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추격자> Q&A, “4885가 무슨 번호냐면 말이죠.”
2008-03-06
정리 : 이영진

나홍진 감독의 시시콜콜하면서도 의미심장한 답변 모음

tip 1. 야! 4885

“영민의 휴대폰 번호 뒷자리 4885는 우리집의 옛날 전화번호다. 892-1번지는 부모님이 사는 집 주소이고. 좀 애먹었던 건 차 넘버인데 소품팀에서 가져왔는데 번호를 보니가 강남 넘버인 거다. 몇컷 찍은 다음에야 그걸 알아차렸다. 하는 수 있나. 대포차라고 하자 그랬다. 엄중호는 대학 동창 이름에서 따왔고, 지영민도 친구 이름이다. 지영민은 자신을 살인마로 만들었다고 항의성 글을 인터넷에 벌써 올렸더라. 이 형사 이름은 군대 고참 이름에서 가져왔다. 사수였는데 투포환을 한 분인데다 어찌나 많이 맞아서. 제대하고 한번 연락한 적 있는데 나도 모르게 ‘화랑’이라고 경례를 하는 바람에 자존심 상해서 그 뒤로는 안 봤다. 어디엔가 내 후임병이 나한테 죽도록 맞았다면서 그 인간이 감독 될 줄 어디 알았겠느냐는 글도 있다던데. (웃음)”

tip 2. 지영민은 원래 노팬티였다

“처음 화장실에서 영민의 모습은 나체였다. 나였으면 발가벗고 있었겠다 싶었다. 그런데 하정우가 그런 제안을 하면 거절할 배우인가. 심사숙고한 다음에 예, 라고 할 배우다. 게다가 나중에 기어코 하겠다고 고집까지 피우면 뒷감당을 어떻게 하나 싶었다. 촬영도 문제였다. 바닥에서 쭈그려서 대사를 해야 하는데 그 부분을 피해서 찍기란 불가능하니까. 그래서 속옷을 입히자. 군대에서 지급하는 흰색 목련 팬티가 떠올랐다. 허벅지를 통과시켜 입는 순간 탄성을 잃어버리는, 게다가 오래 입은 듯한 흔적이 느껴지는. 근데 차마 노란 흔적을 남기는 거는 좀 그렇더라. 이것도 말했으면 하정우는 그런 걸로 입자고 했을 텐데. 지금 생각하면 간지를 좀 내줬어야 하나 싶기도 하다.”

tip 3. 김윤석과 한판 붙었다?

“윤석 선배랑은 촬영 시작한 지 한 일주일 만에 의견 충돌이 있었다. 그렇다고 엄청 싸운 건 아니다. 그냥 다른 날보다 수위가 좀 높았을 뿐이지. 디테일한 의견 차이었는데, 뭐 다음날 전화해서는 나보고 당신 말이 맞는 것 같다.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해라. 나도 내 식대로 쭉 할 거니까 라고 하셨다. 팬티 입고 담배 피우면서 받은 전화였는데 엄청난 응원이 됐다. 사실 중호든, 영민이든 배우가 결정되고 나니까 좀 서운했다. 이제 내 새끼가 아니구나 하는. 특히 영민의 경우는 정우씨에게 전혀 디렉션을 안 줬다. 애초 그런 캐릭터였으니까. 하정우는 게다가 굉장히 민감한 배우라서 직접적으로 전하는 게 아니라 상대 배우들에게 요구를 해서 반응토록 했다.”

tip 4. 나이트클럽과 사우나

“어릴 적 영화감독은 꿈도 못 꿨다. 꿈과 희망이 없는 아이였다. 웨이터 하면서 돈 100만원 벌면서도 멋지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고2 때 미술학원에 다녔던 것도 처음엔 공부를 워낙 안 하니까 부모님이 시킨 거였다. 다행히 만화, 특히 언제나 대본소에 가면 신작이 나와 있는 고행석의 만화를 즐겨봤고, 남고의 잔인한 선생님들을 골리는 삽화를 그리면서 수업을 때웠다. 좀 골 때리는 건 다들 당구치러 가는데 난 사우나가 그렇게 좋았다. 사우나에서 땡땡이치다가 수업 제친 선생님을 만나서 침묵을 나눈 적도 여러 번이고. 친한 친구들하고 500원 내고, 1천원 내고 해서 나이트 기본요금 모으면 버스 타고 춤추러 가는 것도 좋아했고. 그때는 정말이지 1주일에 서너번은 나이트에 갔던 것 같다. 그때 트레이닝은 정말 열심히 했는데 춤은 별로 못 춘다.”

tip 5. 쟤, 미친 거 아냐?

“만화를 곧잘 그렸는데, 컷과 컷 사이의 생략된 많은 프레임들을 못 보여주는 것이 너무 억울했다. 그게 만화의 매력이었지만 난 좀더 온전한 재현을 하고 싶었다. 영상을 해야겠구나. 그래서 아는 선배 중에 CF 조감독이 있어서 그 밑으로 갔다. 첫 광고가 갤러리아백화점 광고였다. 생애처음 세트장 구경을 했으니. 7시부터 촬영이면 5시쯤 세트장에 먼저 갔다. 거대한 크로마 위에서 혼자 기분에 취했는데, 나중에 스탭들이 어떤 미친 새끼가 크로마 위에 발자국을 남겼다고 잡아오라고 해서 진땀 뺐다. 그날 사고친 게 또 있는데. 35mm 무빙카메라가 등장하기에 아무 생각없이 딱 잡고 뷰 파인더 안을 들여다봤다. 막내가 하는 짓을 보고서는 너무 어이가 없었는지 욕도 안 하더라.”

tip 6. 나만의 교과서

“광고 스탭으로 일하다 영화가 하고 싶어서 나오긴 했는데 아는 사람이 있나. 그래서 시나리오 쓰면 무조건 되는 줄 알고 작업실부터 얻었다. 2년 동안 거기서 시나리오 쓰면서 만든 단편이 하나 있는데 그게 <5분>이다. 제작비가 무려 4천만원이나 들어갔다. 게다가 단편이 아니라 찍고 나니까 40분짜리 중편이 됐다. 빚도 많이 졌지. 뭘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몰랐으니까. 낯뜨거운 영화지만 그래도 소중하다. <완벽한 도미요리> <한>을 찍을 때도, <추격자>를 찍기 전에도 항상 돌려본다. <5분> 보면 정말 도망가고 싶은데, 꾹 참고 오버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챙긴다. 똑같은 실수를 해서는 안 되니까. 내게는 교과서와 같은 작품이라 다음 작품을 해도 또 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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