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어 배러 투모로우] “술 마시는 대신 음악을 할 뿐이다”
2008-08-06
글 : 박혜명
사진 : 오계옥
다큐 <어 배러 투모로우 온 더 스트리트> 만든 2인조 밴드, 어 배러 투모로우
미인과 호라(왼쪽부터)

미대로 유명한 홍익대 거리에 가면 미술학도만큼 많은 게 인디뮤지션들이다. 다큐멘터리 <어 배러 투모로우 온 더 스트리트>의 주인공 ‘어 배러 투모로우’도 그 무리의 일부다. 러닝타임 60여분의 중편 다큐 <어 배러 투모로우…>는 홍대 주말 플리마켓과 라이브클럽 빵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1981년생 동갑내기 2인조 밴드의 색다른 거리공연 이야기다. 기타와 멜로디언, 스피커와 마이크, 앰프를 들고, 무대를 만들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다니는 미인(유민규)과 호라(장호영).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이란 이유만으로 춘천마임축제 현장까지 내려가 귀퉁이 공연을 벌이기도 하고, 쌈지싸운드페스티벌(쌈싸페) 현장에서 (‘숨은 고수’의 반대 의미로) “숨지 못한 고수”라는 팻말을 몸에 걸고 기웃거리기도 한다. 이들은 신밧드의 모험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어 즉흥 뮤지컬처럼 공연하고, 여자복 터진 친구를 향한 부러움을 구슬픈 가락에 담아낸다. 어 배러 투모로우는 처절한 헝그리 정신 대신 즐거움을 원동력 삼아 음악을 한다. 아직은 먹고살 걱정이 절박하지 않은 취업준비생들의 한때 놀이라고 해도 좋다. <어 배러 투모로우…>가 담고 있는 그들의 순수하고 유쾌한 열정과 진심은, 보는 이들에게까지 기분 좋은 전이를 일으킨다. 재치와 감동이 어우러진 인디음악 다큐를 직접 만들기까지 했다는 두 청년을 만났다.

-공연할 때 자기 소개를 어떻게 하나.
=유민규: 안녕하세요, 사회를 보고 기타를 치는 미인,
=장호영: 노래하고 기타치고 멜로디언 부는 호라입니다.

-어떻게 음악을 시작하게 됐나.
=유민규: 호라와는 고등학교 친구다. 그때부터 같이 노래도 만들고 공연도 같이했는데, 군제대 뒤 휴학하고 호라와 나, 그리고 지금은 없는 또 다른 친구와 셋이서 공연을 해보자고 얘기하고 학교 근처 카페를 빌려서 한 게 시초다. 아쉬운 것도 많았지만 좋았기 때문에 그 뒤로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연극제 같은 데 거리공연팀 오디션도 보고, 취업 준비 때문에 영어학원을 다니고 있었는데 학원 강의실에서 공연한 적도 있다. (웃음)
=장호영: 공연장이 아닌 곳에서 공연을 하고픈 로망이 있었다. 강의실이 의외로 공연장으로서 사운드가 좋다. 강사 목소리가 멀리까지 들려야 해서 울림이 좋은 편이다.
=유민규: 그러다가 불쑥 “홍대도 가볼까?” 해서 여기까지 오게 됐다.

-인디음악답게 음악이 독특하다.
=장호영: 롤모델이 없는 상태에서 시작됐다. 집에 그동안 만들어놓은 음악 갖고 공연 한번 해볼까 해서 시작된 거라.
=유민규: 악기도 집에 있는 걸 이용했다.
=장호영: 일단 밑천이 안 드는 악기.
=유민규: 초기엔 하모니카나 실로폰도 갖다 썼는데 멤버 하나가 결혼으로 탈퇴하면서 둘만 남게 돼 힘들어졌다.

-두 사람이 음악으로 만난 건지.
=장호영: 만났는데 심심해서 음악을 하게 됐다.
=유민규: (장호영을 가리키며) 얘가 피아노를 잘 쳐서 처음에 얘네 집에 갔을 때 둘이 같이 찬송가를 1절과 2절을 나눠 부르면서 놀았다.

-다큐는 어떻게 찍게 됐나.
=유민규: 내가 영화학을 전공했고, 졸업작품으로 원래는 밴드를 주제로 한 극영화를 구상했다. 근데 극으로 하려니까 어떤 (처절하고 헝그리한) 의도나 주제를 일부러 집어넣게 되더라. 실제로 밴드를 해보니까 꼭 그렇지도 않던데. 그래서 그냥 지금 하고 있는 나의 이 모습을 찍기로 했다. 원래는 6개월 정도 찍은 분량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고 했는데 보는 사람이 너무 힘들 거 같아서 위트를 넣게 됐다. 내가 멋있게 봤던 건 롤링 스톤스 음악다큐인데 롤링 스톤스가 아니어서인지 그런 다큐는 안 나오더라.

-밴드 이름은 어떻게 짓게 됐나.
=장호영: 여러 개 나왔다. ‘20세기 소년’도 나왔고 (팔뚝에 입술을 묻고 뿡~ 소리를 내더니) 이런 이름도 생각했다. 글로 쓸 수 없는 소리. 둘 다 영화를 좋아한다. <영웅본색>이 맘에 들었는데 그대로 쓰기가 좀 그래서 영문 제목을 썼다.
=유민규: 원래는 그것도 우리가 했던 첫 공연 제목이었다. 밴드 이름으로 결정하고도 지난해까지 고민했다. 길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이 헷갈린다. 어 배러 투데이, 어 배러 데이.
=장호영: (유민규를 바라보며) 그 얘기 해도 되나?
=유민규: 아, 얼마 전에 <영웅본색> 재개봉 홍보하는 데서 연락 왔다. 공연하러 와 달라고. (웃음) 어떻게 우리의 존재를 알았는지. 근데 장국영 노래 해달라고. (웃음)
=장호영: 일단은 거절했는데, 가서 우리 식대로 공연하고 올까 생각 중이다.

-수입은 어떻게 되나.
=장호영: 거의 없다.
=유민규: 지난해 홍대 플리마켓팀 랭킹 2위했는데. (웃음) 1위는 오브라더스란 팀인데 그 팀은 드럼도 있고 진짜 신나는 로큰롤을 연주했다. 우린 악기도 없고 둘이 난리를 쳐서….
=장호영: 버스킹(거리 공연할 때 팁 박스를 놓고 사람들에게 돈을 받는 행위)하듯 무대 한쪽에 팁박스가 있다. 근데 사람들이 돈 내는 걸 부끄러워한다.
=유민규: 우리도 어필해야 되니까, 수첩을 사서 거기 표지에 그림을 그려서 공짜로 나눠주기도 한다. 그러면 팁도 좀더 잘 걷히고 사람들도 좋아한다. 별거 아니긴 해도 하나밖에 없는 물건이고 그 순간을 공유했다는 의미 때문인 것 같다.

-어쨌든 두 사람은 음악을 하고 있는 취업준비생 아닌가? 앞으로도 계속 음악을 할 생각인가(장호영씨는 광고홍보학과를 졸업했다). 2009년 상반기 취업 시즌을 노리는 건가? (웃음)
=장호영: 음악을 직업으로는 안 하게 될 수도 있다. 그래도 어떤 형태로든 하고 있을 것 같다.
=유민규: 그렇게 어렵게 생각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좋아하면 계속 할 수 있는 일이다.
=장호영: 어른들이 술집 가는 거랑 비슷하지 않나 싶다. 우리는 술을 마시는 대신 이걸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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