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친구 그의영화]
[나의 친구 그의 영화] 정색하면 지는 거다
2009-07-02
글 : 김연수 (작가)
<히말라야, 바람이 머무는 곳>을 보며 지난해 몽골에서의 경험이 떠올라

술의 이름은 칭기스. 들판을 호령하던 그 호연지기 그대로 뜨거운 보드카. 대가족을 이끄는 주인아저씨가 나를 상석에 앉히더니 그 술을 한잔 내게 따랐다. 냉큼 마셔보니까 호연지기가 속속들이 스며드는 듯했다. 별로 씻은 적이 없었던 게 아니라면 칭기즈칸 시대의 유적지에서 발굴한 듯한 청동잔을 탁자에 내려놓으니 주인아저씨가 다시 술을 가득 붓고는 손가락 세개를 펼친다. 아무래도 ‘후래자 삼배’라고 말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통역을 쳐다봤더니 그게 맞단다. 닥치고 석잔을 원샷해야지, 손님 대접을 해주겠단다. 잔은 다시 정종잔 크기의 청동잔. 한잔 더 마셨다. 3분의 2 정도 손님이 됐더니,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 한잔까지 마시고 났더니, 목구멍 저편에서 뜨거운 호연지기가 솟구쳐 오르면서 제대로 된 손님 행세가 시작됐다. 그로부터 10분이 지나지 않아 나는 ‘그럼 그렇지, 재롱이라도 떨어야지 하룻밤 재워주지’, 그런 표정으로 앉은 사람들 앞에서 ‘천둥산 박달재~’를 부르고 있었다. 지난해 다큐멘터리를 찍으러 몽골에 갔을 때의 일이다. 그 장면이 방송됐다면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 나온 내 모습에 대한 평 따위는 웃으면서 넘겨버렸을 것이다. 이런 게, 바로 대인배의 호연지기였던가.

몽골 친구들 나와 별반 다르지 않더라고

몽골에 가서 내가 비로소 알게 된 건 그 사람들이 나하고 별로 다르지 않다는 기막힌 사실이었다. 그날 저녁, 술이 취해서는 염소의 뿔을 붙잡고 누가 힘이 센지 겨뤄보고 있는데 몽골인 통역이 나를 불렀다. 사장님, 사장님. 난 누가 나를 사장님이라고 부르면 지갑부터 움켜잡는 사람이다. 얼굴은 벌게진 채, 엉거주춤 다가갔더니 동네 청년들이 모두 모여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몽골인 통역은 꽤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그 친구들도 좀 놀아야 하니까 돈을 줘야지, 안 그러면 촬영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우리가 놀러온 건 아니었지만, 듣고 보니까 그렇기도 했다. 사실 일산 내가 사는 곳 옆 동네도 어디선가 촬영 오면 이만저만 텃세를 부리는 게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일단 나는 사장님이 아니라는 걸 거듭 주지시킨 뒤에 PD님을 소개시켜드렸다. 나는 작은 도시에서 컸기 때문에 동네 청년들끼리 그렇게 몰려다니면서 이른바 ‘삥’을 뜯고 노는 모습에 익숙하다. 말하자면 그건 세시풍습과 같은 고유한 전통이랄까. 그래서 흐뭇하기는 했지만, 고향 방문도 아니고 몽골에 와서 역시 우리 고향과 별로 다를 게 없구나 하고 생각하게 될 줄이야.

하지만 다시 생각하면 그렇다고 또 다를 게 뭐가 있겠느냔 말이다. 내가 몽골 전통 의상을 입고 나무 안장에 앉아 말을 타는 동안, 오토바이를 타고 온 이웃 사람들이 그 모습을 구경하고 있더라. 나무 안장 위에서 호들갑 떨고 하는 게 웃기더란 말이지. 나중에 그 모습이 방송됐을 때, 한국 사람들이 웃었던 포인트에서 몽골 이웃들도 웃었다. 역시 연예인들의 호들갑이란…. 영문도 모르는 몽골인들은 안장 위에서 사색이 된 나를 보고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냥 하는 얘기가 아니라 홉스굴에 가서 소수인종인 차탄족을 만났을 때 들었던 얘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홉스굴에 가면 관광객을 위해서 유목 생활을 버리고 사는 차탄족 일가가 있다. 그 사람들은 호수 옆에 차탄족 전통 게르를 설치한 뒤에 사진을 찍을 때는 얼마, 동영상은 얼마 더, 순록 한번 타는 데는 또 얼마, 이런 식으로 돈을 벌어서 산다. 그 집 아버님은 순록을 태워주고 어머님은 점을 봐주신다. PD님이 나를 가리키면서 물었다. 이 사람은 뭐하는 사람 같아요? 어머님이 나를 한번 째려보더니 말했다. 방송국에서 일하는 사람이네요. (어머님! 그게 무슨 인상비평, 아니 인상점치기랍니까!)

사장님 소리 안 들으려면 웃고 살자

그런 허술한 모습, 그러니까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지갑을 움켜쥔 손이 슬그머니 풀린다. 그때부터는 슬슬 장난기가 발동하기 시작한다. 말이 안 통해도 웃기게 만드는 방법은 충분하니까. 몽골어로 염소는 ‘야마’다. 외우기 싶지 않은가. 게다가 주위에 야마는 흔하게 보인다. 아이들을 모아놓고 염소를 가리키면서 외친다. 야마. 그러면 모든 아이들이 깔깔거리고 웃는다. 왜 웃는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한번 더 외친다. 야마. 다들 넘어간다. 그 다음에는 나를 끌고 다니면서 온갖 것들을 가리키며 몽골어를 가르쳐준 뒤에 따라해보라고 시킨다. 그걸 따라하면 또 웃는다. 그렇게 웃다보면 우린 좀 친해진다. 통역이 없어도 이름도 알고 나이도 알게 된다. 달리기도 하고 씨름도 하게 된다. 외국에서 지내다보면 아주 간단한 법칙을 하나 알게 되는데, 그건 정색하면 제아무리 많은 돈을 들였더라도 그 여행은 실패라는 점이다. 음식이 나왔는데 정색하면 지는 거다. 식은땀이 흘러나와도 웃으면서 먹는 사람이 승리의 여행자다. 지하철역에서 올라왔더니 동서남북 구분이 안된다고 정색하면 역시 지는 거다. 등골이 오싹해도 일단은 돌아갈 지하철역은 알고 있으니 다행이라고 여겨야만 한다. 제아무리 반바지에 샌들을 신고 선글라스를 끼고 있다고 한들 정색하고 서 있으면 현지인들은 호칭부터 다르게 부른다. 그러니까, 사장니임.

웃고 있는 한에는 우린 다 같은 인류라는 생각이 든다. 몽골에서 내가 제일 정색했을 때는 촬영을 위해 부득이하게 살아 있는 양을 잡을 때였다. 양의 다리를 묶은 뒤에 심장 부근에 칼집을 내고는 그 안으로 손을 밀어넣었다. 피 한 방울 낭비하지 않고 양을 잡는 전통적인 방식이었다. 양을 잡는 사람은 심장으로 통하는 핏줄을 끊은 뒤에 심장을 통째로 꺼냈다(고 들었다. 나는 보지 않았다). 내가 정색하고 고개를 돌리는 동안, 우리의 몽골인 친구들과 어린이들은? 침을 삼키고 있었다. 살아 있는 한, 양은 그들에게 연년토록 젖과 털을 주기 때문에 웬만해서 그들은 양을 잡아먹지 않는다. 일년에 한번 양을 잡아서 부족한 단백질을 섭취한다고 들었다. 그러니 그날은 특식이 나오는 날이었던 셈이다. 그날 촬영을 위해 잡은 양으로 가족들과 이웃들은 웃음꽃이 만발한 가운데 배가 터지도록 양고기를 먹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다들 신문지에 남은 고기를 싸가지고 갔다. 양 잡는 날은 봉 잡는 날인 셈이다. <히말라야, 바람이 머무는 곳>을 보니까 똑같은 장면이 나왔다. 하지만 거기서 염소를 잡는 네팔 사람들은 어째 정색한 표정이더라. 고기에 물렸나? 그럴 리가.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했던 이유를 이제 알겠다. 다시 말하지만 정색하면 지는 거다. 사장님 소리 안 들으려면 웃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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