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2008년 한국영화의 첫 발견, 한국 액션스릴러의 진화 <추격자>
2008-02-19
글 : 주성철

<추격자>는 단편 <완벽한 도미요리>(2005)와 <한>(2007)으로 주목받은 나홍진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그는 대담하게도 ‘한국판 <24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밤을 꼬박 새우며 벌어지는 전직 경찰과 연쇄살인마의 끈질긴 추격전을 담아냈다. 단연 올해의 발견으로 부를 만한 ‘한국적 리얼리즘 스릴러’ <추격자>의 나홍진 감독과 한 호흡으로 달려가는 두 배우 김윤석과 하정우를 만났다.

이제 막 새해의 2월에 들어선 시점이라 참 머쓱한 표현이긴 하지만 <추격자>는 단연 올해의 발견이다. 나홍진 감독은 신인답지 않은 노련함과 부지런함으로 밤장면과 비장면이 대부분인 이 거친 스릴러를 빈 틈없이 완성해냈다. <추격자>는 김윤석이 왜 송강호는 물론 최민식, 설경구에 결코 뒤지지 않는 활력 넘치는 남자배우인지를 증명해주며, <비스티 보이즈>와 <멋진 하루>로 여전히 쉬지 않고 내달리고 있는 하정우 역시 매번 그를 향해왔던 기대감이나 가능성 그 이상의 몇배를 돌파해낸다. 더불어 <추격자>는 철저히 한국사회라는 현실의 공간에서 펼쳐지는 스릴러다. 시장은 똥을 맞고, 경찰들은 성과에 연연하며, 그런 가운데 사람들은 계속 죽어나간다. 그야말로 각자 알아서 살아가야 하는 약육강식의 세계다. 거칠게 경찰영화 혹은 스릴러 장르로 수렴하는 한국 장르영화사의 계보학을 그려나간다면 <추격자>는 <공공의 적>과 <살인의 추억>을 교과서로 보고 자란 세대의 멋진 대답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시간으로 쫓고 쫓기는 ‘한국판 <24시>’

<추격자>에서 단연 주목해야 할 점은 거의 실시간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라는 점이다. 출장안마 포주를 하고 있는 전직 형사 중호(김윤석)는 데리고 있던 여자들이 잇따라 사라지는 일을 겪는다. 그러다 가장 가까운 시간에 일을 나간 미진(서영희)을 불러낸 손님의 전화번호가 최근 사라진 여자들이 마지막으로 통화한 번호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녀들이 사라진 망원동 일대에서 미진을 찾아 헤매던 그는 영민(하정우)과 마주치자, 번호가 일치함은 물론 형사 시절의 육감으로 그가 바로 범인임을 알아차리고 추격을 시작한다. 이미 뜰 대로 뜬 ‘미드’ <24시>의 잭 바우어(키퍼 서덜런드)처럼 중호는 밤새도록 그를 쫓는다. 기어이 그를 잡아 경찰서 지구대와 기수대(기동수사대)를 번갈아 오가지만, 횡설수설하는 소리만 늘어놓는 그를 눈앞에 두고도 경찰의 무능으로 막상 ‘처넣지는’ 못한다. 그렇게 이성과 제도로 해결하지 못하게 된 순간 중호는 오직 야성과 육감으로 물고 늘어진다.

하지만 기계가 아닌 이상 그 동물적 야성은 피로감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꼬박 밤을 샌 중호와 영민은 서로 잡고 도망치기 위해서도 싸우지만, 슬슬 감겨드는 무거운 눈꺼풀과도 싸워야 한다. 골목길을 정신없이 내달리는 그들의 육체적 피로, 골프채와 망치를 들고 서로를 죽이려 달려드는 그들의 대결을 보고 있으면 정말이지 온몸의 진이 빠지는 것 같은 체험을 하게 된다. 더구나 여러 가지 이유로 밤을 새우고 아침을 맞아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추격자> 역시 <24시>와 마찬가지로 밤을 지나 여명의 순간을 맞이하는 오묘한 기분을 전한다. 밤새도록 경찰은 동분서주했지만 사건은 해결되지 않고 결국 영민은 풀려난다. 그는 미진을 막 죽이려던 찰나에 경찰서로 왔기에 집을 향하는 학살의 발걸음이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다. 그걸 알기에 중호는 미진을 구하기 위해 미치도록 달리고 또 달린다. 꼬박 밤을 샌 사람의 전력질주란 어떤 느낌일까. 미치도록 손을 흔들어보지만 택시는 전혀 손님으로 생각되지 않는 이 미친놈을 피해 질주할 뿐이고 중호 역시 숨 돌리고 버스 노선을 확인할 여유가 없다. 그냥 대충 기억해둔 머릿속의 지도를 맞춰보며 앞만 보고 달려야 한다. <추격자>는 아마도 지난 몇년간 가장 무섭고 피로한 아침을 보여주는 한국영화다.

이 지긋지긋한 워커홀릭의 리얼리즘

아마도 <추격자>의 가장 거대한 역설이자 재미는 중호로부터 나온다. 누구나 짐작할 수 있겠지만 그는 과거 형사 시절 많이도 ‘해 처먹었고’ 그래서 급기야 비리가 발각돼 형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분명 그는 과거 불성실한 형사였을 것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형사를 그만둔 다음에야 중호는 (물론 얼마간의 폭력이 수반되긴 하지만) 현직 경찰들보다 더 월등한 추리와 수사 실력을 발휘한다. 동네를 샅샅이 뒤지고, 교회를 찾아가 탐문수사까지 벌이며, 용의자로 보이는 인물도 놓치지 않는다. 형사 시절 없던 직감도 일을 그만두고서야, 미진이라고 하는 자신의 사유재산이 침범당하자 생겨났으니 이를 어찌 설명해야 할까. 더불어 형사를 그만둔 중호가 먹고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 형사 시절 알고 있던 인맥과 정보를 활용해 불법에 기생하는 것이다. 중호가 거느리고 있는 ‘오좆’도 과거 그가 형사 시절 접촉하던 정보원쯤 될 것이다. 그렇게 경찰과 범죄자는 악어와 악어새처럼 공존, 공생하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추격자>가 장르영화 그 이상으로 비범하고 리얼한 것은 무능한 경찰의 우왕좌왕을 보여줘서가 아니라 바로 그 더러운 악순환의 풍경화를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중호와 영민은 별다르지 않은 인물이다. 망치와 정으로 무고한 사람들을 해치는 영민의 모습은, 석재상에서 곡괭이를 들고 발광하고 역시 망치로 영민을 벌하려는 중호의 모습과 그대로 겹친다. 그렇게 24시가 지나면서 둘은 똑같은 인간이 된다. 게다가 중호와 영민의 과거사를 어설프게 들춰내려는, 그래서 마치 그들의 범법과 악마성이 ‘뭔가에서 유래했다’는 식의 면죄부를 주지도 않는다.

나홍진 감독의 영화는 워커홀릭의 세계다. 자신의 솜씨와 무관하게 완벽한 요리에 도전하는 <완벽한 도미요리>의 조리사, 여러 종류의 땀(한, 汗)을 만들어내는 <한>의 인물들 역시 집착에 가깝다고 할 만큼 무언가에 끈질기도록 매달리는 사람들이다. <추격자> 초반부 하얀 타일이 오밀조밀한, 영민이 살인을 저지르는 거대한 지하실은 <완벽한 도미요리>의 주방 혹은 때밀이 청년의 땀이 흐르던 <한>의 목욕탕 공간을 연상시킨다. 그리하여 그의 단편을 주목했던 많은 사람들은, 그의 단편을 떠올리게 하는 공간의 등장에서 역시 워커홀릭처럼 비주얼에 대한 갈증을 보여줬던 나홍진 감독의 비주얼적 면모를 떠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추격자>는 예상외로 그 반대지점에서 시작되고 완성됐다. 영화의 대부분이 밤장면과 야외장면이라는 점에서도 완전히 다르다. <추격자>의 카메라는 실시간의 현장감을 살리는 것은 물론, 그 쫓고 쫓기는 워커홀릭들의 대결을 전혀 끼어들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지켜본다. 나홍진 감독은 테크닉 과시에 연연하지 않고 마치 <한>의 땀이 비처럼 쏟아지는 서울의 골목길에서 가만히 그들의 대결을 쫓는다. 정말 인물들과 함께 밤을 샌 것처럼 피로하고, 영민의 망치를 내가 얻어맞은 것처럼 혼미하다. 충무로 연출부 경험이 전혀 없는 나홍진 감독은 한국 영화계의 어딘가에서 자신을 끝없이 단련하고 있는 건강한 인재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안도감이며, 거의 야생동물처럼 서로에게 달려드는 김윤석과 하정우는 원치 않게 내 몸에 뿌려진 독한 향수처럼 질기도록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