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은 했었다. 연륜이 깊어져도 현장에서 스스로를 향한 엄격함은 늦추지 않는 배우라면, 다정다감한 인터뷰이가 될 확률은 현저하게 낮아진다. 굳은 표정 깊은 곳에 상대를 향한 정을 감춘 캐릭터로 더없이 잘 어울리는 얼굴, 천호진 말이다. <GP506>에서는 연륜과 이성과 인성과 결단력을 갖춘, 너무 완벽해서 성공하지 못한 군인 노수사관이 그의 역할이다. 아내의 영안실까지 찾아온 동료를 거절하지 못해, 어린 아들을 남겨두고 GP506의 미로를 향해 제 발로 걸어들어간다. 바로 전날 오후 홍콩영화제에서 귀국한 직후, 새벽 3시에 진행된 기술시사까지 챙겨봤다는 그는 오전에 예정된 사진 촬영 시간을 칼같이 지켰다. 표정은 밝지 않았다. 2000년 이후, 한국영화 속 ‘어른’으로 스크린 한쪽을 든든히 지켰던 그가 스포트라이트의 전면에 나서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었다. 완성된 영화에 대한 우려가 기대를 넘어섰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난해 이맘때 개봉했던 <좋지 아니한가>의 안타까운 흥행 결과도 떠올랐다. 언제나 반듯한 이미지와 달리 무능력하고 무시당하는 위기 속 중년 남자로 등장한 그는 어느 때보다 묵직한 존재감을 과시한 바 있다. 제작진의 의도를 정직하게 관객에게 전달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틀 동안 열두 개 매체와 인터뷰를 할 정도로 애착이 컸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좋지 아니한가>가 ‘은근슬쩍 개그영화를 코미디영화로 포장해서 관객을 속여가며 장사하는 영화’가 아님을 강조하는 그는 <GP506> 역시 공포영화가 아니라 반전(反戰)영화라서 출연을 결심했다. 지나치게 장르의 특성을 강조한 완성본이 내심 불안한 것은 그가 중요시했던 면모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고 싶다. 관객이 아니라고 하면 할 말 없지만, 적어도 난 호러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촬영에 임했다.” 본인의 입으로 “그렇게 자상한 선배는 못 된다. 후배들이 잔머리 굴리거나 몸 사리는 건 싫다. 말로 쏘아붙이는 일도 있다”고 말하는 모습도 거침없다. 다소 극단적인 방식으로 동료를 아끼는데, 그 선택에 의문을 제시할 수는 있어도 그 진심을 부인하긴 힘들던 영화 속 노수사관의 모습이 그대로 겹친다.
감독의 말: “영화를 찍는 내내, 연륜이란 이런 거구나, 싶었다. ‘대배우’라는 표현이 오버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정말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현장에서 배우들은 늘 민감한 존재임에도, 늘 거리낌 없으시고, 당연히 해야 한다는 자세가 느껴졌다. 체감온도 영하 20도의 야외에서 비까지 동원해서 찍을 땐 전선에 달린 고드름을 보면서 이걸 찍어야 하나,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