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수입 에로영화시장 생존전략] 1:1 윈도로 유혹하라
2008-04-17
글 : 강병진

제목부터 가관이다. <에로틱 고스트: 사이렌> <나쁜여자 길들이기> <못말리는 섹스아카데미> <나는 섹스중독자> <재패니스 愛열전>. 한때는 비디오숍 진열장 한구석에서나 볼 수 있었을 야릇한 제목들이지만 엄연히 공식적으로 수입돼 영화전문지와 온라인 뉴스에서도 리뷰를 쓰는 작품이 됐다. 아오이 소라, 호노카, 고토노 등 직접 연기하거나 포스터에만 등장한 일본 AV배우들의 모습이 반갑기도 하고 가끔씩은 해외영화제 수상작, 혹은 미지의 거장감독이 만든 영화라는 타이틀이 놀랍기도 하다. 그들의 출신이 어디인지, 어떤 성장과정을 거쳤는지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란 쉽지 않다. 다만 한국땅에 모인 그들은 나름대로 공급과 수요의 원칙을 형성해가는 중이다. “정말?”이란 반문은 당연할 것이다. 불법 다운로드로 도킹하는 순간, 외국산 포르노들이 저렴한 패킷 가격으로 유혹하는 이 시대에 그들을 찾는 건 누구란 말인가. 설마 누군가가 이들을 찾아 극장을 순회한다고 쳐도 고작해야 얼마나 되겠는가. 하지만 이 외국산 에로영화들을 수입하는 이들은 모두 예상과는 다른 답변을 내놓고 있다. “이 영화들로 수익이 나지 않을 거라 생각하나? 아니, 수익이 생기긴 생긴다.”

극장 개봉은 홍보 수단으로

<못말리는 섹스 아카데미>

“극장은 마케팅의 수단일 뿐이다.” 이들의 공통된 증언은 매우 뜬금없게 들린다. 한국영화시장의 수익구조를 가장 자주 대변하는 말은 “극장수익 80%, 나머지 부가판권시장에서 20%”란 설명이다. 하지만 이들은 한편의 영화로 거둬들일 수 있는 수익 가운데 80%를 차지하는 극장을 애초에 마케팅 수단으로 삼을 뿐이다. <못말리는 섹스아카데미> <재패니스 愛열전>을 수입한 조이 앤 키노의 최광래 대표는 “극장에서 개봉할 경우, 영화를 이슈화하기가 쉽고 그렇게 되면 이후 부가시장에서도 더 환영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과거 비디오시장이 호황이었던 시절, ‘서울극장 개봉작’ 혹은 ‘대한극장 개봉작’이란 타이틀을 단 영화들이 판권 가격을 높게 받았던 것과 같은 이치. 즉 이들의 흥망사를 논할 때 관객동원 숫자는 무의미하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부가판권시장이 초토화된 한국에서 나머지 20%의 시장에서 본전을 뽑고, 수익을 올린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최근 조이 앤 키노는 <첫남자, 첫 경험: 아담과 이브>란 제목의 미국산 에로틱코미디를 SK텔레콤의 네이트 서비스로 개봉했다. 극장을 거치지 않고 바로 모바일 세계에서 국내개봉을 시작한 것이다. CNS엔터테인먼트, 미디어소프트, 아침에 햇살 등 외국산 에로영화를 수입하는 회사들의 홍보대행을 맡고 있는 유미선 실장은 “사실 이들 가운데 극장개봉으로 시작하는 것보다 모바일이나 케이블로 먼저 가는 게 더 많다”고 말한다. 현재 모바일시장에서 영화 한편을 스트리밍 서비스로 보는 데 결제하는 금액은 일반적으로 1500원 정도다. 이 수익을 놓고 저작권자와 서비스업체가 나눠 갖는다. 때로는 5:5의 비율이지만, 사실상 2:8이 보통이다. 또 중간에 판매대행업체가 있을 경우에는 그들이 서비스업체로부터 정산받은 수익을 저작권자에게 나눠준다. 어떤 경우는 아예 대행업체가 저작권자로부터 영화 판권을 사는 경우도 있다. 모바일시장에서 얻을 수익이 크다면 모두가 배부르겠지만, 수입사들은 현 모바일시장에서는 “크게 먹을 게 없다”고 말한다. 2시간짜리 영화를 스트리밍으로 보는 내내 견딜 수 있는 휴대폰 배터리도 없는데다, 이용자 수도 턱없이 적다. 그런데도 이곳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유는 이들 에로영화들이 유독 환영받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최광래 대표는 “모바일시장은 극장과 매우 다른 선호도에 의해 움직인다”고 설명한다. “비율로 따져보면 블록버스터영화 다음이 성인물이다. 그 다음이 코미디 정도. 감동을 느끼려는 게 아니라 잠깐씩 재미삼아 볼 수 있는 영화들이 이곳에서는 선호된다.” 좁게 생각하면 약간의 수익도 아쉽기 때문이지만, 사실상 그들을 찾는 곳을 가장 우대한다는 것이다.

알짜는 모바일, 온라인, 케이블 등으로

온라인 VOD시장도 선호도 면에서 모바일시장과 같은 개념으로 묶일 수 있는 또 하나의 창구다. VOD시장에서 벌어들이는 수익 역시 모바일시장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방식으로 정산되지만, 이곳에서는 판권을 단매로 사고파는 방식이 주를 이룬다. VOD 서비스사이트 한 군데에서만 상영할 수 있는 판권은 대략 200만원에서 150만원 선. 재판매가 가능하고 다른 사이트에서도 서비스가 가능한 독점판권은 2천만원에서 1500만원 정도다. 물론 VOD시장 또한 많은 수익을 거둬들일 수 있는 동네는 아니다. 한 영화수입사 대표는 “한때는 꽤 괜찮은 수익을 걷을 수 있는 곳이었지만, 이제는 포털사이트들도 VOD섹션을 외주로 맡길 정도”라고 말했다. 역시 불법 다운로드 때문이다. 당연히 이들의 판권 가격도 덤핑경쟁 중이다. “지난해 초 이후로 판권 가격이 반 정도로 떨어졌다. 그나마 사는 곳도 많지 않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에로영화들이 온라인에서 얼마간 수익성이 있다. 영화 VOD사이트인 씨네로 닷컴의 김형제 부장은 “사실상 모든 연령을 타깃으로 볼 수 있지만, 주로 이용하는 고객은 40, 50대 남성들”이라고 말한다. 불법 다운로드를 이용하기에는 패킷을 결제하는 것은 물론이고 원하는 콘텐츠를 찾기가 쉽지 않은 연령층이다. 합법 다운로드 사업을 준비하고 있는 씨네21i의 김준범 이사는 “10대 후반부터 20대는 웹하드나 P2P사이트에서 찾는 게 쉽지만, 40대 넘는 남성들은 접근하기도 힘들고 찾는다 해도 다운받아 저장해놓고 본다는 것을 어려워 한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휴대폰과 PC, 즉 현대인에게 가장 밀접하고 개인적인 윈도에서 수입 에로영화들은 무시못할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오타쿠열전: 아카하바라 트리올리지>

모바일과 온라인 외에도 수입 에로영화들은 케이블 영화채널이나 위성VOD, 그리고 요즘에는 IPTV까지 뻗어나간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대박 수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수입 에로영화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본전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전체 윈도를 쪼개서 수익을 발생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가격이 비싼 영화로는 버틸 수 없다”고 말한 최광래 대표는 “일단 가격을 저렴하게 구입하는 게 최우선”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핑크영화가 이 좁디좁은 시장에서 각광받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몸을 낮춰 이 아슬아슬한 수익구조에서 버티는 이유가 단지 사무실 경상비를 벌기 위한 목적만은 아니다. 한때 작아졌던 휴대폰은 점차 액정화면을 넓혀가는 추세고, IPTV는 이제 극장과 경쟁하고 있다. 대중적인 윈도는 한계에 왔지만, 개인적인 윈도는 점점 크기를 불려간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던 수입 에로영화들이 어쩌면 예상치 못한 광맥이 될 수도 있다. 불법 다운로드가 버거운 당신에게 잠 못 이루는 밤이 그때까지도 이어진다면.

수익다각화, 이런 방법도 있어요

필름 대신 베타 테이프로 수입, ‘모텔서비스 채널’ 판매도

굳이 극장을 거치지 않는다면 필름을 들여올 필요가 없다. 일반적으로 중소 규모의 수입사가 한편의 영화를 수입하면서 필름을 들여올 때, 지불해야 하는 금액은 수입 가격에 비해 상당한 비중이다. 일단 관세와 부가세는 필름의 가격과 비례한다. 예를 들어 6만자 길이의 중고필름을 200달러로 단가를 매겨 신고했을 경우, 관세는 58만4530원이고 부가세가 19만7620원이다. 여기에 통관료 3만3천원과 창고료와 운송료를 합쳐 15만4660원이 붙는다. 그리하여 총액이 96만9810원. 1천만원에서 2천만원가량의 영화를 수입하는데 필름 하나를 들여오는 비용만 대략 100만원 정도가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베타 테이프로 들여올 경우에는 세관을 거치는 경우가 거의 없으며, DHL이나 페덱스로도 받을 수 있다. 물론 이 경우에도 한번에 여러 개의 베타 테이프를 들여올 때는 세관을 거쳐야 한다. 저렴한 가격의 영화를 더 저렴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수입 에로영화를 모바일, 온라인, 케이블, 위성VOD, IPTV 외에 ‘모텔서비스 채널’로 판매할 수도 있다. 집에서 계약한 케이블로는 볼 수 없지만, 모텔에서는 볼 수 있는 채널들이다. 모텔쪽에서는 일반 케이블망을 계약하면서 따로 이 채널들을 계약한다. 이곳에서는 자체적으로 성인 콘텐츠를 제작하기도 하며, 다소 시기가 지난 일본의 포르노영화를 들여와 편집해서 방영하거나 수입된 에로영화들의 판권을 구매하기도 한다. 특히 요즘에는 모텔업체들도 내부에서 VOD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 서비스에 뛰어들기 위해 나서는 업체들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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