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광주를 재현한 영화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당시를 겪지 못한 세대에겐 다른 역사적 사건을 다룬 영화들과 다를 바 없겠지만 지금의 영화계라면 특별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우선 누구나 얘기하듯 한국영화의 위기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상반기 내내 화제가 될 만한 흥행작없이 극심한 자본난에 빠진 영화계가 제작비 100억원을 들인 블록버스터의 흥행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화려한 휴가> 시사회에 무대인사를 나온 제작자와 배우들이 한국 영화계의 최근 어려움에 대해 언급한 것은 이 영화가 한국영화의 위기를 헤쳐가는 데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과거 <태극기 휘날리며>와 <실미도>가 천만 관객을 동원하며 영화인들에게 자신감을 갖게 한 기억은 이런 대작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은근한 기대를 갖게 한다.
하지만 단지 그것이 이 영화에 대한 기대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장선우 감독의 <꽃잎>이 있었지만 <꽃잎>이 택한 길은 멀리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날의 학살 현장을 재현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던 일이다. 이에 비해 <화려한 휴가>가 나오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준 영화가 있다면 <실미도>일 가능성이 크다. 비교적 멀지 않은 과거사를 장르적으로 접근한 <실미도>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현대사의 비극을 다룬 영화들의 제작 가능성이 활짝 열렸다. 80년 광주는 <실미도>의 북파공작원들 이야기에 비해 많이 알려졌지만 비극적 요소는 <실미도>보다 커서 그만큼 공감대도 넓다고 할 수 있다. <화려한 휴가> 제작진은 80년 광주의 진상을 널리 알린다는 의무감 못지않게 이 소재가 흥행요소를 두루 갖췄음을 알고 있었다. <화려한 휴가>가 코미디와 멜로드라마라는 장르적 외피를 두른 것은 그래서일 것이다. <화려한 휴가>는 소재에 대한 접근법에 있어서 <실미도>의 바통을 이어받고 있다. <꽃잎>이 전면적 재현을 피해서 아쉬움을 남겼다면, <화려한 휴가>는 흥행코드를 휘감고 태어난 재현 때문에 논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