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제일 무서운 건,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내 안의 두려움이었다”
2007-07-17
글 : 이성욱 (<팝툰> 편집장)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김지훈 감독 인터뷰

-<목포는 항구다>를 정통 누아르로 준비하다 잘 안 돼 코미디로 바꿔 장편 데뷔를 했고, <화려한 휴가> 역시 제작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화려한 휴가>는 언제, 어떻게 시작된 것인가.
=나에게 ‘데미지’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운좋게 데뷔한 것 같다. 단편영화할 때와 그동안 내가 이야기했던 것들 때문인지 김지훈이 코미디를 찍었다는 자체가 코미디다, 라는 말을 들었을 때 재밌었다. 그러나 나한테 중요했던 건 예술적인 고민에서의 영화가 아니라 직업으로서 영화감독의 길은 무엇일까, 였다. 누아르를 준비하던 시기의 주류는 코미디였고, 그 강도가 내 체감으로는 99% 정도였다. 물론 다른 좋은 영화가 나오는 시기이기도 했지만, 신인이 데뷔하기에 코미디라는 카드를 선택하지 않기가 쉽지 않은 시기였다. 미리 매를 잘 맞았다고 생각하고, 내 영화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 작품에 접근할 때 과연 나의 영화적 진정성은 어디에 있는가 고민해야 했다. 대구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는데 그래서인지 체험적으로, 선험적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에 보수성이 있었다. 대학 와서 5·18 자료와 비디오를 보게 됐는데 내가 알아온 진실과 너무 달랐다. 잘 알지 못한다는 건 부끄러움이 아니라 죄악일 수도 있었다. 그런 부채의식도 있고, 5·18이 영화적으로 드라마틱하다 싶어 영화로 찍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우연찮게 기획시대의 이수남 프로듀서가 이 영화를 준비하면서 감독을 찾고 있다고 들었는데, 하겠다는 말은 못했다. 유인택 대표가 김지훈이 하면 먹물 냄새 나지 않게 잘하겠다고 먼저 말을 꺼냈다. 전태일 영화를 해서 그랬는지 지식인이 나오는 것보다 일반인의 정서로 동시대성을 표현할 수 있지 않겠냐, 그 동시대성은 현재진행형이고 그 보편성은 지금도 변함이 없는 것 같다고. 누가 되지 않을까 고민스러웠다. 다시 책을 봤고, 우연히 인물현대사를 통해 윤상원 열사를 봤는데 대학 시절의 그 울컥거림이 다시 올라왔다. 물론 출발 자체가 쉽지 않았다. 주위에서 ‘그래, 잘할 수 있어’ 하고 으샤으샤해도 힘든데, 긍정적 시선보다 과연 이 시대에 5·18 영화가 되겠냐, 그리고 경험 많은 감독이 찍어야 하지 않겠냐는 이야기가 많았다. 제일 무서운 건, 과연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내 내부의 두려움이었다. 이 세 가지가 복합적으로 나를 힘들게 했다. 시나리오도 힘들었다. 임진왜란하면 이순신, 6·25하면 민족상잔하는 식으로 대표성을 띠는 게 있는데 5·18은 민주화항쟁으로 추앙받지만 내가 어떤 식으로 재해석할까 하는 문제가 난감했다. 제작기간 3년 중에서 2년 동안은 무엇을 보여줄 것이냐는 텔링과 쇼잉의 문제로 보냈다.

-그 문제를 어떻게 풀었나.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처음부터 시작했다. 황석영 선생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의 기초가 됐던 2만장 정도의 증언록부터 봤다. 두려움의 시대에 살았는데 궁금해서 나가보니, 내 친구가 안 와서 나가보니, 내 가족이 안 와서 나가보니…, 이런 사람들이 많았다는 게 핵심이었다. 역사의 소명의식을 가지고 나간 사람들보다. 5·18 항쟁의 10일 동안 가장 중요한 엑기스는 결국은 민초였다. 그래서 주인공으로 일반 시민이 나왔다. 처음부터 지식인이 나오거나 역사적 사명이나 숙명의식을 다루는 게 아니라 내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어하는 이들이 주인공이 돼 역사의 중심에 휩쓸리는 과정이 영화의 주제가 되어야 했다.

-캐릭터가 모두 쟁점이 될 만하다. 우선 박흥수 캐릭터(안성기), 시민군을 지휘하고 정치군인들과 대립하는 일을 수행한다.
=증언록에 따르면 유사한 캐릭터들이 있다. 중대장 출신이 시민군에 참여한 경우도 있고, 경찰을 지휘하는 분이 상부 명령에 불복하고 시민군 진압을 못하겠다며 옷을 벗은 분이 있다. 서장급 이상이었다. 그들의 궤적을 추적해보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까 했던 거다. 무에서 유를 창출한 건 아니고 결여된 무라고 생각한다.

-발포 명령자의 문제를 어떻게 다룰지 고민스러웠을 텐데.
=정부도 밝히지 못했지만 누군지 다 알고 있지 않나. 5·18이 역사적으로 정리가 안 된 부분을 책임을 지워서 법정에 세웠는데 명확하게 그 지점에 대해 밝히지 못한 거다. 이 영화에서 누가 발포 명령을 내렸는가가 중요한 건 아니고 그것으로 희생당한 분들이 어떤 감정이었나, 그리고 그 감정이 우리에게 어떻게 현재진행형으로 와닿느냐가 문제다. 발포문제를 주제로 갔다면 뭔가를 추적하는, 완전히 다른 영화가 됐을 거다. <JFK>나 <굿 셰퍼드> 같은 형식으로 가야 했을 거다.

-잘 알려진 사실을 곳곳에 넣으면서 멜로 같은 픽션을 엮어갔는데, 넣고 싶었는데 뺄 수밖에 없다거나 반대의 경우는 없었나.
=이요원의 마지막 표정이 이 영화의 키워드라고 생각한다. 발포 명령자 문제나 5·18 현장도 중요하지만 살아남은 자들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는 게 난해하고 복잡하긴 해도…. 넣고 싶은 것과 뺄 것의 취사선택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20대 초반을 상대로 영화를 보여주고 모니터링을 해보면 ‘정말 실제 있었던 일이냐’라고 묻는다. 시나리오 모니터링 할 때도 그랬다. 영화를 쉽게 풀려고 했던 건 지금의 문화와 역사의 주류가 되고 있는 젊은 세대가 재밌게 접근해서 역사 속으로 들어와야 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우회적으로, 고급스럽게 포장할 수도 있지만 대중영화의 키워드는 보편성이다. 이전에 나왔던 한국적 블록버스터들이 가족주의를 다루는 게 이런 지점이 아닐까 싶다. 눈으로 즐거움이 와서 가슴으로 느껴지는 게 이 영화의 숙제였다.

-김상경과 이요원의 멜로라인이 강하다. 한 개인의 고뇌를 설명하는 기제로 적절하긴 하지만 그 수위를 놓고 고민이 많았을 것 같은데.
=정말 강한가? 비판 많이 받았다. (웃음) (투자자 등에게서) 멜로가 너무 약한 거 아니냐고. 내가 생각한 멜로의 라인은 멜로의 과정이 아니라 짧지만 강한 임팩트다. (주위에선) 사랑한다고 말을 해야 하고 키스하고 포옹해야 사랑이라고 여겼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같이 남아 있지 못하고 떠났다는 부채의식을 강하게 느낀다는 걸 취재하면서 알게 됐다. 두 사람의 멜로가 형성되는 감정을 거기서 찾았다. 윤상원 열사가 마지막에 총을 달라는 고등학생에게 너는 살아남아라, 그래서 나중에 우리가 어떻게 피를 흘렸고, 죽었는지 알려야 한다고 했다.

-가장 중요한 장면은 금남로의 첫 발포장면이 아닐까 싶다. 직설화법으로 재현했고, 영화적이다.
=우리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이다. 그것 때문에 5·18이 우리 기억에 남고 민주화항쟁이 된 거니까. 이것을 어떻게 표현할지가 가장 중요한 무게중심이었다. 솔직히, 영화적 숏들과 영화적 사운드의 분배를 했다. 경악을 넘어선 감동을 보여주고 싶었다. 총소리를 들었을 때, 관객이 그 속에 있는 듯 느꼈으면 좋겠다고. 그런데 이 순간의 장면은 5·18 사진 자료 중에 유일하게 없는 것이다. 발포 뒤 사진은 있는데 그 순간의 시간은 사라져버렸다. 총을 쏘는 사람, 총을 맞는 사람의 사진이 하나도 없다. 정부 기관에서 다 없앴다는 말도 있다. 결과적으로는 영화에 도움이 됐다. 생지옥, 아비규환이라 설정하고 맘대로 영화적 숏 구성을 할 수 있었으니까. 나 자신이 주관적으로 많이 들어가 있는데, 이 집단 발포장면에 영화의 진정성이 있다고 본다. 모든 캐릭터들이 이 지점에서 입체적으로 변하기 시작하는데 이 장면에서 진정성을 못 느끼면 이 영화는 실패하는 거다. 내 영화적 상상력과 공력을 이 장면에 많이 쏟아부었다. 실제로 6분가량 되는 데 보면 2분 정도로 느껴지게 만들었다. 편집을 4개월하면서, 거짓말 안 보태고 100번 정도 이 신의 편집을 계속 바꿨다. 템포와 리듬을 계속 바꿔가면서…. 보면 볼수록 피가 거꾸로 솟는 장면이다. <말아톤> 찍은 윤철이가(정윤철 감독) 보고서 앞으로 5·18을 이야기할 때 이 장면이 자료화면으로 흐를 거라고 하던데, 기분 좋더라.

-<꽃잎>과 비교할 수밖에 없는 장면이기도 한데, 거기서도 애국가가 울려퍼질 때 총성이 시작된다.
=애국가가 울려퍼질 때를 발포 명령으로 삼았다는 건 정설처럼 돼 있다. 강준만이 쓴 책은 단정적으로 말하고 있고, 임철우 소설 <봄날>에도 그렇게 나온다. 시민들은 그때 공수부대원들이 물러난다고 생각하고 10분 전, 5분 전 그렇게 카운트했는데 말이지. 너무 드라마틱하다. 국군이 국민을 해하는데 어떻게 작전명을 ‘화려한 휴가’로 했으며, 애국가를 썼을까.

-금남로 학살의 촬영 현장은 어땠나.
=27년 전을 잘 재현하는 게 중요하고 힘들었는데 금남로 세트에만 30억원을 들였다. 500m 정도의 거리를 아스팔트로 만들고, 실제 도청을 85% 정도 세우고, 도청 앞 분수대와 주변 건물을 만들어야 했다. 그동안 3층 높이의 세트는 있었지만 6~7층 높이 건물을 세트로 만든 건 없었다. 철골을 박아야 하니까. 미친 짓 같더라. 뜨거웠던 금남로가 재현되지 않으면 의미없는 영화였다. 다행스러운 건 강풀의 <26년>도 영화화되고, 김현석 감독의 <스카우트>도 되는 이유는 금남로가 만들어져 그런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스카우트>는 이 세트에서 찍고 있다. 또, 보조출연이 1600명이 왔는데, 애국가 울릴 때 총성과 함께 일제히 뛰어가야 했다. 옷 갈아 입히고, 염색시키고, 신발 갈아 신기는데, 한여름에 식사를 하게 하는 것도, 물을 마시게 하는 것도, 화장실 가는 것도 정말 힘들었다. 미친 짓을 한 것 같다. 내가 악독하게 했는데 다들 너무 잘해주었다. 금남로 장면은 7일 동안 찍었는데 신기하게도 (편집에서) 쓰지 않은 숏이 없다.

-후반에 감독이 촬영을 멈추고 직접 제작비를 구하러 다니기도 했다고.
=어디서 그런 얘기를…. 더 잘 찍으려고 세트에 30억원을 들이면서 예산을 많이 초과했다. 원래 20억원 잡았는데, 거리 간판값만 1억원이 넘었다. 그런데 비가 온 경우 빼고 촬영을 넘긴 적은 없다. 그걸 지키려고, 스탭들에게 죄송하지만, 밥도 안 먹이고 촬영한 적도 있으니까. 제작비 문제는 다 해결됐다.

-지식인이라면 신부님이 유일하고, 당시 정황에 대한 간단한 해설성 대사가 전부다.
=5·18은 오래된 역사가 아님에도 대표할 만한 인물이 없다. 그냥 민중으로 아우러지는데 이것이 지금 5·18을 해석하는 지점인 것 같다. 지식인이 영화에 있으면 해석하게 되고 방향을 제시하게 되는데 우리 영화는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쉽게 체험하면서 알아가고 이해하게 되는 것. 내 가족이 아프고 내 친구가 아파서 역사에 뛰어든 것이기 때문에 (지식인은) 영화 성격상 불필요한 캐릭터가 아닌가 생각했다. 논리적으로 정형화하는 것보다 즉자적으로 실천하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지식인을 배제한 것이, 이데올로기적으로 해석하지 않은 게 내가 잘못한 건가 싶기도 하지만(웃음), 이념이나 이데올로기 위에 있는 인간형이 이 영화에 있다.

-<목포는 항구다>의 원래 누아르가 어떤 모습이었나 궁금해진다.
=경찰이 사건을 해결하려 갔다가 음모로 사건을 뒤집어쓰고 도망다니면서 경찰을 버리고 경찰의 적이 되어서 싸우는 이야기다. 준비중에 <무간도>가 너무 완벽하게 나와서 포기한 측면도 있다. 유바리판타스틱영화제가 <목포는 항구다>를 코미디로 초청한 것도 웃겼는데, 상 받은 건 더욱 코미디였다. 심사위원장인 미이케 다카시가 영화의 출발을 다시 생각해보자 그건 판타지다, 코미디면 코미디에 충실한 게 중요할 수 있다고 했는데, 내가 영화를 택한 이유도 그런 것 같다. 내가 경험하지 못하고, 속에서 갈등하고 있는 지점을 영화를 통해 배설하거나 해결될 때 쾌감을 느끼는 것. 내가 촉촉해지고 감동할 수 있는 지점이 영화의 출발이 아닐까 싶다. <화려한 휴가>도 이런 지점에 충실했다. 가슴이 먹먹해지고 떨림이 전달되는 감정이 먼저고, 역사적 해석은 그 다음이라고 생각한다. 상업적으로 이용하느냐고 할 수도 있지만, 왜곡이나 해석을 잘못하는 것이 상업적 이용 아닌가.

-두 영화 공히 의리가 대단히 중요히 다뤄진다.
=다른 말로 하면 인간적 정, 도리라고 생각한다. 마지막까지 도청에 남았던 분들을 생각하면 정말 역사적 소명의식만 있었을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정과 도리가 아니었을까 싶다. 부마항쟁은 총 앞에 해산됐지만 5·18은 총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고 전진했다. 죽어간 나의 동료, 친구들이 폭도라고 인지되는 걸 밝히고 싶었던 것 같다. 그 마음이 도리가 아닐까. 내 인생에서는 앞으로도 이게 중요할 것 같다.

-캐스팅에 어려움은 없었나.
=박흥수 캐릭터가 관건이라고 봤다. 처음부터 안성기 선배님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시나리오 나오자마자 찾아뵀다. 일찌감치 결정됐다. 그리고 김상경, 이준기, 이요원은 시나리오를 여러 곳에 돌렸을 때, 가장 관심을 많이 보인 배우들이었다. 이요원은 시나리오 보고 진짜 <목포는 항구다>의 감독이냐고 묻기도 했다고 한다. (웃음) 코미디를 찍었지만 완성된 감독이 아니니 열심히 하겠다고 했다. 김상경이 한 민우는 정말 민우 같고, 특히 요원이 잘해줬다.

-도청 지하에 다이너마이트를 쌓아놓고 폭파시킬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에피소드는 진짜였나.
=실제다. 뇌관을 해체하러 온 프락치가 있었고, 독침 맞았다고 병원에 실려갔는데 사라진 사람들이 있었다. 도청 지하에 실제로 다이너마이트를 옮겨 쌓아두긴 했으나, 일종의 보험처럼, 사용하진 않았다. 이 부분은 최종 편집에서 많이 줄였다.

-<꽃잎>과 순서가 뒤바뀐 느낌이기도 하다.
=그림으로 치면 정밀화가 나오기 전에 추상화가 먼저 나온 셈이랄까. 개인적으로는 팩트를 보여주기보다 해석을 가하는 후일담이나 우회적으로 다루는 게 영화의 형식으로는 더 좋다고 생각한다. 순서가 조금 바뀌기는 했지만 영화적으로 비로소 완성되는 게 아닐까 싶다. 김현석 감독의 <스카우트>가 5·18 직전까지의 이야기이고, 강풀의 <26년>이 그 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화려한 휴가>는 징검다리가 될 것 같다. 늦었지만 이 영화로 진맥을 했다면 처방은 다른 감독님의 몫인 것 같다.

-<그때 그사람들>이나 <실미도> 같은 팩션드라마는 어떻게 봤나.
=임상수 감독의 영화적 재해석은 폐부를 찌를 정도로 강력하다. 관객에게 망원경을 던져준 것 같은데 보면 현미경이다. <실미도>는 현미경을 줬는데 망원경 같은 느낌이다. 의아스러웠던 건 <실미도>가 잘 알려진 사건이 아닌데 굉장히 많은 사람이 봤다는 거다.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 영화도 <실미도>에 가까운 망원경의 영화인 것 같다.

-감독은 대구에서, 프로듀서는 부산에서 컸는데 성장이 전혀 다른 지역이었다는 것이 부담되지 않았을까.
=카푸치노를 처음 먹었을 때의 충격이 지금도 선명하다. 된장처럼 익숙한 게 아니라 전혀 알지 못했던 맛을 알게 됐을 때의 충격이랄까. 광주와 호남쪽의 정서를 전혀 모르다가 알게 됐을 때의 1차적 충격이 나를 자극시켜줬다고 생각한다. 몰랐기 때문에 더 꼼꼼하게 알려고 했고, 그래서 폐부에 더 와닿았다. 장점이 더 많았다고 생각한다.

-<님을 위한 행진곡>이 보컬없이 울려퍼지던데.
=20대의 40~50%가 이 노래를 모르더라. 이것도 의외였다. 그렇지만 이 곡을 넣는 것은 최소한의 예의라고 봤다. 5·18의 대변인 같은 윤상원 열사의 영혼결혼식에서 비롯된 곡이니까. 부디 의도적인 게 아니라고 봐줬으면 한다. 운동권과 거리가 먼 댄디한 분이 이 대목에서 펑펑 우는 바람에 난감했던 기억이 난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