서 및 TV, 라디오 운영부장으로 일했기 때문이다. 업무상 KBS를 비롯한 몇몇 한국 업체와 알게 됐고, 당시 한국 CF에 영어 멘트가 하나둘 등장하면서 그들을 통해 광고 일을 소개받았다. 목소리를 쓰는 일에 처음 매력을 느낀 건 14살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린 그에게 변호사를 시키고 싶었던 아버지가 일찌감치 그를 화술 학원에 보낸 것이다. 대중 앞에서 말하는 법을 배우고, 정확한 발음을 훈련받던 그는 그곳에서 말하기의 재미에 눈을 떴다. 그는 변호사 공부보다는 라디오를 듣거나 친구들 앞에서 마틴 루터 킹의 연설문을 암송하는 게 더 즐거웠다.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방송계를 꿈꾸기 시작했고, 16살엔 지역 방송국에 들어가 뉴스와 광고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보냈다. 더 많은 방송 경험을 원했던 그는 미군 방송국에 입사했다. 보도국에서 뉴스 디렉터를 맡았고, 국방부에서 할리우드 스튜디오에 군 장비와 로케이션을 제공하는 업무를 담당하기도 했다. AFKN에서의 인연으로 한국에 정착한 이래 프리랜서 영어 성우로 일을 시작한 그는, 지금은 7년 전 결혼한 아내 정은주씨와 함께 아메리칸 보이싱 서비스라는 회사를 꾸리고 있다.
이제 한국에서 영어 전문 성우는 더이상 희귀한 직종만은 아니지만, 스톰보는 긴 세월 동안 아나운서로 훈련받은 전문직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프로 성우다운 특별한 톤의 목소리 연기를 부탁하자 쑥스러운 듯 몇 가지를 시연해 보인 그는, 극적으로 과장된 톤보다 일상적인 느낌의 차분한 목소리 연출을 추구한다고 덧붙였다. 멋을 부리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에 방점을 찍는다는 것. 누구나 그의 특별한 목소리를 신기해하지만, 본인은 녹음된 자기 목소리가 어색하기 그지없다고 한다. 그런 그가 잘 훈련된 목소리를 가진 기쁨을 가장 실감할 때는 15개월 된 딸을 위해 멋들어지게 동화책을 읽어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