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GP의 미로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한 가이드
2008-04-01
글 : 오정연

GP. Guard Post. 비무장지대 안에 위치한 최전방 경계초소. 함부로 들고 날 수 없는, 방문자에게 인색하고 이탈자에게 가혹한 이곳에서 한명의 대원만을 남기고 전 소대가 몰살됐다. 수색대가 투입되고, 하룻밤의 시간이 주어진다. 한정된 공간과 제한된 시간. <GP506>이 벌이는 게임은 일견 익숙하다. 그러나 보이는 것만큼 쉬운 게임이 아니었다. “보이는 것이 모두 진실은 아니다”라는 포스터 문구는 영화 안팎으로 적절하다. 사상 최대 규모의 세트와 사상 최고 수준으로 소름 끼치는 특수분장을 위해 드림팀이 뭉쳤다. 1년 반 전 시작된 여정은 때로 GP의 미로 속에서 길을 잃기도 했지만 결국은 쉽게 접할 수 없는 규모와 디테일로 마무리됐다. 일등공신은 단연 미술팀과 특수분장팀. 그들이 이처럼 어려운 게임에 혼신을 다한 이유와 이를 위한 전략을 물었다. 단번에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공통점을 지닌 세 주인공을 연기한 배우들을 만났고, 같은 방식으로 질문을 던졌다. <GP506>의 개봉은 오는 4월3일. 그날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절단된 사지와 피칠갑과 변형된 사체가 우리를 맞이하는 ‘GP’의 눅눅한 미로를 꼼꼼히 즐기기 위한 요연한 지도가 되길 바란다.

“최근 4일 연속 군대 꿈을 꾸고 있다.” 기술시사를 마친 다음날 공수창 감독의 말이다. 당연히도, 여기서 ‘군대 꿈’이란 지독한 악몽을 뜻한다. 강제로 시작된 폭력적인 복종의 일상, 이를 견디기 위해 포기와 망각을 택하는 스스로의 모습이 놀랍고 그 와중에 주변의 동료들을 향한 애정이 자란다는 사실이 더욱 놀라운 시간들…. 깰 수도 없는 지독한 꿈이 공포영화며 미스터리 스릴러물의 배경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알포인트>에 이어 또다시 그러한 악몽 속으로 걸어들어간 공수창 감독에게 군대는 ‘장르적인 공간’ 그 이상이다. 공간이 배경이고 캐릭터이며 주제로 직결된다. 감독 이하 미술감독 등의 스탭들, 천호진을 위시한 배우들 모두가 한결같이 <GP506>의 장르를 한정짓기 주저하거나, 공포를 위한 공포가 아님을 누누이 강조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리얼함과 영화적 허용, 양식(樣式)과 생경함 사이를 수시로 오가야 했다는 얘기다.

<알포인트> 때부터 함께한 스탭들과 다시 뭉치다

사실 <GP506>의 시놉시스와 감독의 이름을 알게 되면 이를 ‘<알포인트2>’라고 부르고 싶은 욕망을 느끼는 게 당연하다. 베트남의 정글이 비무장지대 경계초소 속 미로로 장소를 옮기고, 10명이었던 소대원이 몰살된 GP대원의 과거 21명과 현재 투입된 수색대원 21명으로 세포분열하고, 잔인하게 살해된 시체는 넘쳐나는데 범인을 알 수 없는 불가해한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악몽보다 끔찍한 현실 안에서 소재를 찾는 것이 달라졌을 뿐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혹은 그로 인해 두 영화는 전혀 다르다. 베트남이 아닌 캄보디아의 정글로 떠났던 이들은 충무로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규모의 세트 안에서 모든 촬영을 진행했고,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한 시체들이 그 세트의 곳곳을 채워나갔고, 좀더 다양한 연령과 경험의 배우들은 한결 복잡하고 현실적인 감정을 소화했다.

눈에 보이는 공통점보다 미묘한 차이와 업그레이드가 중요한 프로젝트. 공수창 감독이 대부분의 감독급 스탭을 <알포인트> 때부터 함께했던 이들로 구성한 것은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게다가 <알포인트>의 준비과정을 함께했던 장춘섭 미술감독과 <알포인트>의 전 과정에 참여했던 황윤섭 세트드레서, 이창만 특수분장팀장 등은 프로젝트를 함께하지 않아도 언제든 서로에게 조언을 구하고 어울리는 가까운 사이. 감독보다 앞서 일을 벌이는 이들이 한데 모였으니 경쟁하듯 일을 손에서 놓지 않았을 모습이 눈에 선하다. 공수창 감독은 물론 피칠갑에 특수분장, 내내 쏟아지는 비 때문에 고생했던 배우들 모두가 스탭들의 노고를 잊지 않고 언급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지난해 2월 시작된 촬영이 내부 사정으로 6월부터 4달간 중단됐다가 기적처럼 재개되기까지 프로젝트에 대한 애착 하나로 묵묵히 기다렸던 이들이 아니었다면, <GP506>은 완성조차 불가능했을 것이다. <GP506>의 폐쇄된 공간을 꽉 채운 것은 감당할 수 없는 비극이 품은 묵직한 이야기가 전부가 아니다. 때로 새로운 시도로, 때로 극진한 정성으로, 때로 환상의 호흡으로 매 프레임을 빼곡히 메워나간 제작진의 손길 또한 그냥 지나치긴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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