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소식]
“미국은 나찌와 다를 게 없다”
2008-07-23
글 : 정재혁
<에이블 데인저>의 폴 크릭 감독

폴 크릭 감독의 장편 데뷔작 <에이블 데인저>는 기발한 아이디어와 세련된 감각으로 완성된 잘 빠진 느와르다. 911과 음모이론, 감시라는 모티브가 보기좋게 들어맞고 40년대 할리우드 느와르를 표방한 영상은 단촐하지만 긴장감 있는 화면을 완성한다. CF와 TV 프로그램의 편집을 담당하다 조지 부시 대통령의 재선 소식을 듣고 영화 연출을 결심했다는 폴 크릭 감독. 느리고 신중한 그의 어투에선 현 미국 정치에 대한 불만과 걱정이 담겨있었다.

-911과 음모이론이 영화의 주요 설정이다. 어떻게 떠올린 아이디언가.
=조지 부시가 대통령에 두번째 선출되었을 때 매우 슬펐다. 미국이 돌아가는 상황이 마음에 안들었고 그 안에서 내가 할수 있는 게 뭘까 생각했다. 미국 정치의 어두운 면을 전하고 싶었다.

-911에 대한 당신의 의견, 음모이론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글쎄…. 나는 정답을 갖고있지 않다. 다만 내가 말 할수 있는 건 우리가 듣는 건 진실이 아니라는 거다. 인터넷에 여러가지 진실들이 널려있지만 이는 TV나 미디어를 통해 보도되지 않는다. 확실한 건 911 사태 뒤에는 미국 정부의 어떤 기관이 관여되어 있다는 거고, 또 문제는 그런 기관들이 정부의 감독에 의해서가 아니라 별개로 움직인다는 거다.

-남자 주인공은 토마스는 실제 인물이라 들었다. 어떻게 설정한 건가.
=커피숍 겸 서점의 실제 주인이다. 그 카페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고 책도 많이 볼수 있어서 좋아한다. 주류 문화보다는 언더 문화와 관련된 것들이 많다. 거기서 까페 주인이 쓴 911 사태에 대한 책도 읽었다. 느낌은 책이 매우 잘 쓰여졌고, 많은 조사를 거쳐 사실들을 증명하고 있다는 거다. 많은 사람들은 음모 이론을 말하는 이들을 광인 취급하지만 나는 그들은 결코 정신병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음모론이 사실이든 아니든 진실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그들은 영웅이다.

-흑백화면, 팜므파탈 여성의 등장 등 영화는 40년대 할리우드 고전 느와르를 연상시킨다.
=<에이블 데인저>를 시작하게 된 두 가지 이유가 하나는 911이고, 다른 하나는 느와르에 대한 오마주다. 느와르의 본질은 악이 그 세계 안에 머물러 있다는 거다. 동시에 인간은 즐거움을 가질 수도 있지만 사악함도 가질 수 있다는 걸 포함하고 있다. 현재 미국은 가장 사악한 형태의 사회를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게 2차 세계대전 때의 나치와 별 다를 게 없다고 본다. 다만 미국은 그들의 사악함을 교묘하게 숨기고 있을 뿐이다. 나는 <본 아이덴티티>와 같은 스파이 영화도 좋아하지만 단순한 오락을 넘어 현실관 관련된, 사람들이 현재를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여성 캐릭터 카샤는 전형적인 할리우드 느와르 클래식의 인물이다.
=그녀가 느와르 장르를 가져온 거다. (웃음) 남자 주인공이 현실 세계에 놓여있다면 팜므 파탈의 여성 카샤는 40년대 느와르 세계에 있다. 현재에 40년대 여성이 온다면 어떻게 될까, 그걸 영화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영화는 초반부를 감시 카메라의 프레임으로 시작한다. 감시라는 모티브와 911, 음모이론은 어떻게 묶일 수 있다고 봤나.
=대사 중에 “너가 브루클린에 산다고 감시되지 않는 건 아냐”라는 말이 있다. 잘 느끼지 못하지만 오늘날 사람들은 익명의 빅 브라더(Big Brother)에 의해 감시당하고 있다. 정말 무서운 건 현재 미국 사람들은 자유가 없어졌다는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거다. 911이 자유를 포기하는 이유를 제공해줬다. 미국의 법률은 누구나 언제든지 남의 전화를 도청할 수 있게 되어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잘못하지 않으면 본인과는 관계없는 일이라 생각하지만 그건 사실 틀린 거다. 나도 아마 이 영화를 만들면서 블랙 리스트에 올라갔을 거다.

-굉장히 적은 예산으로 만들었다고 들었다.
=천만 달러보다 훨씬 적게 들었다. 일단 HD로 작업을 했고, 이웃 집이나 내 지하실에서 찍었다. 아내가 프로덕션 디자인, 의상 디자인을 해서 예산을 줄일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또 내가 낮에는 TV 광고 편집을 하고 있어 평소 알던 사람들이 매우 싸게 색보정, 음악 작업, 그래픽 작업 등을 해줬다.

-CF 쪽 일을 했었는데 영화를 만들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영화는 항상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살면서 현실적인 이유로 꿈을 잠시 접을 때가 있지 않나. 비슷하긴 하지만 내 꿈과는 다른 일을 재정적인 이유로 했던 거다. 그러다 조지 부시가 대통령에 재선되면서 영화를 찍겠다고 결심했다. 한때는 미국을 떠나려고도 했으나 나를 위해, 미국을 위해 뭔가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기더라.

-현재 준비하고 있는 다른 작품이 있나.
=구상하고 있는 작품이 한편 있다.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에서 첫 두페이지를 썼다. 911이나 느와르 장르의 영화는 아니다. <스타워즈> 비슷한 게 되지 않을까 싶다. (웃음) 다음엔 내 돈이 아닌, 투자를 받아 영화를 만들었으면 한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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