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놈 아냐, 미친놈.” 데뷔작 <런 어웨이>를 만들고 있던 1995년의 어느날, 김성수 감독은 난감한 상황을 맞아 혼잣말을 뇌까렸다. 무술감독이자 스턴트 연기자인 한 스탭이 자동차에 부딪혀 나가떨어지는 연기를 하고 있는데, 정작 감독인 자신은 한마디도 못한 채 뒷짐만 져야 한다니. 그 무술감독이라는 작자는 그날 다른 영화를 찍다 사고를 내 쇄골이 바스라지는 중상을 입었는데도 치료도 받지 않은 채 현장으로 달려와 ‘약속은 약속’이라며 자동차에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의 몸 상태가 나쁜 탓에 잠시 동작을 멈칫한 것을 놓고 김 감독이 “잠깐 멈춰섰군”이라고 한마디 던진 것이 화근이었다. 이 말에 발끈한 무술감독은 이를 앙다문 채 “감독님, 한번 더 하겠슴다”라더니 자동차를 향해 몸을 날려댔다. 그리곤 자신의 연기가 맘에 안 든다며 “한번 더 하겠슴다”를 연발하며 몸을 거듭 던지는 그에게 김 감독이 할말은 없었다. 결국 다섯 번째 머리를 땅바닥에 박은 그가 그제서야 마음에 드는 연기가 나왔다며 “이제 됐슴다”라고 판정을 내려줄 때까지는.
김 감독이 회상하는 그 ‘미친놈’의 정체는 바로 한국 최고의 무술감독으로 손꼽히는 정두홍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의 ‘국가대표’ 무술감독이자 최상의 스턴트 연기자인 그를 둘러싼 일화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고 다양하다. 김영빈, 장현수, 김성수 등 그와 함께 여러 작품을 만든 영화감독들의 이야기만 들어도 반나절은 훌쩍 넘길 정도다. 여기에 이런저런 영화, 셀 수 없이 많은 드라마까지 포함한다면 단행본 상하권쯤은 족히 나올 만하다.
이 책에는 <머나먼 쏭바강>을 찍을 때, 경비초소에서 떨어지는 장면을 연기하다 머리로 땅을 받아 두번 혼절했던 이야기나, <비트> 때 지하주차장에서 자동차를 들이받은 그의 오토바이가 천장에 부딪히자 차승재 당시 우노필름 대표가 “이젠 끝이다, 쇠고랑 차겠구나” 했다는 사연이 분명 들어갈 것이다. 또 어느 드라마를 찍다 한강으로 잘못 떨어져 허파가 터진 일이나 <장군의 아들> 때 머리를 깎으라는 지시에 바락바락 대들었다가 조감독이었던 김영빈 감독과 친해졌다는, 하지만 결국 머리는 자르고 말았다는 일 또한 페이지 구석 어딘가를 차지할 터. 이 이야기들을 종합해보면, 그는 항상 자기주장이 강했고, 늘 정도가 지나쳤으며, 언제나 대형사고를 칠 준비가 돼 있었다.
그런데도 한번 그와 작업하는 데 맛을 들인 연출자는 항상 그를 곁에 두고 싶어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감독이 원하기만 하면 어떤 장면이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결국엔 만들어내기 때문. 감독이 원하는 장면을 정두홍이 거절했던 적보다, 정두홍이 하겠다는 액션을 감독이 말렸던 경우가 더 많다고 하니 짐작할 만하다. 실제로 촬영장에서 연기를 직접 하거나 지도할 때 그의 눈빛은 섬뜩할 정도로 강렬하고 매몰차다. 오죽했으면 한때 주위에서 “쟤 마약하는 것 아냐?”라며 수군거렸을까. 하지만 한번이라도 그의 웃음을 본 사람이라면 혼란을 느낄지도 모른다. 평소 그는 그저 순박하고 사람 좋은, 김성수 감독의 표현대로라면 ‘촌놈’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태권왕을 꿈꾸던 소년
그의 표현에 따르면 ‘완전 깡촌’인 충남 부여군 임천면 칠산리에서 67년에 태어난 그는,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까지는 짐작과 달리 유난히 내성적인 아이였다. 운동에 취미도 없었고, 여자아이들 앞에서 뭔가 하는 것을 쑥스럽게 여기기도 했으며, 체구도 작은 편이었다. 그런 그의 삶을 확 뒤바꿔놓은 사건이 일어났다. 학교 부근에 태권도 도장이 생긴 것. 그의 기억 속에는 어릴 때 TV에서 본 적 있는 어린이 태권왕대회라는 행사가 너무도 멋진 장면으로 남아 있었다. 남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어,
소년 정두홍은 몰래몰래 도장에 나갔다. “당시엔 뭔가 미쳐야 할 게 필요했었던 것 같다”는 그의 말처럼 그는 운동에 흠뻑 빠져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도장에 나가 몸을 연마했다. 여기에는 뭔가를 하면 끝을 볼 때까지 하고야 마는 그의 ‘독한’ 성격 또한 한몫했다. 형편이 너무 어려워 도장비를 내지 못했지만, 정두홍의 성실성과 자질을 높이 산 이각수 관장은 그에게 공짜로 태권도를 가르쳤다.
이렇게 시작된 운동과의 인연은 결국 운명이 돼버렸다. 고등학교 졸업 뒤 체육특기자로 인천체전에 진학한 그는 태권도와 한국문화를 해외에 소개하는 시범단에 선발돼 대학 시절 대부분을 세계를 돌며 보냈고, 군에서도 전방 수색대의 무술교관으로 근무했으며 제대 뒤엔 잠시 동안 국회의원의 수행요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그러던 차에 충무로에서 스턴트맨 경력이 있는 수행요원 선배가 정두홍에게 스턴트맨 일을 권했다. 이 제안은 어린 날 부여읍내의 작은 극장에서 이대근, 백일섭의 액션영화를 보고 ‘뻑 갔던’ 그에겐 꿈을 실현하게 될 것이라는 메시지로 들렸다. “드디어 내가 액션배우의 길로 들어서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스턴트에서 무술지도로 지평을 넓혀가다
그의 분홍빛 꿈은, 하지만 현실에게 무참히 짓밟힌다. 1990년 당시 스턴트맨에 대한 대우는 보잘 것 없는 것이었다. 게다가 출연하기로 한 비디오용 영화에서조차 자리를 못 잡아 그의 단련된 근육은 스턴트팀의 가방을 들거나 무거운 장비를 나르는 데 이외엔 사용되지 못했다. 큰 충격을 받은 그는 일을 접고 개인수련에 들어갔다. 지금까지 그가 터전으로 삼고 있는 보라매공원을 찾은 것도 그때부터였다. 구로동에서 매일같이 버스를 타고 보라매공원에 나와 체력을 길렀고, 인근 합기도 도장에서 밤 11시부터 새벽 5∼6시까지 이런저런 격투훈련을 했다. 나중엔 아예 보라매공원과 가까운 봉천동 산동네로 이사와 산비탈을 오르락거리는 훈련까지 보탰다. 그렇게 석달을 버티고 나니 임권택 감독의 <장군의 아들>에서 이일재가 맡은 김동회의 대역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3개월 동안의 땀과 허기는 고스란히 작품을 통해 발휘됐고 당시 현장 관계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장군의 아들>이 새로운 스턴트 배우의 탄생을 알렸다면, 1995년 <테러리스트>는 무술감독의 세대교체를 선포하는 대사건이었다. <꼭지딴> <장군의 아들2> 등에서 대역 연기자로 활약했고, 이일목 감독의 <시라소니>, 장현수 감독의 <게임의 법칙> 등에서 무술지도를 맡아 나날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줬던 정두홍은 <장군의 아들> 조감독 시절부터 그를 눈여겨봤던 김영빈 감독의 <테러리스트>에서 최민수의 대역을 맡아 화려하고 폭발적인 액션을 펼쳤을 뿐 아니라 상당부분의 액션장면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는 땀내 나는 액션을 보여주고자 하는 김 감독의 뜻을 반영해 롱테이크로 액션을 만들어냈다. 배우끼리 액션 동작을 약속하는 것을 의미하는 ‘합’ 측면에서도 보통 영화의 5합 정도를 훨씬 뛰어넘어 10∼15합까지 가는 힘든 액션을 선택했다. 김성수 감독의 <런 어웨이>에서는 배우가 직접 연기하면서도 박진감 넘치는 액션장면을 담아내기 위한 실험을 했고 <나에게 오라>에선 동네싸움 같은 느낌을 원한 김영빈 감독의 의도를 실현하기 위해 배우에게 감정을 담아 액션을 연기하는 법을 가르쳤다.
새로운 액션에 대한 강박증적 열망
하지만 서서히 정두홍은 큰 고민과 함께 슬럼프에 빠지기 시작했다. 좀더 사실적이고 가쁜 호흡의 액션을 연출하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액션의 공간을 산으로 옮겼던 <불새>는 이같은 상황에서 탈출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나무 사이를 뛰며 구르는 모습을 스스로 고안한 이동카메라로 찍어 꽤 괜찮은 성과를 얻기도 했지만 그의 허탈감을 달래기엔 역부족이었다. <본투킬>은 정우성에게 직접 액션을 맡기다보니, 다른 액션에서 오버를 하게 된 것 같았고, 새로운 액션을 거의 만들어내지 못했다고 자평하는 <남자의 향기> 또한 자신이 슬럼프에 빠져 있음을 인정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그의 새로운 액션에 대한 열망은 강박증에 가까웠다. “뭔가 달라지거나 발전하지 않는다면 그만두고 말겠다”는 그의 욕심은 <비트>에서 잠시 빛을 발했다. 스텝 프린팅이라는 새로운 환경을 이용해 액션장면을 만드는 것이 참신했고, 필름에 묻어나는 느낌이 달랐다. 그동안 해본 적 없는 권투 액션을 만들어낸 <태양은 없다>도 흥미로웠다. 침체의 늪에서 서서히 빠져오를 무렵 그에게 거칠게 도전장을 던진 작품은 강제규 감독의 <쉬리>였다. 처음 시도하는 본격적인 총기액션을 준비하기 위해 할리우드 작품을 꼼꼼하게 연구했고, 겉멋 들지 않은 능수능란한 연기를 위해 배우들과 많은 대화를 나눈 끝에 그는 한국적 총기액션을 위한 꽤 묵직한 주춧돌을 세웠다. 특수효과팀과의 팀워크가 결정적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도 이 작품을 통해서였다. 레슬링에 도전했던 <반칙왕>, 검술액션을 세련화한 <단적비연수>, 맹수 같은 불을 조련해야 했던 <리베라 메>까지 그는 지치지 않고 달려왔다. TV드라마에서도 의미있는 성과를 여럿 거뒀다. <머나먼 쏭바강>에서는 전쟁장면을 원없이 만들었고, <홍길동>에서는 독학으로 연구한 와이어액션을 선보였으며, <임꺽정>에선 검술액션을 시도해봤고, <열애>에서는 리모콘을 이용해 자동차 추격장면을 생생하게 찍기도 했으며, 실감나는 자동차 전복장면도 연출해봤다.
하지만 무엇보다 김성수 감독과 함께한 <무사>는 그의 야심작이었다. 일본의 , 미국의 <벤허>처럼 한국을 대표하는 액션신을 만들겠다는 꿈을 가졌던 그는 서부영화에서 무협영화, 현대 액션물까지 검토하며 주도면밀한 연구를 했다. 화면을 보는 관객에게 스크린에서 흘리는 핏방울을 퉁길 정도의 생생한 장면을 만들겠다는 야심을 품었지만, 결과가 고생한 만큼 나오지 않아 스스로에게 실망감도 느꼈다. 하지만 지금 그에겐 낙담할 틈조차 없다. <흑수선>에서는 <머나먼 쏭바강>과 <쉬리>에서 익힌 대형 액션을 응용했고, 최근 촬영을 마친 <공공의 적>에서는 강우석 감독과 호흡을 맞춰 ‘주먹 한방’ 위주의 액션을 만들어봤다. 현재 촬영중인 류승완 감독의 <피도 눈물도 없이>는 국적 불명의 액션을 만들어내는 것이 목표. 시퀀스마다 다른 컨셉의 액션이 펼쳐진다는 점도 그를 자극한다. 또 민병천 감독의 <내츄럴시티>에서는 SF적인 액션을, 김영빈 감독의 <발해>에서는 최초로 항공액션을 연출할 계획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