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영화읽기] 욕망과 무의식의 무대, GP
2008-04-17
글 : 변성찬 (영화평론가)
군대라는 신체 혹은 숙주에 기생하는 공격본능 보여준

GP506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집단몰살사건이 발생한다. 육군참모총장의 아들이 소대장으로 있던 곳, 그곳에서 벌어진 일의 진상은 은폐되고 조작될 가능성이 높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 허용된 시간은 하룻밤. <GP506>은 제한된 공간과 시간 속에서 사건의 진실을 추적해나가는 미스터리 수사극이다.

GP(Guard Point)는 비무장지대 안에 있는 최전방감시초소다. <GP506>의 GP가 알레고리의 공간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공수창 감독은 전작(<알포인트>)에 이어 다시 한번 군대 이야기를 한다. 그의 군대 이야기는 무용담이 아니라, 무용담의 이면(裏面)에 대한 탐색이다(그가 각본으로 참여했던 <하얀전쟁>도 마찬가지다). 베트남의 밀림, 그리고 최전방 GP의 지하 벙커, 그곳은 모두 어둡고 습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베트남 밀림 속 R-Point가 대리전쟁에 동원된 용병들의 ‘공포와 죄의식’을 무대화하기 위한 공간이었다면, Guard Point 506은 군대조직(또는 한국사회)의 ‘욕망과 무의식’을 무대화하기 위한 공간이다. 전자가 과거의 ‘상흔’(傷痕)에 대한 이야기라면(물론 그 이야기는 베트남 밀림에서 이라크의 사막으로 무대를 바꾼 채 여전히 진행 중이다), 후자는 현재의 ‘환부’(患部)에 대한 이야기다. ‘호러’와 ‘미스터리’는 각각 과거 외상의 반복과 현재적 환부의 탐색을 위한 무대화의 형식이다.

과거의 사건이자 현재진행형의 사건

<GP506>에서 미스터리는 어느 순간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에서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로 전환된다. ‘그 일’은 이미 일어났던 과거의 사건이자 동시에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사건이 되는 것이다(이 점이 유사한 장르적 형식을 취하고 있는 <공동경비구역 JSA>와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그 전환의 순간은, 사건의 원인이 초현실적인 유령의 형상에서 현실적인 생물학적 실체의 (비)형상으로 전환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물론 그 생물학적 실체는 <GP506>이 다른 것을 말하기 위한 알레고리이다. 다시 한번, <알포인트>가 ‘빙의’(憑依)를 통한 과거의 반복이었다면, <GP506>은 현재의 ‘감염’(感染) 경로에 대한 탐색이자 진단이다.

그 생물학적 실체는 죽었지만 죽지 않은 좀비의 형상으로, 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비-형상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숙주에게 무차별적 공격 본능을 불러일으키는 치명적인 것이다. 감염의 논리에 정조준은 없다. 그것은 일단 발사되면 무차별적으로 연발(連發)되는 자동소총의 논리를 따른다. 동시에 그것은 숙주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그 무엇이기도 하다. 그것은 숙주의 존재로 인해 죽었지만 죽지 않은 것으로 생존한다. 지구상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냉전의 유산 또는 50년간 버려진 땅인 비무장지대에서 그것이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그곳에 숙주 즉 군대라는 신체(또는 한국사회라는 냉전적 신체)가 있기 때문이다. GP는 비무장지대에 존재하는 무장지대이다. 그곳에 있는 총구는 적을 향하고 있지만, 그 총구는 오발이 아니라면 발사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총구는, 군대조직(또는 한국사회)의 정치적 무의식의 초자아로서, 반드시 그곳에 있어야만 한다.

가장 문제적인 인물, 노 수사관

미스터리 수사극 <GP506>의 가장 큰 미스터리 또는 가장 문제적인 인물은 바로 노 수사관(천호진)이다. 유일한 생존자인 GP장 유 중위(조현재)는 자신을 심문하는 노 수사관에게 “당신은 군인이지 수사관이 아니”라고 말한다. ‘군인’이 아닌 ‘수사관’으로서 상부조직에 맞서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분투하던 노 수사관은, 정작 그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진정한 군인정신을 발휘한다. 결국 그는 조직의 유지에 앞서 자기 개인의 생존을 욕망하던 유 중위의 거짓 명령을 진짜 명령으로 실행하는, 즉 군대라는 조직의 욕망을 대리 실현해주는 역설적인 인물이 된다. 강 상병(이영훈)과 노 수사관이 발휘하는 이 자기희생적인 군인정신은 분명 문제적이다. 그것은 (이미) 죽었지만 (아직) 죽지 않은 좀비 생존의 최후의 비밀에 대한 진단일까, 아니면 그 비밀에 마주한 주체의 뿌리 깊은 체념과 절망의 표현일까? 아마 둘 다일 것이고, 그래서 문제적이다.

GP라는 공간의 물리적 특징은, 폐쇄성과 미로성(迷路性)이다. 군대가 비밀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비밀이 군대를 만든다. 모든 것이 밝혀졌을 때, 그것은 여전히 비밀이기 위해서 묻혀야만 한다.

관련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