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판타스틱4: 실버서퍼의 위협> 슈퍼히어로 시트콤의 탄생
2007-08-28
글 : 듀나 (영화평론가·SF소설가)

keyword | 시트콤 블록버스터

블록버스터가 시트콤이 될 수도 있다고? 저 멀리 1961년 탄생한 <판타스틱4>는 같은 마블 코믹스 영화들인 <엑스 맨> <스파이더 맨> <헐크> <데어데블>보다 뒤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역사로 보건대 사실 그들의 ‘원조’라 불러도 그리 틀리지 않다. ‘변이’를 겪은 캐릭터라는 점에서 <엑스맨>이나 <스파이더 맨>과 유사하지만 그들은 매스컴 앞에 전혀 두려움이 없다. ‘일상의 슈퍼히어로’라는 측면에서 <판타스틱4>는 <스파이더 맨>보다 몇 발짝 더 나아가는 것이다. 더욱이 속편인 <판타스틱4: 실버서퍼의 위협>은 심각함과 상징의 부재 혹은 매스컴 앞에 선 스타로서의 슈퍼히어로라는 점에서 좀더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처럼 <판타스틱4> 시리즈는 아기자기한 시트콤이 된 블록버스터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스파이더 맨>이나 <슈퍼맨>과 같은 고전적인 미국 슈퍼 영웅 만화책들이나 그 만화책들을 기반으로 한 각색물들에 익숙해져 있다가 <판타스틱4: 실버서퍼의 위협>을 접하면 사람들은 당황하게 된다. 전편에 언급되는 이들의 태생은 특별할 게 없다. 전에는 평범했던 다섯명이 임무 수행 중 우주선에 노출돼 네명은 슈퍼 영웅이 되고 한명은 슈퍼 악당이 된다. 뻔한 이야기.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왜 얘들은 신분을 위장하지도 않고 가짜 아이덴티티도 만들지 않는가? 왜 뻔뻔스럽게 본명과 맨 얼굴로 공공장소에 나오고 심지어 결혼식에 연예기자들이 총출동하는가? 이들 중 한명은 유니폼에 기업 광고까지 달고 다닌다.

셀레브리티 슈퍼 영웅들

답은 이렇다. 걔들은 원래부터 그랬다. <판타스틱4>는 <슈퍼맨>이나 <원더우먼> 그리고 <배트맨>과 같은 DC 코믹스 캐릭터들이 쌓아올린 미국식 슈퍼 영웅 이야기에 대한 마블 코믹스와 편집자 스탠 리의 대안 중 하나로 만들어졌다. 스탠 리는 전통적인 미국 슈퍼 영웅 이야기의 과장된 신화를 조금 깎아내고 그 빈자리에 사실주의와 일상묘사를 끼워넣어 슈퍼 영웅이 등장하는 연속극 같은 스타일의 만화책들을 만들었는데 <엑스맨> <스파이더 맨> <판타스틱4>는 모두 그런 시도의 일부다.

<스파이더 맨>과 <판타스틱4>의 사실주의는 종류가 조금 다르다. 신분을 위장한 고전적인 영웅인 스파이더 맨이 추구하는 사실주의는 평범한 미국 청년인 피터 파커의 일상을 초능력과 슈퍼 악당이라는 돋보기를 빌려 확대하고 과장해 묘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피터 파커/스파이더 맨의 모험은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뛰어들고 연애와 직업 사이에서 고민도 하는 평범한 미국 청년의 일상을 신화화한 것이다. 하지만 <판타스틱4>의 사실주의는 좀더 직설적이다. 시리즈는 일단 말도 안 되는 만화 설정을 통해 그들이 슈퍼 영웅이 됐다고 우긴다. 일단 그렇게 해놓고 그들과 사회가 이 새로운 설정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비교적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이다. 물론 아주 사실적이지는 않다. 사방에서 초능력을 가진 악당들이 쳐들어오고 그들은 인류의 운명을 걸고 싸워야 하니까. 하지만 그것도 역시 설정이라고 받아들이면 <판타스틱4>의 세계는 충분히 사실적이다. 적어도 <스파이더 맨>보다는 사실적이다.

그 결과물은? 그들은 할리우드 영화배우들과 비슷한 존재가 된다. 당연한 게 아닐까? 대중은 특이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갈망하고 영웅시한다. 몸을 자유자재로 늘리고 투명해지는 것과 같은 초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요안 그리피스나 제시카 알바처럼 생겼다면 파파라치와 연예 프로그램 기자들이 달라붙고,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이 텔레비전과 인터넷을 통해 생중계되는 건 세상에서 가장 당연한 일이다. 그게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이다. 오히려 슈퍼 영웅의 초능력을 갖고 있으면서 일상생활에선 늘 구박만 당하고 돌아다니는 피터 파커가 비정상이다. 원래 슈퍼 영웅 공식은 좀 괴상한 구석이 있다. 스파이더 맨은 그래도 가면이라도 쓰고 다니지만, 얼굴 그대로 드러내놓고 다니는 슈퍼맨과 원더우먼의 이중생활이 들통 나지 않는 게 말이 되는가? 하긴 원더우먼은 중간에 포기하고 자기 얼굴을 그대로 드러내놓고 돌아다니기도 하지만 그건 다른 이야기고….

그러나 <판타스틱4>는 <스파이더 맨>과 같은 깊은 진실성에는 도달하지 못한다. 스파이더 맨은 가면을 쓰고 신분을 위장함으로써 자신의 사생활을 정상적인 프라이버시의 영역 안에 감추어둘 수 있다. 하지만 <판타스틱4>의 모든 행동들은 미디어의 관찰대상이 된다. 그 과정 중 진지함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나는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이 이혼 전후에 비슷한 상황에 처한 다른 부부들처럼 진지한 갈등을 겪었고 그 뒤에도 심각한 고통과 마주쳤을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과연 타블로이드 신문과 파파라치가 배달한 사진들을 통해 그들의 드라마를 실시간으로 본 우리에게 과연 그 드라마가 심각하게 느껴지는가?

TV 카메라 앞 셀레브리티의 시트콤

한 가지 규칙이 있다. 그건 개인의 갈등을 진지하게 끌어가려면 일단 프라이버시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예로 들 수 있는 멋진 예는 스티븐 프리어스의 <더 퀸>(2006)이다. 프리어스와 각본가 피터 모건은 훨씬 자료가 풍부한 공식 일정 속에서 여왕의 드라마를 묘사할 수도 있었을 것이고, 그게 다이애나와 윈저가를 다룬 수많은 TV영화들이 했던 일들이다. 하지만 프리어스와 모건은 기자들이나 매스컴의 방해가 없는 발모랄 궁 안에서 완벽한 프라이버시를 지키며 그 안에서 갈등하는 여왕의 모습을 그린다. 이유는 당연하다. 기자들과 TV 카메라는 드라마를 깨먹기 때문이다. 이 공식은 <판타스틱4>와 <스파이더 맨>에도 정확히 일치한다. 액션은 다른 사람들이 봐도 된다. 하지만 드라마는 개인의 영역이다.

그 결과 <판타스틱4>는 시트콤이 된다. 그것도 가족 시트콤. 아들들 노릇을 하기엔 휴먼 토치(크리스 에반스)와 씽(마이클 치클리스)이 좀 나이가 많긴 하지만, 인비져블 걸(제시카 알바)과 미스터 판타스틱(이안 그루퍼드)이 모범적인 시트콤 커플로 나와 리드하는 이들 4인조는 분명 시트콤 가족이다. 하긴 원작도 어느 정도 그랬다. 그래도 매스컴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숨어 긴 호흡으로 멜로드라마를 끌어갈 수 있는 만화책과 달리 영화는 거의 순수한 시트콤의 범주에 남는다. 진지한 드라마를 다루기엔 매스컴의 존재감과 농담의 비중이 너무 큰 것이다. 이 영화에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진지하게 갈등하는 인물은 주인공들이 아니라 그들이 대항하는 모호한 악역인 실버서퍼다.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적으로 돌리고 있는 상황이다보니 그는 침묵 속에서 자신의 속내를 공공연하게 드러내지 않고 심각한 고민을 진지하게 할 수 있으며, 그걸 적절한 순간에 자기 말을 잘 들어주는 금발 미녀에게만 몰래 살짝 털어놓을 수도 있다. 그의 이야기는 미디어가 가공하지 않은 진짜 드라마다. 그의 소중한 그런 프라이버시가 나중에 나올지도 모른다는 <실버서퍼>에서도 그대로 남아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할리우드 사람들이 공감하는 블록버스터

이 작품을 만든 할리우드 사람들에게는 <판타스틱4>의 모험이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난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스파이더 맨>보다는 <판타스틱4>에 훨씬 더 공감할 것이라고 믿는다. <스파이더 맨>이 관객의 삶을 대표한다면 <판타스틱4>는 할리우드 영화쟁이들을 대변한다. 그들이 자기 이야기인 후자에 기우는 건 당연한 일. 매스컴 서커스에 치여 갈등하는 인비져블 걸과 미스터 판타스틱의 갈등 스토리는 할리우드 사람들의 자기 고백이고 선언이다. 그들은 이 이야기를 통해 아마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 우린 우리 사생활을 침입하는 파파라치와 타블로이드가 지겨워! 우리도 남들 방해받지 않고 그냥 보통 사람들처럼 살고 싶다고! 하지만 세상이 우리를 부르는 한 우리는 계속 당신네들이 보는 앞에서 어릿광대 노릇을 하겠어! 그게 우리 일이니까!” 이런 고백이 더 좋은 각본과 액션 속에서 나왔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 프레스턴 스터지스의 <설리반의 여행>(1941)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 감동적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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