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의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 그리고 이런 전직 경찰과 연쇄살인마의 이야기를 그려야겠다는 생각, 어느 것이 먼저였나.
=전자가 먼저였다. 김미진이 사라지고 그걸 실시간으로 추적하는 구조를 먼저 생각했다. TV시리즈 <24시>도 물론 봤다. 시즌1만 봤는데 당시 굉장히 큰 충격을 받았다. 정말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재미있는 거다. <추격자>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고는 할 수 없지만 하여간 큰 쇼크를 줬다. 더불어 <추격자>는 클래식한 느낌으로 찍고 싶었다.
-꼬박 밤을 새우는 이야기라는 게 디테일을 표현하는 데도 힘들 것 같다. 분장이나 의상 등 장면 연결의 일관성이 흐트러지면 안 되니까.
=가령 김윤석 선배의 경우 수염 길이가 장면마다 크게 다르면 안 된다. 적당히 비슷하든가 서서히 자라야 한다. 그런데 왜 그리 수염이 빨리 자라는지. (웃음) 게다가 실시간의 이야기임에도 시간 순서대로 촬영하지 못하고 현장 사정상 뒤죽박죽으로 찍어야 했던 게 아쉬움이었다. 그 흐름 속에서도 늘 기대 이상의 연기를 보여준 배우들이 정말 고마웠다.
-모처럼 캐릭터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영화였다. 카메라도 최대한 개입하지 않는 느낌이고.
=그래서 촬영감독, 조명감독님의 고생이 컸다. 나는 처음부터 배우들을 자유롭게 하려고 ‘기술적인 문제 때문에 배우에게 제약을 주지 말자’고 얘기했다. 조명이 어디까지밖에 안 미치니까 배우가 그 조명의 선을 벗어났다고 해서 NG를 내지 말자는 거다. 그런 제약을 최대한 적게 가져가고 싶었고 테스트 촬영도 안 하고 싶을 때는 안 했다. 그러니 배우들을 쫓다가 포커스가 나가기도 하고 해서 스탭들에게는 너무 죄송했다. 과거 나와 단편 때부터 함께했던 스탭들이 많은데 종종 ‘정말 이런 컷 쓰시면 안 돼요’ 그러면서 항의도 많이 했다. (웃음)
-신인감독으로서 테크닉 과시에 빠지지 않은 것은 중요한 미덕이다.
=모든 스탭과 배우들에게 계속 얘기했던 건 ‘우리 장난치지 맙시다’라는 거였다.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 정직하고 사실적으로 지켜보는 게 중요했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촬영감독님의 키가 좀 작아서 인물 숏 대부분이 아이레벨보다는 좀 낮게 미세한 로앵글로 잡혔다. 그건 내 의도가 아니다. 죄송합니다 촬영감독님. (웃음)
-중호와 영민은 망치를 들면서 서로 똑같은 인간이 된다. 애초의 의도가 거기 있나.
=그게 이 영화의 중요한 설정 중 하나라고 봤다. <추격자>를 실시간 구조, 사건 해결, 경찰에 대한 풍자 등 여러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는데 그 역시 중요하다. 두 인간을 점점 똑같아지게 만들고 싶었다. 그래야 마지막 대결의 파괴력이 세지니까.
-마지막 대결은 정말이지 짐승들의 싸움 같다.
=이를테면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라 고민이 많았는데 난 아무런 말도 않고 그냥 싸우길 원했다. 원래 그런 클라이맥스에서 배우들이 말을 많이 하지 않나. (웃음) 그래서 배우들에게 이건 아무도 보지 않는 싸움이다, 서로 죽이려고 안달이 난 싸움에서 무슨 말을 하겠나, 그냥 싸워달라고 주문했다. 말할 시간 있으면 골프채나 망치를 한번 더 휘두르는 게 맞는 거지. 게다가 두분의 합이 너무 잘 맞았다. 무술감독님께서 ‘허허 참 미치겠네’ 하시면서 특별히 지도해줄 게 없다고까지 하셨으니까. 난 영화 하면서 격투신도 처음 찍어봤는데 정말 두 배우의 동물적인 냄새가 모니터에서도 나더라.
-중호와 영민의 과거사를 명쾌하게 밝히지 않는 이유는 뭔가.
=물론 그것도 의도적인 것이다. 그건 사실 영화가 좋은 반응을 얻었을 때까지를 감안한 건데(웃음), 그러면 사람들이 궁금해할 수 있으니까. 사실 나는 중호나 영민 같은 인물들을 이해하고 싶지 않다. 영민보다는 중호가 인간적으로 그려질지 모르겠지만 그 역시 영민을 마구 패는 범법자나 다름없다. 그래서 그들이 과거 결손가정 등 어떤 상처를 겪어서 저런 상태가 됐고, 하는 식의 설정들을 다 없애버렸다. 저들을 이해해야 하는 단서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중호나 영민은 원래 그런 놈들이니까. 영화를 재미있게 봤다면 각자 생각하고, 되짚어보면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