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카우보이 비밥>의 스파이크, <바람의 검심>의 켄신 목소리 구자형
2007-01-23
글 : 강병진
사진 : 이혜정
정의를 지키는 쾌남전문

<카우보이 비밥>의 스파이크, <몬스터>의 덴마, <바람의 검심>의 켄신, <하얀 마음 백구>의 성견 백구까지. 성우 구자형의 팬카페에 올라온 ‘쾌남전문성우’라는 말은 그동안 그가 맡아온 캐릭터들의 공통점을 단박에 짚어낸다. 구자형의 목소리는 언제나 정의를 지키고 진실을 밝혀왔다. 냉정하면서도 차분한 그의 음색과 높낮이는 듣는 이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고, 안 그래도 잘생긴 미남 캐릭터들의 외모마저 돋보이게 했다. 하다못해 백구마저 잘생긴 토종 진돗개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구자형 자신은 주변의 이런 평가에 대해 조금은 냉정한 태도를 견지한다. “매력으로 느껴준 것은 고맙지만, 어떻게 보면 그만큼 비슷한 캐릭터만 맡아온 것 같기도 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맡은 캐릭터들에 대한 애정을 숨기는 것은 아니다. “모두 어둠과 밝음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인물들이죠. 스파이크는 과거의 상처를 안고 있고, 덴마는 처음에는 어수룩하지만 점점 인간의 깊이에 대해 고민하면서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 해요. 모두 제가 먼저 맡고 싶어했던 캐릭터들이었어요. (웃음)”

지금은 애니메이션 팬들의 가상캐스팅 보드에 항상 이름이 오르는 인기성우지만, 그는 원래 믹싱엔지니어를 꿈꾸던 학생이었다. “학교를 졸업한 뒤에 캐나다에 가서 일도 하면서 공부하려 했는데, 당시 걸프전 때문인지 비자가 늦게 나왔어요. 한참을 백수로 지냈는데, 한 친구가 사진관에 데려가서 사진을 찍게 하더니 원서는 이미 냈다고 성우 시험을 보라고 하더라고요.” 소리와의 질긴 인연 때문이었을까? 목소리 연기의 경험은 전무했지만 그는 당당히 시험에 합격했다. “아마 때묻지 않은 백지상태의 목소리였기 때문에 점수가 좋았던 것 같아요. (웃음)”

현재 방송가에서 구자형의 목소리는 고급스러움과 신뢰감으로 통한다. 여러 다큐멘터리에서 흘러나오는 그의 내레이션은 한쪽 눈으로는 과거를, 다른 한쪽 눈으로 현재를 보며 살아가는 스파이크처럼 균형있는 느낌으로 신뢰를 부여한다. “내레이션의 고급스러움은 목소리보다도 텍스트 자체에 대한 이해도 때문인 것 같아요. 그래서 항상 미리 준비하려 하는데, 현재 우리나라 제작시스템에서는 조금 힘든 부분이죠.” 철저한 준비는 구자형이란 이름 석자를 애니메이션 팬들의 기억에 남게 한 가장 큰 비결이기도 하다. <카우보이 비밥>의 스파이크 역을 준비하는 과정도 다를 바 없었다. 캐스팅 당시 PD에게 ‘선물’이란 명목으로 스무개가 넘는 비디오테이프와 A4용지 300여장 분량의 대본을 받았던 구자형은 그때의 일을 떠올리며 “이상적인 제작환경의 모델을 찾은 기분이었다”고 말한다. 이후 다른 애니메이션을 더빙하면서 꼭 원작 만화를 먼저 챙겨본 것도 그런 이유였다. “외화드라마가 방송 외의 창구로 넘나드는 요즘, 더이상 ‘완전한 내 것’의 의미는 무색해졌어요. 이제는 한국판으로서의 의미를 찾을 뿐이에요. 그걸 조절하는 것은 역시 텍스트에 대한 접근인데, 다양한 상상을 하기에는 만화책만한 것이 없죠.”

데뷔 이후 지금까지 주로 강직한 멋을 간직한 남자들에게 목소리를 입혔지만, 의외로 구자형은 “영화 <올랜도>의 주인공처럼” 양면성을 지닌 캐릭터에 더 큰 매력을 가지고 있다. 유아 프로그램 <꼬꼬마 텔레토비>에서 주제가를 부르고 해설을 한 것도 같은 맥락의 시도였다고. “<BBC> 버전에서는 성우가 마치 카우보이처럼 해설을 해요. 우리나라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설정이었기 때문에 동화구연처럼 친숙한 분위기에 정직한 느낌을 더하려 했죠.” <프라이멀 피어>에서 에드워드 노튼이 연기한 이중인격자 애런 역을 욕심낸 것도 마찬가지 이유였다. 캐릭터에 대한 바람 외에 성우로서 가진 더 큰 꿈이 있다면 배우들의 본래 음색을 좀더 살리는 더빙을 완성하는 것이다. “<CSI>를 보면서 호레이쇼 반장이 양지운 선배의 말투와 정말 비슷하다고 느꼈어요. 또한 <매트릭스>의 미스터 스미스는 돌아가신 장정진 선배와 정말 비슷했어요. 언어차이 때문에 힘든 건 있지만 앞으로도 더 노력해보고 싶어요.” 성우들의 세계에서 말하는 “싱크로율 120%의 더빙”이 그의 바람일 듯. 성우 구자형에게 그것은 곧 우리나라의 정서와 120%로 부합하는 한국판 버전의 탄생을 기원하는 마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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