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P506>에 없는 것은 여자 캐릭터요, 드문 것은 웃음이다. 이영훈이 연기한 강 상병의 해사한 웃음이 없었다면, 이 영화 꽤나 퍽퍽했을 거다. 그러나 바로 그 웃음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서 강 상병이 좌절하고, 눈물 흘리는 모습은 더욱 보기 힘들다. 공수창 감독은 이영훈에게 “<알포인트>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울먹거리던 장영수 병장의 캐릭터에 희로애락을 심어주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면서 강 상병에게 기대하는 바를 설명했다고 한다. 시커먼 남자들만 가득했던 현장에서도, 영화를 만들기 위해 지난한 터널을 통과한 긴장이 여전한 인터뷰 자리에서도, 싱글거리며 먼저 말을 걸어와 어려운 분위기를 바꿔버리는 이영훈은, 그 자체로 거의 강 상병이다. “의리있고, 남들 챙기기 좋아하고, 그러다보니 사소한 사고도 치지만, 그래도 미움받지 않는 캐릭터다. 실제로 현장에서도 조현재씨나 다른 분들께 먼저 다가가곤 했다.”
물론 복병은 있었다. 그는 인터뷰마다 GP506에서 노수사관이 발견한 캠코더 속 강 상병의 살벌한 혼잣말을 녹화하는 순간을 꼽는다. “내 손으로 끝장을 낼 것이다.” 그에 따르면 “촬영이 어느 정도 진행된 상황에서 한창 주가가 올라갈 때”였고, “내심 자신있었던 장면”이었다. 세 번째 테이크쯤에서 OK가 날 거라고 낙관했는데, 웬걸. 열번도 넘게 테이크가 반복되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가족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을 죽여야 하는 슬픔이 클 거라고 생각했는데, 감독님은 더 건조하게 가라고 하셨다.” 돌이켜보니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다. 그의 첫 번째 장편영화였고, ‘아는 사람은 다 알 만한’ 스타덤을 안겨줬던 <후회하지 않아>의 촬영현장. 재민에게 따지는 수민의 모습을 두고 똑같은 견해 차이가 감독과 그 사이에 있었다. 첫 번째 상업영화에서 주요 배역을 맡은 미숙함이 여전하다는 증거일까. 다정도 병이라는데, 여전히 뜨거운 다정함이 미처 제 모습을 찾지 못함 때문이라는 것이 좀더 정확하겠다. 20대 중반을 지나는 그의 나이가 아직도 실감나지 않는 것은 보는 사람도 마찬가지니까. 공수창 감독에게 이제 와서 궁금한 점 한 가지를 물었더니 대뜸, “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그리고 이어지는 어리고 젊은 웃음. 그걸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이 얼마나 클 것인지에 대한, 공수창 감독의 예상은 적중했다.
감독의 말: “좀더 깊은 속에서 나오는 감정을 바랐던 건데, 그게 상처가 됐다면, 음. 늘 ‘말투가 아기같다’고 지적하곤 했다. 군대에서 이등병은 등신이고, 일병은 일만 죽어라 하고, 상병은 욕하고 때리는 상놈이고, 병장은 할 줄 알아도 안 하는 병신이라고 한다. 근데 영훈이 말투는 너무 다정다감해서 꼭 일병 같았다. 그 캠코더 장면은 나름 열심히 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상당한 열정을 가진 친구라서, 그렇게 혼나면 문을 확 닫아버릴 수도 있을 텐데, 다음날이면 웃으면서 인사하는 모습이 참 예뻐 보였는데.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