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영화]
할리우드에서 유행처럼 제작된 이라크전 영화 중 한편 <엘라의 계곡>
2008-05-06
글 : 오정연

In the Valley of Elah │ 2007 │ 폴 해기스 │ 120분 │ 미국│ 오후 8시│ CGV 4
엘라의 계곡이란, 작은 소년 다윗이 거인 골리앗을 이긴 곳으로 성경에 등장하는 지명이다. <엘라의 계곡>은 믿음과 용기로 불의에 맞서는 (미국식) 전쟁영웅의 승리담이 아닌, “다윗 이전에 얼마나 많은 소년들이 그 계곡으로 보내져 죽음을 맞이했을까”라는 의문에서 시작한다. 2003년 이라크전에서 돌아온 직후 살해된 병사와 전직 군인 출신인 그 아버지의 실화를 소재로 취했다. 군인정신으로 평생을 살아왔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게도 그 믿음을 강요했으며, 전장으로 향하는 아들을 자랑스럽게 바라봤던 아버지 행크(토미 리 존스)는 아들의 죽음에 대해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으려는 군과 경찰을 대신하여 이를 규명하려 애쓴다. <로스트 라이언즈> <리댁티드> 렌디션> 등 최근 할리우드에서 유행처럼 제작된 이라크전 관련 영화 중 한편이다. 그러나 이라크전 자체에 대한 비판이라기보다는 또다른 (절차상의) 정의와 용기 등 미국적인 상식에 대한 절절한 호소에 가깝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 <아버지의 깃발> 등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호흡을 맞춘 시나리오 작가 출신 감독 폴 해기스의 연출작인데, 직접 쓰고 연출하여 아카데미 작품상까지 거머쥐었지만 미국 밖의 관객에게는 큰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던 <크래쉬>에 비하면 담백한 솔직함이 돋보인다. 영화 속에서 두번에 걸쳐 반복되는 성조기의 게양장면이 그 키워드. 믿어 의심치 않았던 과거 혹은 신념이 드리운 큰 그늘을 거부하는 것이 그처럼 힘들지만 반드시 필요한 일임을 행크의 입을 빌어 말하고 있다.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우직한 미국인의 얼굴을 지닌 배우 토미 리 존스가 아니었다면 전달할 수 없었을 메세지다. 할리우드 안에서 건강한 진보를 대변해온 수잔 서랜던이 행크의 아내로 잠깐씩 등장하는데, 아들을 잃은 평범한 어머니의 절제된 슬픔이 가슴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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