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가족영화시장 생존전략] 1500만 잠재시장을 깨워라
2008-04-17
글 : 박혜명

“이 영화가 우리 눈에 띄면 이 영화 마케팅은 망한 거다.” <꿀벌 대소동> 개봉 당시 CJ엔터테인먼트 해외마케팅팀 내에 농담처럼 돌아다녔던 말이다. 올 초 1월3일 개봉작인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꿀벌 대소동>은 국내 개봉작으로는 드물게 가족 타깃에 마케팅을 올인한 사례. 우선 개봉시기를 조정해 가족 타깃이 극장가에 붐비는 겨울방학으로 옮겼고(미국 개봉일은 11월2일), 꿀벌이 인간들과 소송을 벌이는 줄거리에서 키를 잡아 ‘먹었으면 꿀값 내놔’라는 쉬운 포스터 카피를 내걸었다. 김종원 CJ엔터테인먼트 해외마케팅팀장은 “20대를 메인 타깃으로 생각했으면 카피의 말맛 등을 좀더 고려했겠지만 아이들이 좋아하고 부모가 호기심을 가져서 애들에게 보여줄 맘이 들 정도면 된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한다. “크리에이티브도 전체적으로 귀엽게 갔고, 20대에게 어필하는 볼거리 풍부한 애니메이션이라는 측면보다 철저히 주인공 꿀벌의 귀여운 캐릭터를 부모와 아이들에게 어필하고자 했다.” 매체 광고는 어린이 타깃과 부모 타깃으로 분할 집행해 부모 타깃으로는 케이블 드라마 채널, 주요 일간지, 온라인 사이트 이지데이(www.ezday.co.kr) 등을 공략하고 어린이 타깃으로는 케이블 채널 투니버스, 각종 어린이 만화잡지, 온라인 포털 야후 꾸러기와 쥬니버 등에 광고물량을 집중시켰다. 여기에 각종 프로모션 및 이벤트도 ‘엄마와 함께하는 스키장’, ‘레고 체험전’ 같은 행사장에서 코스튬 이벤트를 벌이는 등 어린이와 부모가 함께할 수 있는 가족용으로 꾸려졌다. 그러니 CJ 해외마케팅팀 직원들끼리 “<꿀벌 대소동>이 (20대인) 우리 눈에 띄면 이 영화 마케팅은 망한 것”이라는 농담이 나왔을 법도 하다.

부모, 어린이 동시 공략한 <꿀벌 대소동> 관객몰이 성공

<꿀벌 대소동>

전국관객 130만여명을 동원한 <꿀벌 대소동>의 가족 집중 마케팅은 국내 영화시장에서 특이한 사례다. 국내에서 개봉하는 영화 대부분은 한국영화냐 외화냐 혹은 장르가 무엇이냐와 무관하게 마케팅 메인 타깃을 무조건 20대로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개봉 첫주엔 아무래도 발빠른 20대가 움직여줘야 흥행성적이 나오기 때문이다. 픽사 애니메이션 <라따뚜이>를 마케팅한 소니픽쳐스릴리징브에나비스타영화(주) 석송자 과장은 “미국에서 가족영화로 포장된 <라따뚜이>도 국내에선 메인 타깃을 20대로 잡고 서브로 패밀리 타깃을 잡았다”면서 “소문 듣고 부모와 아이들이 움직이는 데엔 아무래도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고 말한다. 김종원 팀장의 부연설명은 이렇다. “어떤 영화가 정말 가족용, 어린이용이다 싶으면 내부적으로는 50만명도 어렵겠다고 판단할 때가 있다. 그래서 기존 애니메이션 경우에 결국 나중엔 가족들이 많이 봐줄 것임에도 불구하고 흥행 사이즈를 확대하기 위해 20대 타깃을 공략하는 일이 있다.” 지난해 11월 말 개봉한 <어거스트 러쉬>는 국내 관객의 이런 성향을 전략적으로 이용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어거스트 러쉬>는 개봉 전에는 ‘20대가 볼 만한 음악영화’로 어필하다가 개봉 직후부터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감동영화’로 마케팅 메인 타깃을 옮겨 상영 종료시까지 캠페인을 유지했다. <어거스트 러쉬>는 전국 230만여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영화의 내용적 성격에 맞춰 타깃 관객을 정확히 겨냥한 <꿀벌 대소동> <어거스트 러쉬>의 마케팅과 흥행 사례는 국내에서도 가족영화시장이 충분히 가능성이 있음을 방증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일반 관객에겐 ‘가족영화’라는 꼬리표가 매력적으로 어필하는 부분이 적다는 게 관계자들의 의견이다. <안녕, 형아>(2005), <아이스케키>(2006) 등을 제작한 심재명 MK픽처스 대표는 “캐스팅이 약해서?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가족영화라고 포지셔닝되면 성인 관객은 우선 외면하는 것 같다. 뻔하다, 영화적 엔터테인먼트 요소가 적다, 라고 인식되지 않나 싶다”는 견해를 내놓기도 했다. 때문에 가족영화는 투자받기 어렵다는 약점도 자연스럽게 따르게 된다. <안녕, 형아>가 인터넷을 통해 네티즌 개인투자자들을 동원, 자본을 확보했던 것도 그러한 배경이다.

그러나 가족영화에 대한 이런 부정적 선입견은 과연 처음부터 존재했을까. 국내에서 최근 2~3년간 가족영화로서 제작·개봉된 영화들을 보면 위에 언급된 두편을 비롯해 <마음이…> <저 하늘에도 슬픔이> <마지막 선물> 등이 모두 연약하지만 순수한 주인공 어린이를 힘겨운 상황에 놓고 슬픔을 자아내는 무거운 신파조 이야기를 갖고 있다. 이런 가족영화 이야기 구조는 1990년대 말~2000년대에 봇물 터지듯 나왔던 신파멜로의 여주인공을 아이로 바꾼 것과도 별 차이가 없다. 관객이 ‘가족영화=따분한 스토리’라는 등식을 갖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말아톤> <맨발의 기봉이> 등 가족영화로서 크게 성공했던 경우를 보면 가족영화라고 포지셔닝되기 이전에 다른 셀링 포인트가 있다. 조승우가 장애인 역을 했다든지 <인간극장> 소재로 이미 유명한 이야기라는 점이 있다”는 심재명 대표의 말을 역으로 돌려놓으면 결국 국내 가족영화들의 흥행 실패는 각자 차별성없이 ‘내 가족(아이)의 눈물’이라는 한 가지 요소만 갖고 관객에게 어필하려 했다는 뜻이 된다.

타깃 마케팅과 다양한 이야기 개발이 승부수

<날아라 허동구>를 제작한 조철현 타이거픽쳐스 대표는 “어른들의 기대와 아이들의 기대에 모두 부응하는 이야기를 만든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라고 토로하기도 한다. “가족영화니까 애들도 보고 어른도 본다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다 이도저도 아닌 진짜 틈새에 끼는 영화가 되는 셈이다. (웃음)” 새로운 시도 자체의 어려움도 있다. 조철현 대표는 “기획하는 입장에서는 할리우드 가족영화처럼 어드벤처영화나 판타지영화도 물론 해보고 싶지만 그런 걸 과감히 시도해볼 엄두가 안 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저자본의 드라마를 벗어나서 ‘힘 주는’ 기획들은 거대 세트 및 다양한 촬영 장비, CG 같은 프로덕션 요소를 비롯해 시나리오와 투자 등 모든 면에서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단 뜻이다. “그러다보니 감정적인 울림이 큰 영화쪽으로 해온 현실이 분명히 있다.”

<안녕, 형아>
<어거스트 러쉬>

어쨌든 가족영화시장의 수요 자체를 부정하는 이는 없다. “내부적으로는 가족영화를 5~10살 아동들이 부모의 손을 잡고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다. 그 층을 계산하면 대략 1500만명 정도가 된다”는 CJ 김종원 팀장의 말은 그 시장의 규모부터 무시할 수 없는 수준임을 시사한다. 이 시장을 어떻게 사로잡을 것인가?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알고 보면 ‘가족영화’만큼 광범위한 장르도 없다는 점이다. 그 예가 바로 <식객>의 흥행이다. 지난해 11월 초 개봉해 300만 관객을 동원한 <식객>은 “판매창구에서 가족영화로 팔렸다”는 것이 배급사 CJ의 설명이다. CJ엔터테인먼트 홍보팀의 김윤정씨는 “<어거스트 러쉬> <식객>의 흥행 패턴은 모두 애니메이션의 흥행 패턴과 비슷했다”고 설명한다. “애니메이션 흥행 패턴의 포인트는 4주 이상 상영과 주말관객이다. 부모들이 입소문을 듣고 움직여서 애들을 데리고 오기 때문에 장기 상영을 하게 되고, 온 가족이 시간을 내야 하기 때문에 주말 성적이 주중보다 훨씬 좋다. 이 두편도 가족 단위의 3~4장 예매가 많았고, 개봉 3·4주차가 되어 주중 성적이 떨어져도 주말만 되면 20%대 예매율이 나왔다.” 김윤정씨는 또 <식객>이 “흔히 말하는 가족영화로 기획된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명쾌한 대결구도와 아이들 보기에 유해한 내용이 없다는 점 등에서 가족에게 어필한 것 같다”며 “지난해는 그래서 가족영화=전체 관람가=애니메이션이라는 등식도 깨진 게 아닌가”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명쾌한 스토리, 정서적 편안함 그리고 교훈과 감동. 이것은 비단 부모의 손을 잡고 극장에 가는 아이들만 바라는 바가 아니다. “가족영화라고 해서 위축되어 갈 게 아니라 좀더 공격적인 도전이 필요하다고 본다. 어린이용 영화라더라, 전체 관람가더라, 그런 것 때문에 보는 게 아니라 이야기 자체에 끌려 보는 영화가 되도록.”(조철현 대표) 영화적 내용에 적합한 타깃 마케팅과 다양한 층의 관객에게 소구할 수 있는 이야기의 개발. 1500만 관객 시장의 키를 쥐는 방법은 결국 위축된 현재 한국영화시장을 되살리는 방법과도 다르지 않아 보인다. 가족영화 시장의 진짜 잠재적 가능성도 바로 그것인지 모른다.

<안녕, 형아> <아이스케키> 제작한 MK픽처스 심재명 대표

“가족영화라고 꼭 웃음과 눈물을 넣을 필요는 없는 거 같다”

-<안녕, 형아> <아이스케키> 등 연달아 가족영화를 제작했던 배경이 궁금하다.
=말 그대로 가족영화를 제작하고 싶다는 동기가 제일 컸다. 멀티플렉스가 많이 늘어나서 지역적으로 주거단지 깊숙이 파고들어가는 상영 환경을 봤고 <말아톤> <집으로…>와 같은 영화들의 흥행을 보면서 어른과 아이들이 같이 보는 영화시장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두편을 개봉하고 나서 느낀 점이 있다면.
=<안녕, 형아>는 손익분기점을 맞췄고 <아이스케키>는 <안녕, 형아>보다 제작비를 많이 써서 손해를 본 경우다. <안녕, 형아>는 원래 5월 가족의 달에 맞춰 개봉할 예정이었는데 후반작업 등의 일정 때문에 5월 말 그러니까 실제로는 6월에 개봉한 셈이 됐다. 그게 좀 아쉬웠고, <아이스케키>는 <괴물> 등 큰 영화들이 상영 중인 상태에서 8월 말에 개봉했다. 개학할 즈음이어서 역시 시기가 아쉬웠다. 그래서 느낀 건 개봉 시기가 중요하다는 점과 되도록이면 적은 제작비를 들여 리스크를 줄여야겠다는 점이었다.

-왜 적은 제작비인가.
=가족영화라고 하면 보통 미취학 아동들도 같이 볼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하고 기획한 것이었고, 그런 영화로는 관객 동원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 두편뿐 아니라 가족영화란 이름으로 개봉한 다른 영화들을 보면 사실 소재와 이야기 면에서 한계가 보였다.
=<아이스케키> <안녕, 형아> 모두 눈물이 있는 영화였다. 하나는 아빠를 찾겠다고 나선 아이 이야기(<아이스케키>)이고 다른 하나는 병에 걸린 형을 지켜보는 동생 이야기(<안녕, 형아>)다. 가족 이야기라고 하면 웃음과 눈물을 꼭 같이 넣어줘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던 거다. 요즘엔 그런 점에서 회의가 들긴 하고, 또 가족영화를 기획한다면 들어가야 할 요소에 대해 다시 고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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