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벽대전>은 서기 208년, 위·촉·오 3국이 대립하던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위의 조조(장풍의)는 막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대륙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유비 진영은 조자룡(후준)이 유비의 하나뿐인 아들을 구해오는 대활약 속에서도 퇴각에 퇴각을 거듭한다. 이에 유비의 책사 제갈량(금성무)은 강남 지역의 최고 실력자 손권(장첸)과의 동맹을 제안한다. 제갈량은 손권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손권 휘하 제일명장 주유(양조위)의 마음을 먼저 얻는 데 주력한다. 한편, 강남을 공격하는 조조의 마음속에는 주유의 아내인 소교(린즈링)를 차지하겠다는 욕망도 있다. 그렇게 조조 군대와 유비, 손권의 연합군대는 적벽에서 대치하게 된다.
조자룡 대신 관우가 마무리하는 장판교 전투
오우삼 감독은 <삼국지: 용의 부활>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같은 원작을 바탕으로 ‘선수를 친’ 작품이기도 하지만 유덕화를 조자룡으로 캐스팅했다는 것은 치명적이었다. 게다가 <영웅본색>(1986)을 함께했던 적룡이 관우로 출연했다는 사실도 절망적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는 장철 감독 영화의 조감독으로 일하던 시절부터 흠모했던 적룡을 두고 ‘관우와 같은 신의를 지닌 사람’이라고까지 말한 적 있다. 그런 그가 이인항 감독의 영화에 실제 관우로 출연한 것이다. 게다가 이인항은 오우삼의 영원한 스승이나 다름없는 장철 감독을 두고 가장 존경하는 감독이라 말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만큼 <삼국지: 용의 부활>은 동일한 원작의 영화화라는 사실 이상으로 오우삼에게 여러모로 부담이 됐을 것이다.
오우삼은 <적벽대전>을 연출하면서 그에 대한 정면 돌파와 우회라는 상반된 전략을 적절히 구사하고 있다. 먼저 오우삼 역시 초반부의 결정적 시퀀스로 장판교 전투를 설정했다. 조자룡이 적진에서 유비의 아들을 구해오면서 조조의 주목을 받게 되는, 그러니까 <삼국지>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인 이 대목을 비껴가지 못했다. 아시아 관객 입장에서 보자면(더구나 한국의 쇼박스를 비롯해 아시아 각국의 투자를 유치해 만들어진 800억원 예산의 범아시아영화임을 감안하자면), 지명도 면에서 후준이 여러모로 유덕화의 카리스마와 비교된다는 것을 알지만 오우삼의 영원한 테마라 할 수 있는 ‘신의’라는 측면에서 빠질 수 없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대신 그 시퀀스를 마무리하는 것은 조자룡이 아니라 관우다. 마치 관우 초상화에서 그대로 뛰쳐나온 듯한 붉은 얼굴의 관우가 마음껏 개인기를 펼친다. 적룡이 중화권에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실제 ‘관우처럼 인정받는’ 풍모의 배우라면, 오우삼은 무명배우를 그냥 캐스팅한 대신 관우와 똑같이 메이크업을 해서 등장시킨다. 누구나 알 만한 대충 적당한 중견배우를 캐스팅해서는 결코 적룡과 승부할 수 없음을 그 역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세 영웅 대신 주유와 조조를 부각시키다
반면 <적벽대전> 역시 유비, 관우, 장비 세 사람의 비중을 축소했다는 점에서는 <삼국지: 용의 부활>과 유사하다. 이전까지 영화화되거나 TV시리즈로 제작된 대부분 <삼국지>의 첫 장면을 떠올려보면 언제나 그 유명한 세 사람의 도원결의 장면이었다. 그런데 <삼국지: 용의 부활>이 조자룡을 내세웠다면 <적벽대전>은 <삼국지: 용의 부활>에서 존재조차 없었던 주유에 방점을 찍고 있다. 심지어 <적벽대전>의 경우 의도적으로 양조위, 금성무, 장첸의 스타성에 비해 전혀 이름없는 배우들을 유비, 관우, 장비로 등장시켜 극명하게 대조시키는 전략을 썼다. 허구가 많은 이번 영화에서 그들은 정말 원작 그대로 유비는 전장의 혼란함 속에 짚신을 만들고, 관우는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며, 장비는 과격한 목소리와 함께 몸으로 부딪혀 말을 쓰러트린다. 이렇게 영화에서 대사량으로 보나 액션의 강도로 보나 <삼국지: 용의 부활>과 비교해 유비, 관우, 장비의 비중이 적지 않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것은 분명 의도적이다. 그들 모두 사실상 이번 전편에서만큼은 손권보다 더 비중이 크다 해도 틀리지 않다.
<적벽대전>의 주인공은 주유와 조조라고 할 수 있다. 영화에서 개인의 감정을 토로하거나 고뇌를 담은, 자기만의 단독 신을 가진 인물은 오직 그 둘뿐이다. 이어 후편에서는 소교까지 더하여 그들의 삼각관계가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주유는 방대한 원작을 간략하게 처리해야 하는 가운데에도 꽤 긴 시간을 들여 물소를 잃어버리고 탄식하는 한 노인의 ‘일대일’ 민원을 해결해주는 자애로운 인품까지 묘사한다. 그리고 오우삼 영화의 영원불멸한 테마가 서로 다른 영역에 속해 있던 남자들의 연대와 우정이라면 <적벽대전>은 바로 주유와 제갈량의 만남에 관한 영화다. 그의 영화에서 선문답을 주고받으며 한숏에서 서로 마주보는 두 남자의 숏은 언제나 등장하는데, <적벽대전>에서는 바로 그들이 그렇게 등장한다. 막대한 규모의 동맹을 맺어야 할 두 사람이 그 어떤 서류 교환이나 토론의 과정 없이 오직 악기 연주만으로 서로의 마음을 읽는다. <윈드토커>(2002)에서 인디언과 백인이 각자의 악기로 합주를 하며 우정을 나눴던 장면을 떠올려보면 될 것이다. 알다시피 오우삼 영화의 주인공들은 하모니카건 색소폰이건 언제나 악기 하나쯤은 능숙하게 다룰 줄 안다. 오우삼 영화에서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는 방법 또한 그것이다. 그래서 그 과정에서 희생되는 것은 (오우삼의 영화라 익히 예상하긴 했지만) 제갈량의 탁월한 논리와 지략이다. 그게 바로 오우삼 영화의 남자들이 그 어떤 논리에도 구애받지 않고 서로 교류하는 방식이다. 그런 점에서 <적벽대전>은 흰 비둘기가 굳이 등장하지 않았다 해도 영락없이 오우삼 영화라 할 수 있다.
적벽대전이 벌어지기 전까지의 이야기
<적벽대전>은 실제 적벽대전이 벌어지기 전까지의 이야기다. 그 클라이맥스를 이루는 것은 바로 주유와 제갈량이 이끄는 연합군이 만들어낸 거북이 등모양의 미로로 적군의 퇴로를 차단하는 진법인 ‘구궁팔괘진’이다. CG로 만들어낸 대형 팔괘진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거기서도 신사로서 언제나 공명정대한 오우삼의 연출력을 엿볼 수 있다. 팔괘진을 구사하는 가운데도 그는 굳이 관우, 장비, 조자룡, 그리고 주유와 그의 부하인 감녕(나카무라 시도)이 마치 ‘서비스’를 하듯 개인적으로 화려한 액션을 펼치는 장면들을 거의 같은 비중으로 담아냈다. 반면 오우삼 특유의 슬로모션이 거의 없다는 것은 다소 실망스럽게 다가오기도 한다. 그 스스로 영향관계를 고백하기도 했던, 장철 감독으로부터 연유하는 액션장면에서 슬로모션의 미학은 그다지 찾아볼 수 없다. 몇몇 등장인물들의 등장신에서나 찾아볼 수 있지만 죽음의 순간에 이뤄지는, 그 죽음의 이미지를 무한정 연장시키는 슬로모션의 리듬이 사라진 것은 꽤 아쉬운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바꿔 말해 전편인 <적벽대전>에서 핵심인물들이 전혀 죽지 않았다는 것의 방증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본게임’은 아직 시작되지 않은 것이다.
오우삼의 팬들이라면 누구나 기다렸던 흰 비둘기는 후반부가 돼서야 등장한다. 물론 과거와 달리 CG로 만들어진 흰 비둘기를 보는 감회도 묘하다. 그리고 그 흰 비둘기는 적벽을 가로질러 실제 조조의 100만 대군이 주둔했던 ‘까마귀숲’까지 날아오른다. 겨울 개봉예정인 후편에 대한 기대를 달군다고나 할까. 주유는 손견을 섬기다 그가 죽은 뒤 손책을 섬겼고, 또 손책이 죽은 뒤에는 그의 동생 손권을 섬겼다(오우삼이 정말 존경할 만한 인물상이다). 하지만 적벽대전에서 제갈량과 함께 위나라 군대를 대파한 뒤로는, 유비가 세력을 확대할 것을 염려해 쓰촨 지방 공략계획을 낸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오우삼의 영화가 우정과 그 우정이 어긋나는 이야기 모두를 담고 있다면, 후편은 아마도 그 후자의 얘기가 될 것 같다. 지금 공개된 <적벽대전>이 <영웅본색>이라면 후편은 <첩혈가두>이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예감 말이다. 그리고 아버지와 형에 대한 열등감이 깊었던 손권과 소교를 향한 헛된 욕망을 지닌 조조는 아직 그 본색을 드러내지 않았다. 거대한 전쟁은 이제 막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