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박그리나] 발레리나의 발을 닮고 싶어요
2008-11-06
글 : 박혜명
사진 : 조석환
<소년은 울지 않는다>의 박그리나

소녀는 울지 않는다.

한국전쟁 직후 전쟁 고아들의 삶을 소재로 한 영화 <소년은 울지 않는다>에서 유일한 소녀 순남은 꿋꿋하다. 지금보다 더 나은 현실을 꿈꿨다가 몸과 마음을 모두 다치고 말 그대로 ‘거지 고아의 삶’을 벗어나지 못한 채 원래 자리로 되돌아오지만, 순남은 울지 않고 앞을 향해 걸어간다.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와 깊은 눈빛. 영화에서 단연 돋보이는 인물 순남은 박그리나가 지금까지의 연기 생활을 통틀어 그의 마음 가장 깊이 새겨져 있다. “영화가 너무 아름답게 나왔어요. 보고 나서 계속 생각이 나고… 감사할 따름이에요. 제가 그렇게까지 순남이를 잘 표현했다고 생각 못했는데, 기자시사회 때 보니까 장면 하나하나 얼마나 공이 들어갔는지 다시 느껴지고, 그 덕에 제 모습도 더욱 순남이로 보이게 된 것 같거든요.”

1985년생 박그리나의 스물두살 시절이 온전히 녹아들어간 <소년은…>은 그의 다섯 번째 영화다. <령>(2003)으로 데뷔, <발레교습소> <연애의 목적> <바보> 등에 출연해온 박그리나는 드라마 <마왕>(2007)의 씩씩한 여형사 민재 역으로 얼굴을 많이 알렸다. 배우의 꿈을 깨닫기 전까지 십대 시절의 그는 특공무술·승마·수영·육상·발레 등 ‘온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유독 많이 했다. 밴드부 활동까지 하면서도 여전히 욕구불만을 느꼈고, ‘이러다 제정신으론 살지 못하겠구나’ 생각하곤 했다고 한다. 흐트러짐 없는 외양 때문에 누구도 그의 폭풍 같은 내면을 짐작할 수 없었다. 교실을 빠져나와 교정 벤치에서 잠을 잤고, 가출을 했고, 가끔은 주먹질도 했다. ‘내 자신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될 수 있길 바랐다. 그러다 고교생들의 연극 무대를 보았고, 박그리나는 자신이 있을 곳이 저 무대 위라는 걸 깨달았다.

어떤 배우가 되고 싶냐는 질문에 “착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모든 걸 내던지고 만신창이가 될 수 있는 마음이 착한 마음인 거 같거든요. 발레할 때 느꼈던 건데 발레를 하면 할수록 제 발이 자꾸 다치고 못생겨지고, 뭉개져요. 발레리나의 발이 배우에겐 마음인 거 같아요.” 시원시원한 태도와 말씨 사이로 그가 감추었을 오래된 비밀들이 엿보인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던” 날들 속에서 눈물 대신 그가 찾은 이 길이 어떤 미래를 그릴지, 더없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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