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21세기의 뭍으로 올라온 매혹적인 인어공주
2008-10-28
글 : 이현경 (영화평론가)
안데르센 동화 <인어공주>의 성공적인 변주 <나는, 인어공주>

19세기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공주>가 21세기 버전으로 새롭게 리모델링되었다. 러시아의 여성감독 안나 멜리키안은 용궁의 인어 대신 모스크바의 소녀 이야기로 설정을 대폭 바꾸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인어공주>가 원작의 단순한 변형이라면, 멜리키안 감독의 <나는, 인어공주>는 원작의 상징들을 차용한 창안이라 할 수 있다. 외양적으로는 디즈니의 <인어공주>가 안데르센의 동화와 더욱 가까워 보이지만, 내적 원리로 보면 <나는, 인어공주>가 원작의 의미를 훨씬 풍부하게 살려낸 작품이다. 멜리키안 감독은 데뷔작 <마르스>(Mars)에 이은 두 번째 작품 <나는, 인어공주>로 선댄스영화제 감독상과 베를린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하여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나는, 인어공주>는 동화의 모티브를 활용하는 방식에 대한 훌륭한 사례로 남을 만한 영화다.

일반적으로 동화 속 공주들은 초년고생을 좀 하더라도 우여곡절 끝에 왕자를 만나 행복하게 잘 산다. 그러나 안데르센의 <인어공주>는 해피엔드가 아니다. 인어공주는 왕자와 결혼하지 못하고 바다에 빠져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많은 사람들이 <인어공주>의 결말을 아리송하게 기억하고 있다. 아마도 그것은 공주가 등장하는 대부분의 동화가 행복한 결말로 마무리되는데다, 1989년 디즈니 애니메이션 <인어공주>의 결말이 해피엔드였기 때문일 것이다. 예쁜 화면에 흥겨운 음악이 넘실대는 애니메이션의 결말이 비극이라면 아이들이나 오랜만에 동심을 느끼려던 부모들이 찜찜한 기분으로 극장 문을 나설 테니 디즈니의 선택도 이해할 순 있다. 하지만 손쉬운 위안 대신 상당히 많은 상징적인 의미가 증발되는 부작용도 뒤따랐다. 용감하고 소신있는 인어공주를 결혼과 가부장제도 안에 서둘러 밀어넣는 결말은 인어공주를 정체성을 상실한 ‘귀여운 여인’으로 만들어버렸다. 결과적으로, 결말에 대한 혼동은 안데르센의 <인어공주>와 디즈니의 <인어공주>가 적당히 혼합된 내용을 기억하는 데서 비롯된다. 안데르센 원작의 결말은 기독교적인 세계관이 가미된 비극이다. 인어공주는 다시 인어로 돌아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스스로 포기한다. 사랑하는 왕자의 가슴에 차마 칼을 꽂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인어공주>에서 멜리키안 감독은 안데르센도 아닌 디즈니도 아닌 자신의 길을 찾는다. 일견 안데르센의 동화를 충실하게 현대적으로 번안한 결말로 보이지만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은 확연히 다르다.

알리사의 기원을 알려주는 탄생설화

인어공주와 별 관련이 없어 보이는 알리사의 탄생설화는 그녀가 물속에 기원을 두고 있다는 점을 알려준다. 알리사는 본래 엄마 뱃속에 있던 물고기였는데 아빠가 나타난 덕에 인간으로 태어났다. 물론 이 이야기는 미혼모인 엄마가 각색한 것이다. 이 부분을 보여주는 첫 시퀀스는 비너스 포즈를 취하고 해변에 등장하는 알리사 엄마의 처녀 적 모습 같은 재치 넘치는 화면으로 구성되었다. 캐나다영화 <레올로> 이후 가장 유쾌하고 인상적인 출생 스토리다. 홀아버지 밑에서 자라는 인어공주와 달리, 알리사는 홀어머니와 살고 있고 형제자매는 없다. 할머니들의 성격도 다르다. 인어공주의 할머니는 손녀에게 죽음과 영혼의 문제에 대해 알려주는 멘토 역할을 하지만, 알리사의 할머니는 별 말이 없다. 하지만 영화 뒷부분에 알리사가 할머니 이름을 팔아 사샤를 위험에서 구하므로 중요한 역할이 있는 셈이다. <나는, 인어공주>는 할머니, 엄마, 알리사로 이어지는 모성계보를 구성하여 디즈니판 <인어공주>의 가부장적 질서를 비틀고 있다. 신분이 달라졌으니 인어공주와 알리사의 일과도 다를 수밖에 없다. 인어공주는 하루 종일 바닷속을 헤엄치며 언니들과 노는 게 일이지만 가난한 알리사는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한다. 화장실 청소, 편지봉투 붙이기 등 갖은 일을 전전한 끝에 알리사는 가장 적성에 맞는 아르바이트를 찾는다. 그것은 샛노란 휴대전화나 거품이 흘러넘치는 생맥주잔 모양의 광고용 특수 의상을 입고 모스크바 거리를 활보하는 일이다. 알리사는 말없이 사람들을 관찰할 수 있어 이 일을 가장 좋아한다.

인어공주는 백설공주, 신데렐라, 잠자는 숲속의 미녀 등 다른 공주들과 성격이 다르다. 왕자가 올 때까지 잠만 자고 있거나, 독이 든 사과를 분별력없이 받아먹는 그런 온실형 공주가 아니라 스스로 왕자를 찾아나서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물속에 사는 인어공주와 뭍에 사는 왕자는 서로 가까이 할 수 없는 운명이다. 그래서 왕자가 사는 땅으로 가기로 결심한 인어공주는 마녀 우르술라를 찾아간다. 우르술라는 인어공주가 다리를 얻을 수 있는 묘약을 제조해주고 대신 인어공주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져간다. 원작에서는 큰 비중을 차지했던 우르술라가 <나는, 인어공주>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다리와 목소리를 교환하는 서사구조에서 우르술라는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지만 이미 다리를 가진 알리사가 등장하는 영화에서는 불필요하다. 하지만 우르술라의 마법이라는 모티브는 알리사가 갖고 있는 초능력으로 응용되고, 목소리 상실의 모티브는 거래의 대가가 아닌 알리사의 선택행위로 바뀐다. 6살 때 엄마가 다른 남자와 동침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은 알리사는 영원히 말을 하지 않기로 결심한다. 그 덕분에 알리사는 장애아들이 다니는 특수학교에 다녀야 했다. 17살이 된 알리사는 특수학교 뒤뜰에 심어진 사과나무 앞에서 문득 자신의 초능력을 발견한다. 그녀가 간절히 원하는 일은 이루어지는 초능력은 사샤를 위해 사용할 때 진가를 발휘한다. 알리사는 18살이 되는 날 운명적으로 사샤를 만나고 다시 말을 하기 시작한다. <인어공주>에서는 왕자를 만나기 위해 목소리를 잃어버리지만, <나는, 인어공주>에서는 사랑을 위해 말을 되찾는 걸로 전도된다. <인어공주>는 소녀가 여인이 되는 한편의 성장 이야기이기도 하다. 물고기 하체가 다리로 바뀌는 것을 소녀에서 막 여인이 되는 과정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처음 다리를 얻은 인어공주가 발을 땅에 내디딜 때 칼날 위를 걷는 것 같다고 묘사된 부분에서 성적인 상징을 읽을 수 있다. <나는, 인어공주>에서도 알리사가 성적 혼돈을 겪는 모습이 그려지지만, 알리사와 사샤의 관계는 성적인 것보다 유희적인 속성이 강하다. 결혼이 최고 당면과제인 왕자와 인어공주에게 성적인 문제는 본질적이지만, 외로운 알리사와 사샤는 친구가 되는 것이 먼저이다. 그래서 둘은 파인애플을 훔쳐 먹고 시체놀이를 하며 즐거워한다.

감독 고유의 해석력이 돋보이는 마지막 환영장면

인어공주가 사랑한 왕자는 결혼문제 말고는 근심걱정이 없는 잘생긴 청년이다. 아름다운 인어공주의 미모에 반하지만 결국 이웃나라 공주와 혼인하는 그는, 생각하기에 따라서 사람 볼 줄 모르는 인물일 수도 있고 미모보다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여자를 선택하는 현명한 남자일 수도 있다. 아마 그는 인어공주의 불행을 모른 채 백년해로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인어공주>의 사샤도 잘생기고 돈 많고 여자들에게 인기있다는 면에서는 왕자와 같은 급이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전제군주시대의 왕자는 노동을 할 필요가 없지만 자본주의 시대를 사는 사샤는 돈을 벌어야 한다. 달에 있는 땅을 분양하는 사업을 하는 사샤는 정확히 말하면 사기꾼이지만 그의 논리가 무척 설득력있다. 사샤는 알리사에게 달을 파는 것과 지구의 땅덩어리를 사고파는 행위는 다를 바가 없다고 항변하면서 어차피 발빠른 놈이 임자라고 주장한다. 왕자가 인어공주를 알아보지 못하듯 사샤도 번번이 알리사를 알아보지 못한다. 초호화판 저택에 살면서 매일 파티를 하는 사샤는 우울증에 시달리는 알코올 중독자다. 그래서 사샤는 저녁에 만난 알리사를 아침이면 까맣게 잊는 것이다. 사샤의 아침은 어항이나 쓰레기통에 던져진 휴대전화를 주워들고 커피머신에서 갓 뽑은 커피를 마시며 전날 밤의 흔적인 안주를 집어먹는 일로 시작된다. 비록 우울증에 알코올 중독이지만 사샤는 상당히 수완 좋은 사업가이기도 하다. 고객의 취향을 재빨리 파악해 타이슨 옆집을 추천할지 러셀 크로와 이웃하길 권할지 명민하게 대처한다. 고객이 계약을 망설이면 땅속 광물을 덤으로 끼워주는 임기응변 능력도 뛰어나다. 문제적인 현대판 왕자 사샤는 알리사가 제안하는 놀이에 순수하게 빠져드는 로맨티스트의 면모도 지녔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밤이면 술에 취해 자살을 시도하는 그의 모습은 고독한 현대인의 전형이다. 캐릭터는 판이하지만, 에릭 왕자와 사샤는 인어공주와 알리사의 사랑과 희생이 있어야 생명을 건질 수 있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나는, 인어공주>의 독창성이 가장 빛나는 부분은 알리사의 환영장면들이다. 환영에서 알리사는 노란 모래사장, 파란 바다, 보랏빛 하늘로 구성된 공간에 있다. 그곳에서 알리사는 발레리나 옷을 입고 있는 어린 시절 자신과 현실에서는 한번도 볼 수 없었던 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 즉, 알리사가 소망하는 세상이 그곳에 있다. <나는, 인어공주>에서 가장 인상적인 환영은 끝장면에 등장한다. 이 부분은 <인어공주>에 대한 멜리키안 감독 고유의 해석이 함축되어 있다. 안데르센은 물거품이 된 인어공주에게 기독교적 구원의 길을 열어주며 동화를 마무리한다. 비록 물거품이 되었지만 착한 일을 하면 영혼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현세의 육체보다 영혼의 문제에 천착하는 안데르센의 기독교적 세계관은 후기로 갈수록 더 강해진다. 후기작 <빨간 구두>에서는 세속적, 성적 욕망을 상징하는 빨간 구두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하는 카렌의 발목을 자르는 가혹한 형벌을 내린 뒤에야 그녀의 영혼을 하늘나라로 데려간다. 아이들은 동화를 통해 원형적, 무의식적 공포를 극복하거나 순응하는 방법을 배워나간다. 하지만 세월과 함께 무의식의 세계도 변해간다. 그런 의미에서 멜리키안 감독의 <나는, 인어공주>는 어른들의 원형적 무의식을 교정해줄 21세기 동화다. <나는, 인어공주>는 안데르센의 자기희생적인 종교적 교훈을 제거한 자리에 자기결정적이며 자기성찰적인 환영을 채워놓았다.

“동화의 플롯이 머릿속 내용과 이미지를 연결해줬다”

<나는, 인어공주>의 감독 안나 멜리키안 인터뷰

-주연을 맡은 배우 마샤 샬라예바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고 싶다. 마샤를 염두에 두고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썼다고 들었다. 마샤는 어떤 배우인가.
=많은 사람들이 그녀가 자신의 모습 그대로 연기를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마샤는 현실에서 ‘알리사’와 비슷한 캐릭터가 아니다. 사실 마샤는 이 역을 완벽하게 소화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 했다. 그녀는 굉장히 재능이 많은 배우다.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공주>와 <나는, 인어공주>가 상호 연결된 지점이 있다면 무엇이고, 서로 다른 점은 무엇인가.
=동화 속 내용은 영화에 깊숙이 내재되어 있다. 그래서 아마 발견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동화의 모티브는 분명히 존재하고 이야기에 도움을 주었다. <인어공주>는 어릴 적 가장 좋아했던 동화다. 동화의 플롯이, 내 머릿속에서 끝없이 펼쳐지는 세세한 내용과 이미지를 서로 연결해주었다.

-영화에서 사샤는 달의 사진을 촬영한 뒤 사람들에게 실제 달을 팔고 사람들은 정말 그걸 산다. 그런 기이한 직업을 설정한 구체적인 동기나 모델이 있나.
=사샤에게 특별한 직업을 주고 싶었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일전에 정말 달을 팔고 있는 에이전시가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는 항상 그 이야기가 영화에 쓰일 수 있는 재미있는 아이디어라고 생각해왔다.

-영화에 보면 옥외광고판이 자주 등장하고 거기에 적힌 문구가 영화의 흐름상 중요한 역할을 한다. 모두 실제 있는 광고들인가? 도시의 이미지나 이런 광고판을 통해 사회적 메시지를 담으려 의도한 것인가.
=시나리오를 쓸 때는 실제로 존재하는 브랜드의 슬로건을 사용했다. 그렇지만 영화에 사용해도 되냐는 허락을 구하자 대부분의 회사는 거절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슬로건과 광고판을 몇개의 단어만 바꾸는 식으로 자체 제작했다. 특정한 사회적 이슈를 다루려는 의도는 없었으나, 모든 영화에는 그 시대의 사회적 이미지가 담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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