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하얀거탑> 배우 인터뷰 2. 부원장 역 김창완
2007-03-20
글 : 문석
사진 : 오계옥
안경 벗으니까 바로 악역이 되더라

-<하얀거탑>에서 우용길 부원장 역을 맡으면서 여러 기사가 ‘김창완 악역 대변신’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나.
=뭐 재밌기만 하다. (웃음) 그리고 내가 보기엔 ‘뭐가 악역이라는 거야’라는 반응이 대부분인 것 같다. 사람들이 ‘악역’이라는 말을 또 즐긴 것 같다.

-‘악역’이란 말이 김창완 이름과 붙으니 즐기는 것이 아닐까.
=내가 악으로 변해서라기보다는 사람들이 일상에서 악을 재발견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 드라마 자체가 사실적이잖나. 예전에는 악역이라고 하면 악인을 형상화했는데, 이번에는 주변에서 왔다갔다 하는 사람이 악역이니까 희한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객관적으로 변신한 것은 사실인데, 이토록 강한 캐릭터는 처음 아닌가.
=그동안에도 강한 역할을 많이 하지 않았나. 애 하나 딸린 홀아비라든지 노총각이라든지 눈치보는 의사선생님이라든지. 그런 것들도 나름대로 강했는데. (웃음) 지금 보니까 그게 그 나물에 그 밥이었던 모양이다. 나는 그동안 작품할 때마다 ‘이번 작품에선 상당한 연기변신을 했다’라고 생각했는데. 그러니까 지난번에는 시골 의사를 하다가 지금은 애 딸린 홀아비를 하니 이건 대단한 변신 아닌가, 생각했는데 말이다. (웃음)

-<드라마티크>라는 잡지 표지에 악당처럼 등장한 것이 캐스팅 계기가 됐다던데. 그때 악역을 하고 싶다는 말도 했고.
=사실 예전부터 충무로에서 악역을 캐스팅할 때 내가 항상 상위에 꼽혔다고 한다. (웃음) 정말로. 그런데 번번이 좌절됐다. 그러던 차에 그 잡지를 보고 안판석 감독이 캐스팅을 했나보다. 즐거운 일이다.

-카리스마에 대한 갈망이 있었던 것인가.
=가수로서의 카리스마와 배우로서의 카리스마가 상출될 수 있다. 그러니까 한쪽의 카리스마가 강하면 한쪽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데, 내가 친근한 노래를 부르는 가수의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에 그동안 편안한 배역에 많이 캐스팅되지 않았나 싶다. 내가 독한 노래를 한다든지 했으면 그런 성격이 안 맞았을 수도 있다. 이번에도 가수로서의 나를 잊으면 우용길이라는 캐릭터에 접근하기 쉬울 텐데, 우용길에 다가가다가도 ‘아 저 사람, <개구쟁이> <꼬마야> <어머니와 고등어> 부른 사람이다’ 하면 금방 깨진다. (웃음)

-악역 연기에 대한 모니터를 해봤나.
=나는 원래 내 연기에 대한 모니터를 별로 하지 않는다.

-캐스팅 제의는 어떻게 받았나.
=안판석 감독님이 그냥 밥이나 먹자고 하더니 제의하더라. 그때만 해도 배역을 설명하는 것도 아니었다. 평상시에 그냥 한번 같이 했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승낙했다. 그러고 나서 소설을 읽었다.

-일본판 드라마도 봤나.
=아니. 아, 내가 나온 것도 안 보는데 일본 것을…. (웃음) 내가 원래 드라마를 안 본다. 영화나 가끔 보는데, 그것도 그나마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어떤가.
=내 주변에는 주로 자전거 동호회원들뿐인데, 많이들 좋아한다. 그냥 ‘너무 웃겨, 형’ 식의 반응이다.

-그동안 하지 않았던 종류의 연기라서 힘들지 않았나.
=별로 힘든 것은 없었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설정을 하나 했는데, 그게 안경을 벗는 것이었다. 안 감독과 이야기하면서 그렇게 결정했는데, 가장 먼저 한 일이 콘택트렌즈를 산 것이다. 연기를 하려면 아무래도 껴야 할 것 같아서. 그런데 하루종일 연습을 했는데도 눈에 낄 수가 없더라. 이걸 어떡하나, 걱정이 태산인 채로 첫 촬영에 갔는데 부원장에게는 운전기사가 있더라. 그래서 운전도 안 하는데 안 보이면 어때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냥 한 거다.

-안경만 벗으면 악역 연기가 된다?
=(쓰고 있던 안경을 벗으면서) 이 안경이 20년 동안 낀 안경이다. 이게 한번 부러졌을 때 너무 애를 먹어서 똑같은 것만 4개를 사놓았다. 그런데 내가 20년 동안 이 안경 뒤에 숨어 있었던 거다. 그것을 빼니까 바로 악역이 되더라. 복잡한 게 없다.

-잘 안 보여서 그런지 눈을 삐딱하게 바라보는 게 더욱 분위기를 살려주는 것 같더라.
=눈에 손이 자꾸 가는 장면이 있었을 텐데, 슛에 들어가면 무의식적으로 안경을 고쳐쓰려고 하다가 헛짓을 하는 것이었다. 안경이 있으면 눈동자를 이렇게 잘 안 돌린다. 그리고 잘 안 보이는 것을 보려고 하면 미간을 찡그리게 되니까 인상을 찌푸리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촬영에 들어가기 1주일 전부터 안경을 빼고 생활했다. 안 보이지만 마치 보이는 듯 강한 인상을 짓지 않도록 훈련하기 위해서였다.

-연기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대목이 있다면.
=어떤 대목이 아니라 찍는 내내 물리적으로 힘든 거다. 여기 입술도 두 번째 터졌다. 법정신 같은 것을 찍으면 꼼짝 못하고 10시간을 앉아 있어야 하는데 진짜 돌아버린다. 새벽에 끝나고 아침 9시에 라디오 생방송(SBS FM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을 해야 하고, 또 그게 끝나면 이천 세트장에서 촬영을 하고, 너무 힘들다. 나도 이렇게 힘든데 (김)명민이는 얼마나 힘들겠나. 며칠 전 그 친구 보고 “야, 너 시작할 때보다 늙었다”고 했더니 낄낄대더라.

-그동안 보여준 소박한 이미지와 <하얀거탑>의 우용길 중 현실의 김창완은 어디에 가깝나.
=이쪽도 저쪽도 아니다. 착하기만 한 역할을 해도 내 안에 가진 것을 반영하고, 이번처럼 악한 역할을 해도 내게 내재된 것을 반영한다. 사람이 살면서 착하거나 악하기만 할 순 없는 것 아닌가. 그런데 이전처럼 아주 착한 역이나 <하얀거탑>처럼 악한 역을 하면 이상한 해방감을 느끼게 된다.

-<하얀거탑>이라는 드라마를 한마디로 어떻게 정리하겠나.
=음… 무한히 변종이 가능한, 아주 함축성있는, 그러니까 우리 사회의 전형을 함축, 은유하고 있는 아주 전형적인 드라마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연기자 김창완에게 <하얀거탑>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누구나 무언가가 자기에게 커다란 의미가 있기를 바랄 것이다. 그런데 나는 큰 의미가 없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더라. 이게 나의 연기의 분수령이 된다든지, 그러면 우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이 드라마가 본인의 연기 폭이나 방향을 넓혔다고 생각지는 않나.
=글쎄. 내가 원래 다음 작품은 어떤 것을 하게 될까, 그런 생각을 거의 하지 않는데, 이 드라마가 적잖은 충격파가 있다 보니까 그런 생각도 하게 된다. 그런데 결론은 다시 착한 역을 하는 게 낫겠다, 쪽이다. (웃음) 하자고만 들면 뭔가 독특하고 강한 역할을 할 수 있겠지만, 그러다가 괜히 입맛만 버리면 그게 뭐 또 좋은 일일까 싶다. 그래서 다시 평범한 이웃집 사람 같은 역할로 돌아갈까 한다. 누군가 ‘아니, 그 사람 다시 그런 역 할 수 없어, 이미 낙인찍혔어’ 한다면 내 운명이니 할 수 없겠지만. (웃음)

-어디에선가 왕 역할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던데.
==그건 옛날부터 한 얘기인데, 우용길 역을 대신 했으니까. 왕도 하라고 한다면 또 못된 왕이…. (웃음) 감독님이 하라면 해야지, 뭐. 어떡해.

-연기생활 22년째를 맞는데, 데뷔작은 무엇이었나.
=<바다의 노래>라고, 황인뢰 감독이 연출한 1985년 어린이날 특집극이었다. 거기에서 로커로 출연했다. 그 드라마에서 처음 선보인 노래가 <안녕>이다.

-사실 초반에는 연기도 하는 가수 느낌이 있었는데, 점차 연기자로서의 비중이 높아진 것 같다.
=데뷔작 이후로 계속 캐스팅 제의가 있었고, 그러면서 연기를 차츰 많이 하게 됐다. 그래도 85년에 데뷔했는데 어디 가서 ‘저 연기자입니다’라는 말이 안 나오더라. 한 10년쯤 지나니까 연기자로 봐주더라. 가수도 마찬가지인데, 데뷔하고 10년 동안 ‘나 가수요’라는 얘기를 못했다.

-연기를 계속하고 싶었던 것 같다.
=재미있었다. 연기하는 것보다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게 좋았다. 황인뢰 PD 같은 사람하고.

-그동안 연기한 작품을 생각할 때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하얀거탑>하고 <떨리는 가슴>이다.

-라디오 진행도 오랫동안 한 것 같다.
=1978년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도 쉬지 않고 진행했다.

-라디오의 매력은 무엇인가.
=라디오는 뭐랄까, 내가 대중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기회다. 그리고 라디오에서야말로 진짜 내 생각을 만날 수 있는 것 같다. 라디오는 생방송이기 때문에 그때그때 시간을 살아내는 이야기다. 지나가버린 것을 반추할 수 없다는 게 흘러가는 인생과 사뭇 비슷하기도 하고, 그런 게 내 철학과 상당히 맞아떨어진다.

-지난해는 산울림 결성 30주년이었는데, 감회가 깊었겠다.
=그런 걸 기념하고 감동하고 하기엔 아직 젊어서…. (웃음)

-신곡도 여전히 만들고 있나.
=그렇다. 좀 두고보자. 많은 사람들에게 아주 좋은 선물을 드리고 싶다. 그건 노래의 획을 긋는 일이 될 수도 있고, 내 인생의 획을 긋는 일일 수도 있는데, 기존의 음악 스펙트럼을 넘어서는 음악을 만들려고 애쓰고 있다. 지금 드러나 있지 않고 보이지도 않는 그런 음악… 아주 실험적이어야 할 텐데. 머리가 아주 복잡하다.

-술을 무척 좋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제는 친구들과 맥주로 시작해서 정종, 폭탄주, 위스키를 마셨는데 요새 많이 줄었다. 그래도 상관없다. 나는 술 마시고 기절해서 쓰러지는 것을 좋아하니까. 그런데 스케줄이며 환경이 그럴 수 없는 게 아쉽다. 술을 술답게 못 마시니까.

-술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다.
=흔히 사람들은 술과 마음을 연결시키기를 좋아한다. 그러니까 술의 낭만에 대한 선입견을 갖고 있는데, 술은 정말 쿨한 거다. 술은 술이다. 술을 해독하는 방법은 후회밖에 없다. 그게 술에 대한 내 철학이다. 나는 술 때문에 로맨틱해진다는 것을 안 믿는다. 술은 스스로를 실제로 괴롭힌다. 그래도 술을 마시는 이유? 그런 거친 상태에 자신을 방목하는 것, 그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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