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귀공자의 얼굴 아래 어둠을 감추고
2007-05-24
글 : 김민경
<스파이더 맨>의 제임스 프랑코

사실 그는 스파이더 맨이 될 수도 있었다. <스파이더 맨> 시리즈의 제작자인 로라 지스킨이 그를 피터 파커 역에 추천했지만, 시큰둥한 샘 레이미 감독은 몇 차례의 테스트 끝에 그를 떨어뜨렸다. 대신 프랑코는 콤플렉스를 안은 피터의 친구 해리 역을 받았다. <스파이더맨 3>에서 프랑코는 토비 맥과이어 못지않은 비중으로 액션신을 책임진다. 몇분 동안 땅에 발 한번 대지 않고 날아다니는 뒷골목의 비행 추격신은 <스파이더맨 3>에서도 가장 빛나는 액션장면으로 손꼽힐 만하다. 고블린 복장을 한 프랑코의 긴 팔다리를 보고 있자면 스파이더 맨의 전신 타이츠가 그의 차지였더라면 시리즈가 시각적으로 더 훌륭했으리란 안타까운 탄식도 터져나온다.

<스파이더 맨> 시리즈의 해리는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하지만 뛰어난 친구에게 밀려나버린 안타까운 아들이다. 3편에서 제임스 프랑코의 얼굴은 구김없이 자란 여린 천성과 폭발하는 분노가 충돌하는 전장이 됐다. 기억을 잃었을 때는 세상의 선의를 전혀 의심치 않는 듯한 무방비한 눈웃음을 뿌리고, 복수를 꿈꿀 때는 치기어린 분노로 얼굴을 일그러뜨린다. 그의 외모는 이 귀공자-악당에 어울리는 이중성을 갖췄다. 나이브한 미소를 띠다가도, 미간을 찌푸리고 눈밑에 엷은 그늘을 드리울 때면 더없이 비열한 인상이 된다. 미간을 찌푸리고 담배를 빠는 그의 얼굴은 할리우드에서 가장 유명한 반항아 제임스 딘을 썩 닮았다. 무리한 연상은 아니다. 그는 실제로 2001년 TV영화 <제임스 딘>으로 골든글로브 최우수 연기자상(TV부문)을 수상했으니까.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브래드 피트 등을 두고 표류하다가 캐스팅 난조로 엎어질 뻔한 <제임스 딘> 프로젝트는 제임스 프랑코의 발견으로 극적으로 구조됐다. <제임스 딘>의 그는 어떤 면에서 <스파이더 맨>의 해리와 일맥상통하는 인물이다. 감독 마크 리델은 아버지에게 인정받으려는 절박한 마음이 제임스 딘의 삶과 예술적 경력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이해했다. 어머니를 잃자마자 아버지는 그를 먼 친척집에 보내버렸고, 부친의 애정에 굶주린 그는 언제나 뛰어난 존재가 되려 발버둥치면서 스스로를 고통에 빠뜨렸다. 전설로 박제된 제임스 딘의 초상을 설득력있게 재현하기 위해선 캐스팅이 가장 중요했고, 여기에 프랑코는 이견이 없는 정답안이었다.

그가 처음 연기를 만난 건 ‘너무도 수줍은 성격을 고쳐보려고’ 들어간 고등학교 연극반이었다. 순둥이 학생이었던 그는 연기를 하기 위해 UCLA 영문과를 중퇴함으로써 스탠퍼드 출신인 교육 마니아 양친을 좌절하게 했다. <제임스 딘>을 거치며 배우로서 그의 커리어는 서서히 전진했다. 로버트 드 니로가 그를 자신의 아들 역으로 직접 캐스팅한 <시티 오브 더 시>에선 노숙자이자 마약 중독자인 이 역할을 위해 실제 노숙자들을 찾아가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런 그가 드 니로는 매우 마음에 들었던 듯하다. “제임스는 정말 대단하다. 열성과 노력뿐 아니라 그 역할에 딱 맞는 재료를 잘 찾아내는 안목도 있다. 이 영화의 성공의 핵심은 제임스다.” 천성이 모범생인 그는 어떤 작품이든 성실히 임한다. 책과 영화를 많이 참고하고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며 자신감을 채워야 안심하는 스타일이다. 해군사관학교 열등생이 권투로 자아를 찾는 이야기인 <아나폴리스>에 캐스팅됐을 땐 6~8개월 동안 권투를 배우며 준비했고 1차 세계대전 파일럿이었던 <그레이트 레이드>를 위해 비행사 자격증까지 따버렸다. “물론 자격증이 꼭 필요했던 건 아니다. 그냥 난 원래 자료 조사를 좋아하니까, 하는 김에….” 쉬는 시간에 뭐하냐는 질문엔 “쉬지 않는다”고 대답할 정도다. 잠자는 것도 싫어한다. 그 시간에 할 수 있는 일들을 생각하면 차마 잠이 오지 않는 단다. 10대 매거진에 나가 웃통 벗고 사진 찍는 홍보 활동도 그의 성품엔 맞지 않는다. 내성적인 성품의 그는 지금도 카메라 플래시와 언론의 주목이 편안하지 않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 그가 연기한 인물들도 대개 내면이 섬세한 조용한 청년들이다. “<스파이더 맨>의 해리도 아마 영화의 인물 중 가장 마음고생이 심한 캐릭터 아닐까. 그래서 그가 재미있다.” 물론 다른 역할도 해보고 싶지만 성급하진 않다. “사실 난 내성적인 역할에 좀더 끌린다. 그렇다고 이런 역만 하고 싶은 건 물론 아니다. 아마 앞으로 다른 기회가 올 것이다. 로버트 듀발도 차분하고 튀지 않는, 내성적인 역할만 했지만 어느 순간 <지옥의 묵시록> 같은 놀라운 변신을 보여줬지 않나. <대부>의 톰 하겐과 완전히 다른…. 언젠가 내게도 그런 기회가 오리라 믿는다.” 스파이더 맨의 거미줄을 타고 전세계의 관객을 만난 지금, 그에게 더 많은 가능성을 기대해볼 만하다.

사진제공 R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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