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와 경력| 13살은 어린 나이가 아니다. 적어도 아만다 바인스에겐 그랬다. 13살 때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토크쇼를 진행했던 그녀가 아니던가. “처음 ‘아만다 쇼’라고 적힌 대본을 받았을 때였죠. 사람들이 농담하는 줄 알았어요. 내 쇼를 가지게 되다니, 오, 정말 놀라웠어요.” <피겨 잇 아웃> <올 댓>에 캐스팅한 데 이어 그녀를 토크쇼 호스트로 지목한 어린이 전문 케이블채널 <니켈로데온>은 아만다의 재능을 발굴한 최초의 미디어였다. 1999년부터 3년간 <아만다 쇼>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그녀는 <빅 팻 라이어>로 스크린에 데뷔했다. 그 뒤로 5년. 영화 데뷔작은 물론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십대 소녀 데프니를 연기한 <왓 어 걸 원츠>, 축구를 위해 남장도 불사하는 용감무쌍한 비올라로 등장하는 <쉬즈 더 맨> 등 지금까지의 출연작을 뜯어보면 코미디가 유독 눈에 띈다. 치과의사인 아버지가 한때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활약하기도 했다니, 그 영향이 적지 않을 듯싶다. “가족 모두 코미디를 사랑해요. 나는 코미디언을 존경하며 자랐다고 생각해요. 재미있는 가족을 가진 것이 도움이 됐어요.”
매력 포인트| 아만다 바인스의 얼굴은 귀엽지만 평범한 편에 속한다. 눈웃음을 흘리는 미소녀보다 긴 다리로 축구공을 차며 함성을 지르는 말괄량이에, 멜로보다는 코미디에 확실히 어울리는 외모다. 바인스 역시 “나는 어떤 소녀들은 좋아하지 않을 이상한 것들을 즐겨 해요. 예컨대, 새 영화(<쉬즈 더 맨>)에서 소년을 연기했고 매일 머리를 핀으로 고정했고 메이크업도 하지 않았죠. 유머 감각에 더 기대야 했어요”라고 고백한다. <보스턴 글러브> 역시 비슷한 의미에서 “틴 팬들이 되고 싶은 모든 것과 그들이 자신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동시에 갖췄다”며 바인스의 인기를 설명했다. 호감은 느껴지되 위화감은 일으키지 않을 정도. 무척이나 어려울 이미지의 줄타기를 그녀는 이미 터득한 것이 아닐까. 2003년 ‘할리우드에서 가장 유명한 소녀 스타’라는 제목 아래 린제이 로한, 힐러리 더프, 올슨 자매 등과 같이 <베니티 페어>의 표지를 장식했고 2007년 21살 이하의 스타 중 다섯 번째로 돈을 잘 버는 것으로 꼽히기도 했지만, 바인스는 여전히 이웃집에 사는 말괄량이 소녀 같다. 사내들의 야유에도 기세 좋게 응수할 것 같은 키라 나이틀리, 예쁘지만 실수 연발일 듯한 제니퍼 애니스톤의 후계자로 그녀를 주목하는 것은 너무 이른 예측일까.
아만다가 말하는 아만다| “아빠는 ‘너는 왜 네 자신을 다른 사람으로, 다른 무언가로 바꾸고 싶어하지?’라고 말했어요. 나는 또래들이 나를 좋아하는 이유가 내가 바로 그들처럼 보여서라고 생각해요. 알다시피, 나는 사교계 명사 같은 사람들보다 그들과 더 비슷해요.”
기대작| 존 워터스가 연출한 <헤어 스프레이>(1998)의 리메이크작. 페니 핑글턴 역에 캐스팅됐다. 뚱뚱한 소녀 트레이시 턴블래드는 <코니 콜린스 쇼>에 완전히 사로잡혔다. 그녀에겐 방과 후 절친한 친구인 페니와 함께 이 쇼를 보는 것이 인생 최대의 낙이다. 어느 날 트레이시는 오디션에 참가해 쇼에 출연할 기회를 얻지만 인기를 빼앗길까 두려웠던 앰버 폰 투슬과 그녀의 엄마가 그녀를 무너뜨릴 계략을 짜기 시작한다. 반향에 휩싸였던 원작과 쟁쟁한 출연진을 염두에 둘 때 <헤어 스프레이>는 바인스의 연기 경력에서 터닝포인트가 될 가능성이 높다. <왓 어 걸 원츠>에서 콜린 퍼스와 부녀 관계를 과시하긴 했어도 존 트래볼타, 미셸 파이퍼, 퀸 라티파 등과 함께 공연할 기회는 분명 흔치 않을 터. 어린 시절 <애니> <비밀의 정원> <사운드 오브 뮤직> 등의 뮤지컬에서 연기의 토대를 닦았던 그녀가 음악이 중요한 모티브로 작용하는 이번 영화를 통해 얼마나 성장했을지는 2007년 여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