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성홍] “이건 난도질 영화 아니다”
2009-03-18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사진 : 오계옥
8년 만에 돌아온 <실종> 김성홍 감독

김성홍 감독은 처음에 많이 쑥스러워했다. 그럴 만도 하다. 2001년에 <세이 예스>를 완성하고 그 뒤로 소식이 없었으니 근 8년 만에 매체를 접촉하는 것이다. 모르긴 해도 잘됐으면 <스턴트맨>을 2005년쯤 개봉하고 또 다른 전환점을 시도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촬영을 80%나 해놓고 결국 개봉하지 못했다. 그때는 “솔직히 영화를 안 하고 싶을 만큼” 힘들었다. 하지만 김성홍 감독은 <실종>으로 조용히 돌아와 있다. 시간은 확실히 많이 흘렀고 영화판도 많이 바뀌었다. 그의 이름을 거꾸로 쓰는 이가 있는가 하면 누구냐고 과거를 묻는 기자도 있단다. 그는 <투캅스>의 각본을 썼고 <손톱> <올가미> 등 90년대 개성있는 호러 및 스릴러 장르영화의 길을 개척했던 사람 중 하나다. 한번 입이 터지자 지나간 시간을 묻어버리겠다는 듯 그의 말은 봇물같이 쏟아졌다.

-사진 찍으니 쑥스러운가.
=사실 어떤 경우가 있느냐 하면, 영화 속에 내가 나오면 기념이 될 것도 같고 해서 작품마다 한번씩 시도해본다. <실종>에서도 밤에 슥 지나가는 동네 사람으로 등장해봤다. 그런데 항상 찍어놓고 다 빼버린다. 내가 우선 낯간지럽고 영화 보는데 사람들에게 방해될 것 같고. 누가 알아보면 어떻게 하나, 그래서 긴장감 깨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 때문에. 히치콕이 하는 것처럼 슬쩍 숨겨놓고 싶은데 그것조차 보는 걸 잘 못 견디는 거다. (웃음)

-확실히 오랜만의 복귀작이다. 그런데 어쩌다보니 한국영화 최악의 시기라는 때에 복귀했다.
=뭐 요즘 유행하는 말 그대로다. 나는~ 했을 뿐이고. 나는~ 됐을 뿐이고. 이 시기에 개봉하고 싶었던 건 아니다.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다.

-좀 오래된 얘기지만 중도하차한 영화 <스턴트맨>은 어떻게 정리됐나.
=후유증이 컸다. 그건 본의 아니게 작품을 다 못하게 된 거다. 제작자가 사정이 있어서 내 명의를 사용했던 건데 그렇게 됐다. 잘될 거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는데 법적으로 다 돌아오더라. 그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나같이 사업 마인드가 없는 사람이 그렇게 되니까 더더욱. 강우석 감독 같은 사람은 타고난 사람이지만 나는 아니다. 사업하려면 부지런해야 한다. 그렇게 당하고 나니까 다 싫어지더라. 나 같은 사람은 감독 이외의 일을 너무 싫어해서 다른 건 못한다. 내가 운명론 같은 건 별로 안 믿는데 쉬어가라는 신호 같았다. 그런데도 영화를 다시 하게 된 이유는 그 고생을 한 사람들과 함께 다시 무언가 보람찬 결과를 얻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다시 하게 됐나.
=충무로 돈 없이 완전히 개인 투자다. 예산도 적다. 하지만 영화 봐서 알겠지만 할 건 다 했다. 오픈 세트도 지었고. 내가 우선 늘어나는 제작비를 원하지 않았고 거기에 맞춰서 이야기를 선택했다. 만약 크게 벌였으면 수습 못했겠지. <스턴트맨> 때의 악몽도 있고. 내가 늘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건 <쏘우> 같은 영화다. 언제나 그런 걸 꿈꾸어왔고 지금은 거기에 근접해가는 거다. 작지만 임팩트있는 영화 말이다. 그러다보니까 이쪽 장르로 가게 된 거고.

-본격적인 시작은.
=<스턴트맨> 후유증 지나서다. 그런데 좀 추스르고 보니 그때는 또 스타 시스템이 팽배해 있던 때다. 스타가 된 배우들에게까지 각본이 가지 않는 거다. 화가 났다. 사실은 스타들을 그다지 편하게 대하는 성격도 못 되고, 또 내가 만드는 장르와 앵글을 그들이 좋아할까 하는 걱정도 들기는 했다. 또 촌놈이라 그런가(웃음) 내가 낯도 좀 가리고. 여하튼 배우들이란 다 독특한 사람들 아닌가.

-문성근만큼 독특한 사람이 어디 있나. 그런데 주인공이다.
=그는 확실히 스타가 아니라 배우다. <실종>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쉽지 않다. 이 배우야말로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조선묵 대표와 문성근이 형동생하는 사이고 나도 예전 시네마서비스 시절에 좀 봤고. 힘들 줄 알았는데 기꺼이 수락해주었다.

-사실 배우 문성근의 얼굴은 좀 매서운 데가 있다.
=이렇게 서로 합의했다. 있는 그대로 가자. 음성도 일부러 바꾸지 말자. 설정없이 가자. 이게 더 리얼하게 가는 거다, 라고. 나는 꾸미는 영화 싫어한다. 꾸미는 영화는 <양들의 침묵> 같은 거다. 우리는 그거 아니다. 그거 잘못하면 사기된다. 문성근씨에게 이렇게 말했다. 만약 자기애나 자기 나르시시즘이 강한 사람이, 당신처럼 배우가 되지 못한다면 영화 속 인물처럼 안되란 법이 있나.(영화 속 살인마는 자기만의 예술적 감흥에 취해 있다-편집자) 나도 마찬가지다. 나도 시골 출신인데 그곳에서 계속 살았으면 나도 모르지. 그 모델이 나일 수도 있다는 거다. 한 가지 더. 기존의 영화들은 사건을 추리해가지 않나. 나는 그 스타일이 아니다. 반대로 간다.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 찍어보려고 했다. 사전 시사 해보니까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부담스러워 하는 면이 있는 것 같던데, 그건 내 영화가 낭만적으로 꾸미지 않아서일 거다.

-영감은 어디서 얻었나.
=2006년인가, 2007년인가 보성에서 한 노인이 연쇄살인을 한 사건에서다. 그 노인네가 현장 검증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는데, 그 사람 완력이 그렇게 셌다더라. 내가 가장 무서웠던 게 피해자들이 물속에서 살려달라고 할 때 그 사람들을 장대로 막 밀어넣었단다. 그 당시의 피해자의 공포. 아무리 고함쳐도 아무도 오지 않는 공포… 아 그건… 그때는 강호순 사건이 있을 줄도 몰랐다. 다만 이 사회가 변하지 않는 이상 분명 강호순과 비슷한 사건이 일어날 거라 예상은 했다. 그래서 강호순 사건 보면서 놀라지는 않았다. 나쁜 일이 너무 빨리 일어났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실제로도 영화를 볼 때 강호순 사건이 떠올라 심리적으로 더 공포스러운 면이 있다.
=캐릭터 분석을 할 때 창작하는 사람으로서 사회적으로 반감이 있다거나 자랄 때 무슨 문제가 있다거나 하는 걸 넣지 않았다. <실종>의 주인공은 그런 사회적 저항감이 아니라 이미 사이코패스다. 에필로그의 다른 버전이 있었는데 아마 그게 들어갔더라면 사실 강호순 사건과 더 가까워 보였을 거다.

-어떤 버전인가.
=복잡한 거리에서 어떤 젊은 사람이 서 있으면 카메라가 쫙 빠지면서 뭔가를 비추고 거기 실종자들을 찾는 사진이 다 떨어진 채로 붙어 있는 거다. 영화적으로 보면 의미는 그게 더 있을 것 같았지만 원래 내가 출발한 게 보성 노인이었기 때문에 일관성이 조금 부족해도 그걸로 에필로그를 대신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상한 소리를 한다. 강호순 사건하고 연관지어서.

-그러면 왜 지금 개봉하나. 지금 그 말은 득보다 실이 많다는 뜻인데.
=(펄쩍뛰며) 앞에서도 말했지만 우리는 그저 ~했을 뿐이다. 정말 이 말을 꼭 써주었으면 좋겠다. 도대체 무슨 소리들 하는 건지. 그 사건 충격이 좀 지나고 개봉하면 우리도 좋다. 그런데 어떡하나? 지금밖에 자리가 없다는걸. 비수기다. 그것도 제일 비수기. 우리는 개봉일자에 밀린 것뿐이고, 개봉했을 뿐이고, 나름 절박하게 이 시기에 들어간 것뿐이다. 내가 “틀림없이 이런 사람이 나올 것이다”라고 먼저 예상한 게 흠이 되는 건 아니지 않나.

-<실종>은 <세이 예스>의 백숙집 버전처럼 보이기도 한다.
=<세이예스>는 좀더 잘 만들 수 있었는데… 물론 박중훈씨가 아주 잘 해주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처음 내가 생각했던 대로 무명배우로 갔어야 했던 것 같다. 해외영화제에도 초청 많이 받았는데 화나서 안 갔다니까. 그런데 요즘 젊은 친구들은 내 영화 중에 좋은 영화로 <올가미>가 아니라 종종 이 영화 <세이 예스>를 꼽는다(웃음). 이번에는 <세이 예스>의 실패를 만회하려는 마음도 있었던 같다. 그때가 관념적이고 좀 애매한 살인이었다면 지금은 너무 알기 쉬운 이야기이지 않나.

-캐릭터는 어떻게 살을 붙였나.
=처음에는 살인마 문성근이 부르는 노래를 엘비스 프레슬리의 <러브 미 텐더> 같은 걸로 할까 했다. 이 사람은 자기 세계에서 왕이다. 혼자만의 생각이 있고 예술가가 되고 싶어하고. 작곡하고 그런다. 이때 어떤 영화들을 보면 클래식 같은 게 나오고 그런다. 그거 얼마나 우습나. 그래서 트로트로 바꿨다. 이 사람이 그런 노래를 부를 리 없다, 전부 자기가 할 수 있을 만큼의 나르시시즘인 거다.

-문성근에 비해 추자현은 자기 색깔을 부여받지 못한 느낌이다. 연기를 못하거나 열심히 안 한다는 뜻이 아니라 비중에서 그렇다.
=문성근이 살아 있는 것으로 보였다면 추자현도 잘한 거라고 생각한다. 문성근에 대한 리액션을 잘해주었다는 거 아니겠나. <사생결단> 보기 전에는 누군지도 몰랐다. 그 영화 보고 나서 이름을 외워뒀다가 물어보니까 탤런트도 했다고 하더라. 장점이 참 많은 배우다.

-영화 초반, 곧장 살인이 벌어진다. 시간 끌지 않겠다는 신호로 보였다.
=당하는 입장에서 보았다고 아까 말했는데 내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관객은 안 빨려들어갈 거다. 당하는 사람이야 늘 느닷없이 당하는 거다. 그때 갑자기 영화가 시작하는 거고. 영화에 컷 많다고 안 지루해지는 거 아니다. 빨려들어가게 하려면 테크닉이 있어야 한다. 시간이 빨리 갔다고 느끼게 하면 잘 찍은 것 아니겠나. 적어도 이번 내 영화가 그 정도는 할 거라고 생각한다. 이번까지는 뭔가 드라이하게 가고 싶었다.

-장르영화가 늘 그렇지만 어디서 묶은 매듭을 풀 것인가 하는 점은 큰 관건 중 하나다.
=<실종>은 굉장히 직선적이지 않나. 나는 미스터리 수법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 영화에 무슨 미스터리가 없다고 하는데, 없는 게 아니고 내가 미스터리를 안 좋아한다니까! 내 영화에서는 캐릭터와 시추에이션이 중요하다. 누군가가 죽거나 사는 순간에 이걸 어떻게 지루하지 않게 할 것인가. 그 경우 끝날 때까지 긴장이 안 늦춰지면 훌륭한 거라고 본다. 봐서 알겠지만 잔인한 장면 많지 않다. 이건 난도질 영화 아니다. 다만 나한테도 어떤 병적인 게 있을 거다. 나만의 공황 같은 거. 그게 이 영화에도 분명히 드러난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존경하는 감독이 김기영인데, 김기영의 <하녀>가 히치콕의 <싸이코>에 비교해서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본다. 그래서 실제로 오마주하는 장면도 넣었다.

-요즘 후배들 영화 보면 어떤가. 예컨대 <추격자>.
=굉장히 좋아하는 영화다. 잘 만들었더라. 내가 처음 이쪽 장르를 시작할 때는 기획조차 힘들었다. <손톱>(1994)을 하려고 할 때만 해도 왜 <투캅스>로 흥행한 사람이 이런 걸 하느냐, 다 말렸다. 영화가 아주 이상하게 나올 줄 알았던 거다. 그때 내가 충격을 준 거다(웃음). <추격자>가 되니까 나도 한다, 뭐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내가 <실종> 시나리오 다 쓴게 벌써 지지난해 12월이다. 그리고 나한테 그런 소리 하면 안되는 거 아닌가.

-앞으로도 이 장르를 계속할 생각인가.
=내 생각에 스릴러영화는 계속 나온다. 그리고 그게 맞는 거다. 배우를 몰라도 팔리는 게 스릴러 아닌가. 멜로드라마는 배우 모르면 아무도 안 산다. 하지만 글쎄 나로서는 앞으로 말랑말랑한 거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걸 해야 큰 배급사도 관심을 가질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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