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참혹한 시체들은 어떻게 만들었나?
2008-04-01
글 : 오정연
프로스테틱부터 애니매트로닉스까지 특수분장으로 보는

인정하자. <GP506>은 끔찍한 영화다. 억압을 체질화한 공간인 군대에서 벌어지는 악몽 같은 하룻밤 동안, 저마다 같고 또 다른 인간의 본성이 서로의 발목을 잡는 과정, 고개를 돌리고 싶을 정도다. 그러나 이러한 무참함을 극대화하는 것은 화면을 가득 메운, 다양한 방식으로 훼손된 주검, 주검, 주검들. 시나리오만 봐도 안다. <알포인트>는 물론 <두사람이다> <어느날 갑자기> <므이> <가발> 등 공포영화를 통해 잔뼈가 굵은 이창만 특수분장팀장, 일복 터지는 소리가 절로 들린다. “하여간 가능한 거의 모든 방식으로 죽은 시체들”이 등장하기에 본인은 행복했던 눈치다. 엿보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더라는 말씀. 단, 노약자나 임산부는 이 페이지를 건너뛰시길 권한다.

총 맞기 직전의 피부, 애니매트로닉스…_새로운 시도들

이창만 팀장으로 말하자면, DVD를 보다가 상처와 관계된 장면에서는 저절로 시선이 머문다. 신체가 생생하게 훼손될수록 그의 동공은 커진다. <위 워 솔저스>를 보던 중, 옷이 아닌 맨살이 총에 맞아 피부가 터지는 대목을 발견한 그는 그 몇초를 몇번씩 돌려보고, 한 프레임씩 넘겨봤다. 그리고 알게 됐다. 총을 맞기 직전 피부가 서서히 부풀더라는 것을. 관을 설치하고 그 위를 인조피부가 덮고 있으면, 압력이 서서히 증가하다가 터지는 식이다. 옷 속에 피탄을 장치해서 총상을 표현하는 방식이야 워낙 익숙한데, 피부에 총을 맞는 것은 총상과 관련한 최고 난이도에 해당한다. 부상의 위험없이 압력을 조절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예전에 다른 영화에서 그와 비슷한 걸 시도했다가 “터져나가야 할” 피가 “조로록 뿜어져 나오는” 바람에 좌절한 경험에 마음이 쓰이던 차에, 언젠가 꼭 해보고 싶었던 효과를 써먹을 기회를 만난 것이다. “내무반에서 총에 맞는 군인 중 한명이 목 한가운데에 그렇게 총상을 입는다. 어쩌면 편집에서 잘렸을 수도 있고, 안 그렇더라도 잘 보셔야 할 텐데. (웃음)”

마네킹 같은 인체모형을 의미하는 더미가 한국영화에 일상적으로 등장한 이후 꽤 시간이 흘렀다. <GP506> 속 더미는 여기서 더 나아갔다. 애니매트로닉스. 움직이는 더미를 말한다. 잘린 채 움직이는 팔뚝이라든가, 허리가 잘린 채 움찔거리는 시체 등 덕분에 아주 유용한 표현이 가능했다. 이창만 팀장은 <구타유발자들> 시절, 움직이는 매의 시체를 표현하려고 애니매트로닉스를 사용한 바 있지만, 인체를 만들어본 것은 처음이라고. “시나리오를 볼 때부터 더미가 움직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머리가 터져 죽는데 뭔가 꿈틀거리다가 터진다면 실감나지 않겠나.” 듣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말이지만 사뭇 진지하다. “아무리 CG라도 실사 소스가 없으면 안 된다. 게다가 후반작업에 많은 시간을 주지 않으면 질도 떨어진다. 가능하면 실사를 많이 써야 하는 게 그 때문이었고, 이번 영화에서는 그것이 원칙이었다.” 아날로그의 투박함을 선호하는 감독 밑에서 새로운 시도를 마음껏 해볼 수 있었음을 생각하니, “촬영이 재개된 이후 애니매트로닉스를 다시 가동시켰더니 살이 떨어지고 난리더라. 나도 개인적으로 목숨 건 게 있어서 내 돈을 투자해서 다시 만들었다”는 그의 고백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심각하게 훼손된 얼굴은 어떻게 표현했나_프로스테틱

총 맞아 죽고, 대검에 찔려 죽고, 차에 깔려 죽고, 망치에 맞아 죽고, 얼굴이 뭉개져서 죽고, <GP506> 속 시체들의 운명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기구하다. 더욱 기구한 것은 시나리오 속 중요한 설정상, 직접적인 상해 이후 시체 혹은 신체가 심각한 훼손의 단계를 밟는다는 점. 그래서 등장한 게 프로스테틱 분장이다. 노인 분장 혹은 <미녀는 괴로워>처럼 살이 찐 모습 등 다양한 얼굴의 변형을 위해 얼굴 위에 덧붙이는 분장을 총칭하는 용어인데, 이창만 팀장의 경우 <범죄의 재구성> 때 이를 이용하여 박신양의 1인2역에 완벽한 리얼리티를 부여한 바 있다. <GP506>에서 이와 관련하여 가장 큰 도전은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장르 안에서 신체의 훼손을 현실적으로 납득할 수 있도록 표현하는 것.

네다섯 단계로 나누어 훼손의 정도를 표현하고 장면마다 이를 정확히 반복해야 하는데, 네다섯명씩은 예사로 등장하는 가운데 모든 배우들의 특수분장이 필요한 경우, 해뜨기 전에 현장에 나와 별을 보며 숙소에 돌아가는 것이 특수분장팀의 운명이었다. 배우당 기본 한 시간, 최고 네 시간까지 소요되는 분장인데, ‘당하는’ 배우는 물론, 일상적으로 끔찍한 모습을 마주해야 하는 스탭들 역시 고역이다. 심지어 조명기를 정리하던 조명감독조차 새삼스럽게 분장을 마친 배우를 발견하고 간담이 서늘해졌다는 이야기. 그러나 무엇보다 서운한 건 “공포영화를 즐기지도 않고, 잔인한 장면을 잘 못 본다”는 감독의 반응이다. 시체 더미가 쌓인 곳은 근처에도 안 가고, 조금만 분장이 심해지면 징그럽다며 손사래를 쳤다. 이창만 팀장이 억울하다는 듯 덧붙인다. “아니, 시나리오를 그렇게 잔인하게 써놓고 막상 만들어가면 징그럽다고 그러면 안 되는 것 아닌가. ‘잔인하게 살해된 시체들’ 같은 말이 시나리오에 진짜 있다니까.(웃음)”

감독의 말: “사실 영화 속 인물들의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설정인데, 생각 같아서는 그게 겉으로 드러나지 않길 바랐지만 영화적인 표현이 필요하다는 건 당연한 결론이었다. 특수분장팀은 워낙 그쪽으로 욕심이 많다보니 견해차가 늘 존재했다. ‘이 영화는 이런 걸 보여주기 위한 게 아니다’라는 생각을 공유한 것은 분명했지만 막상 특수분장팀은 그런 쪽으로 욕심이 많으니까. 나는 그저 수위를 좀 낮추자는 얘기였지.”

특수분장의 첨단 기술을 동원하다_응용 버전

위에서 언급한 각종 기술이 한데 집약된 경우도 있다. 허리가 잘렸음에도 땅을 기어 움직이는 시체가 그런 경우. 글로 옮기는 것도 망설여지는 이 대목을 처음에는 CG로 표현할까 생각했지만, 가짜처럼 보이는 것을 못 견디는 스탭들이 머리를 맞대고 방법을 고민했다. 배우의 등에 부분 더미처럼 하나의 등을 얹고, 시체가 기어가야 할 거리만큼 땅을 파낸 뒤에 그 배우가 땅속에서 움직여 가짜 상체를 움직이게 한 것이다. 그 얼굴 역시 꽤나 훼손이 진전된 상태에 이후 애니매트로닉스까지 사용됐으니, 특수분장의 거의 모든 첨단이 동원된 셈이다. 이창만 팀장은 무엇보다 팀간의 협력이 긴밀했음을 강조한다. ‘허리 잘린 채 움직이는 시체’와 관련해서 일단 실천방안이 준비되자, 미술팀은 땅을 파서 세팅을 해주고, 촬영팀은 속임수가 드러나지 않을 정도의 앵글을 잡아주고, 조명팀도 이를 감출 만한 방법을 고민해줬다.

시체를 주로 만들다보니 해부학 공부야 일찌감치 마쳤고, 허리까지 잘린 마당에 온갖 창자며 내장을 정성스레 만드는 것도 당연한 순서. “진짜 동물의 내장은 금세 썩어서 사용하기 힘들다. 실리콘 같은 걸로 만들면 된다. 특별히 더 징그럽게 만들었는데, 너무 심해서 못 쓴 게 더 많다. (웃음)” 15세 관람가를 받아야 한다는 부담도 상존했다. “도끼에 찍혀 죽고, 총 맞아 죽은 시체를 만들면, 계속해서 15세 이상가 등급이 나와야 한다는 말을 들으니, 어떨 땐 기운이 빠진 것이 사실이다. 결국 청소년 관람불가가 나와버렸던데.” 가장 징그럽게 기억에 남는 시체를 하나만 들어달라는 말에 이창만 팀장이 고개를 내젓는다. “하나를 딱히 꼽기가….”

감독의 말: “으. 그 허리 잘린 시체는, 특수분장팀은 자꾸만 장기를 덧붙이려고 하고, 난 자꾸만 빼라고 하고. 지금도 기억난다. 하지만 그런 걸 보여주려고 만든 영화가 아니니까 어쩔 수 없었다. 그와 비슷한 게 얼굴에 총을 맞은 시체. 그나마 그것도 좀 덜 징그럽게 만든 게 그 정도다. 물론 나도 그렇게 진짜 같은 분장을 보면 흡족하다. 하지만 그걸 얼마나 어느 선까지 보여줄 것인가를 언제나 고민해야 했다.”

관련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