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영화]
사회적 조건과 인간 의지의 대립을 탐구 <들개>
2008-09-09
글 : 이영진

<들개> Stray Dog
구로사와 아키라 | 일본 | 1949년 | 122분 | 흑백 | 아시아 영화의 재발견: 장르

강력반에 배치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참 형사 무라카미(미후네 도시로). 사격을 끝내고 퇴근하는 길에 그는 북적이는 버스 안에서 지급받은 권총을 소매치기 당한다. 무라카미는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었던 파마머리의 중년 여인이 전설적인 소매치기였음을 알게 되고, 종일 그녀의 꽁무니를 쫓지만 자신의 권총이 암시장을 통해 흘러들어갔다는 사실만을 전해듣는다. 연달아 발생한 강도 상해 사건에 분실한 권총이 쓰였음을 알고 괴로워하는 무라카미는 경험 많은 베테랑 형사 사토(시무라 타카시)의 짝을 이뤄 범인을 추적한다.

<들개>는 <주정뱅이 천사>와 함께 초기 구로사와 아키라를 언급할 때 항상 손꼽히는 영화다. 성격이 극명하게 다른 두 형사가 등장하지만, <들개>는 이들이 어떻게 손발을 맞춰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라는 질문에 그다지 관심을 두진 않는다. 보는 관객들도 선배들의 만류와 비난에도 불구하고 무라카미가 잃어버린 콜트 권총에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더 흥미를 느낄 것이다. 흔히 <들개>의 권총을 <자전거 도둑>의 자전거와 비교하곤 하는데, 죄의식과 책임에 짓눌린 무라카미의 강박적인 발걸음은 안토니오 부자의 안타까운 여정 보다는 더욱 복잡하고 실존적이다. 구로사와는 전후 일본사회의 짝패라고 할 수 있을 형사 무라카미와 범인 유우사를 통해 사회적 조건과 인간 의지의 대립을 탐구한다.

“참을 수 없을 만큼 더운 여름 날” 혀를 내밀고 헐떡이는 개를 클로즈업한 오프닝은 “길 잃은 개는 점점 미친 개가 될 수밖에 없다”는 영화 속 인물(들)의 운명을 강렬하게 암시하는 장면. 권총을 찾아 도박과 매춘 그리고 폭력이 난무하는 도쿄 뒷골목 풍경을 유례없이 긴 몽타쥬로 처리한 장면도 빈번히 회자되는 인상적인 장면이다. 실제 촬영은 아사쿠사, 우에노 등의 범죄 다발 구역에서 이뤄졌는데, 안전을 위해 미후네 도시로 대신 대역이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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