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TV영화시장 생존전략] 컨버전스 시대를 준비하라
2008-04-17
글 : 강병진
<이브의 유혹>

“영화는 짧고, 드라마는 길다.” 영화와 드라마의 차이를 드러내는 매우 간략한 정의다. 어떤 이들은 이 정의에 많은 설명을 덧붙이고 싶겠지만, 지금 일반관객은 ‘길이’의 차이로 영화와 드라마를 구분한다. 지난해 OCN에서 방영된 TV영화 <이브의 유혹>을 제작한 화인웍스의 윤창업 PD는 “이제 관객은 영화와 드라마를 구분할 때, 퀄리티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추세”라고 말한다. 영화와 드라마 사이의 경계는 무너지고 있다. 한때는 방송종사자들이 영화로 흘러왔지만, 이제는 영화종사자들이 방송을 찾는다. 봉만대 감독의 <동상이몽>부터 공수창 감독의 <코마>, 정초신 감독의 <색시몽>, 박종원 감독의 <8일>로 이어지는 케이블용 TV영화의 계보가 있는가 하면, 한지승 감독의 <연애시대>에서 오는 5월 방영예정인 박흥식 감독의 <달콤한 나의 도시> 같은 공중파용 드라마도 있다. 영화제작사들의 TV진출 선언도 잦아지고 있다. <아랑> <최강로맨스>를 제작한 더 드림픽쳐스는 <장항준 VS 김정우> 시리즈를 방영할 예정이고 <미녀는 괴로워>를 제작한 KM컬쳐는 간호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못말리는 간호사>(가제)를 16부작 드라마로 기획하고 있으며, 청어람은 싸이더스HQ와 함께 <괴물>의 드라마화를 준비하고 있다. OCN의 전광영 드라마 편성국장은 “원래도 TV영화를 만들려는 영화제작사들은 많이 있었지만, 올해 들어 영화제작사들의 드라마 제작편수가 더 많아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과연 이들은 TV영화에서 어떤 가능성을 본 것일까.

영화제작사들 잇따라 TV진출 선언

“영화제작사는 영화를 제작해야 먹고산다.”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지난 2006년 중반부터 이어진 한국영화의 불황이 이들의 본업을 위협했다. 문을 닫는 영화제작사가 늘어나면서 영화계 인력들도 마지못해 업종 변경을 선택하는 추세. 더 드림픽쳐스의 김영심 이사는 “TV영화든, 공중파 드라마든 제작을 해야 이 보릿고개를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청어람의 유창서 이사도 “영화제작을 꾸준히 하기 위해서라도 안정적인 경영구조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결국 지금 같은 시기에 영화라는 시장에만 갇혀서는 자멸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불안에서 출발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과연 이들이 TV영화 제작으로 벌어들일 수 있는 수익은 얼마나 될까. 일단 드라마는 영화에 비해 흥행에 대한 부담이 적다는 게 강점이다. 제작사로서는 방송사로부터 제작비를 투자받거나, 판권을 판매하면 크게 손해볼 일이 없다. 하지만 그만큼 큰 수익을 얻기는 힘들다. 윤창업 PD는 “공중파 드라마를 제작하는 프로덕션들도 이제는 수익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대부분 한류스타를 기용해 수출하거나, PPL로 수익을 창출하는데 이제는 한류도 꺼졌고 기업들도 PPL을 주저한다. 그런데 케이블 드라마는 어떻겠나. 제작비를 절감해서 수익을 낼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책정된 제작비가 워낙 적기 때문에 그러기도 힘들다.” TV영화가 일반적으로 수익을 얻는 구조는 다음과 같다. 케이블 편성권, 공중파 방영권, IPTV 방영권을 한데 묶어 먼저 케이블 채널에 판매한다. 그리고 그외 위성방송, 온라인 VOD, DVD 판매, 해외수출 수익을 더해 총수익으로 정산한다. 이때 만약 손익분기점을 넘어섰을 경우, 그 수익을 채널과 제작사가 5:5 혹은 6:4의 비율로 나눠 갖는다. 예를 들어 제작비가 10억원인 영화를 놓고 볼 때, 케이블 채널에 약 5억원 정도의 판권을 넘기고, 나머지 창구에서 5억원 이상의 수익이 나야 나눠가질 수익이 생기는 것이다. 화인웍스가 제작한 <이브의 유혹>은 극장 개봉, 케이블 방영, 온라인 VOD, DVD 발매를 거쳐 몇몇 동남아 국가에게 판매했고 현재 일본 수출계약을 앞두고 있는 상황. 일본 수출이 성사될 경우 손익분기점을 넘어설 전망이다. 사실상 저렴한 제작비의 한계를 견뎌야 하고 큰 수익을 기대하기 힘든 TV영화는 불황을 견디는 자구책으로 불안한 구석이 많은 것이다.

<코마>
<동상이몽>

미디어 환경 변화의 대응과 원 소스 멀티 유즈 효과

하지만 이들은 단지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TV를 넘본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지난 2005년 5월부터 <이브의 유혹>을 기획했던 윤창업 PD는 “ ‘컨버전스’로 대표되는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영화계도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미 방송쪽에서는 변화의 조짐을 눈치채고 시스템을 디지털화하면서 영화보다 발빠르게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어느 순간 영화가 가진 기득권을 아예 잃어버릴지도 모른다고 판단했다.” 또한 케이블 채널들이 더이상 ‘무조건 벗기고 보는’ 콘텐츠만을 선호하지 않는 것도 영화제작사들의 진출을 가속시켰다. 한때는 연일 최고 시청률을 경신했던 성인 드라마들의 ‘약발’이 한계에 다다르면서 케이블 채널들도 또 다른 돌파구를 필요로 했고, 덕분에 영화제작사들도 ‘19금’의 부담을 덜게 되면서 TV를 ‘새로운 시장’으로 상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KM컬쳐의 심영 이사는 “개발을 검토하는 시나리오 가운데 드라마로 개발하면 더 경쟁력있을 만한 시나리오가 많았다”며 “그들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다가 드라마 제작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유창서 이사 또한 “제작사 입장에서는 <괴물>처럼 성공한 콘텐츠를 가지고 다양한 방식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즉 영화제작사로서는 드라마 제작을 통해 기존에 가진 시스템을 활용하는 동시에 원 소스 멀티 유즈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가능성도 보는 것이다. 또한 스케줄을 중시하는 방송 시스템을 영화에 융합시키고 신인감독들을 발굴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이미 TV로 진출했거나 진출할 예정인 영화제작사들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TV영화를 개발할 계획을 갖고 있다. 청어람은 <괴물>의 드라마 버전 외에도 2편의 자체제작 드라마를 기획하고 있으며, 더 드림픽쳐스 또한 이미 드라마용 아이템을 개발해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다. 파인웍스 또한 <이브의 유혹>과 견줄 수 있는 또 다른 작품을 개발하는 중이다. 과연 TV영화는 영화제작사들의 블루오션이 될 수 있을까. 현재 상황만을 놓고 보면 이제 영화제작사란 업종명도 바뀔 때가 된 듯 보인다. 윤창업 PD는 “이제는 영화프로덕션이 아니라 영상콘텐츠프로덕션 개념을 발전시켜야 할 때”라고 말했다.

16부작 드라마 기획중인 KM컬쳐 심영 이사

“토털엔터테인먼트를 지향한다, 드라마도 이 사업의 일환이다”

-<못말리는 간호사>(가제)는 어떤 작품인가.
=메디컬드라마를 표방하고 있는데, 응급센터 내의 간호사가 주인공이다.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권한은 없지만, 환자에게는 의사보다 더 친숙한 사람들이다. 다른 메디컬드라마가 묘사하듯, 서류철만 들고다니는 간호사를 그리지는 않을 것이다. 환자에게 병명을 진단하면서 앞으로 얼마나 살겠다고 판정하는 의사가 아니라 빨리 퇴원해서 다시는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간호사들의 인간적인 모습을 담으려고 한다. <못말리는 간호사>는 정말 가제일 뿐이다. (웃음)

-현재 진행상황은.
=총 16부작인데, 시놉시스는 다 나왔고 4부까지는 대본도 다 쓰인 상태다. 이제 남은 건 배우를 캐스팅하고 편성을 받는 것이다. 지금은 공중파 방영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일단 5월에 가편성을 받아서 촬영에 들어간 뒤 이르면 올해 말, 늦으면 내년 초에는 방영될 수 있게 할 것이다.

-드라마 제작에서 어떤 비전을 기대하고 있나.
=KM컬쳐는 토털엔터테인먼트회사를 지향하고 있다. 음반, 뮤지컬도 같이 하는데 사업계획안에 드라마도 있을 뿐이다. 물론 회사가 가지고 있는 영화제작 시스템이 사업의 출발이다. 드라마적 요소가 많은 시나리오를 발견하기도 했지만, 기존에 판권을 구입한 원작들 가운데에서도 드라마로 풀 때 훨씬 더 높은 경쟁력을 가질 만한 작품들이 많았다. 단지 영화로 만들기 어렵다고 해서 폐기처분할 게 아니라 그럼 드라마로 만들어보자고 생각했다.

-드라마 제작을 통해 어느 정도의 수익을 기대하나.
=사실 크게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는 아닌 것 같다. 다만 흔히 드라마를 제작할 때 겪는 일들, 예를 들어 배우 개런티가 많아서 문제가 되는 상황이 있다. 물론 우리도 공중파에서 편성받기 위해서는 톱스타를 써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개런티를 지불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영화를 만들면서 얻은 노하우를 통해 제작비를 절감하면서도 퀄리티를 높일 수 있는 부분들은 충분히 조절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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