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장쯔이] 평상시엔 나도 브리짓 존스 같죠
2009-08-26
글 : 강병진
사진 : 오계옥
정리 : 이주현
<소피의 연애매뉴얼> 배우 장쯔이

피부에만 닿아도 짜증이 치솟을 만큼 센 햇볕이 내리쬐던 날이었다. 인사동에서 모 연예프로그램과 거리데이트를 촬영한 장쯔이는 카페에 들어오자마자 소파에 드러누웠다. 세계적인 여배우가 널브러진 풍경이 난감했다. 이미 아침에는 한 패션잡지의 화보를 찍었고, 인터뷰 뒤에는 LG 대 롯데의 야구경기에서 시구를 할 예정이었다. 시구가 끝나면 극장으로 달려가 관객과의 만남을 가져야 했다. 솔직히 장쯔이는 더 많은 장소에서, 매체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해도 아쉽지 않은 배우다.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이라는 뜻이 아니다. 그처럼 고고한 태도가 어울린다는 얘기다. “맞다. 지금까지는 내가 생각해도 너무 엄숙하고 도도한 여자들을 연기했다. 하지만 <소피의 연애매뉴얼>(이하 <연애매뉴얼>)의 소피는 평범하고 밝은 여자다. 이번에는 관객과, 거리의 팬들과 더 가까운 곳에서 만나고 싶었다.”

그녀의 말대로 영화의 소피는 장쯔이가 연기한 여자들 가운데 가장 친근한 캐릭터다. 장쯔이가 양의 탈을 쓰고 코스프레를 한다면 어떨까. 깁스한 다리가 가려워 긁고, 오바이트를 하려다 삼키고, 엎어지고, 구르고, 웃고, 마스카라가 번지도록 눈물을 흘린다면. <연애매뉴얼>은 지금껏 치파오에 가려져 있고 칼로 경계되던 장쯔이의 또 다른 모습을 전면에 드러낸다. 피곤에 전 모습을 보자니 진짜 소피 같았다. 소파에서 일어난 그녀가 애타게 소리쳤다. “난 아이스 커피 마실래. 빨리 갖다줘!”

- 시구를 한다던데, 혹시 야구 좋아하나.
= 보는 건 좋아하는데, 한번도 직접 해본 적은 없었다. 야구를 봐도 주로 미국의 프로야구를 봤다. 중국에는 프로야구가 없으니까.

- 로맨틱코미디도 중국에서는 매우 생소한 장르일 것 같다.
= 한국은 코미디영화가 많으면 2주일에 한번씩 개봉한다고 들었다. 중국에는 아예 그런 영화가 없다. 그래서 나나 다른 중국 배우들이 표현하는 코미디는 다른 나라의 코미디영화와는 매우 다를 것 같다. 어쩌면 그게 더 신선할 수도 있을 테고.

-중국에서는 왜 이제야 <연애매뉴얼> 같은 가벼운 로맨틱코미디영화가 나왔다고 생각하나.
= 아무래도 이런 장르는 젊은 신인 감독들이 하고 싶어하고, 그들이 하기에 적합한 영화인데 중국에선 신인 감독이 쉽게 투자를 받을 수 없다. 그러면 결국 저예산으로 찍어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퀄리티에 문제가 생기지 않나. 모든 조합이 이뤄지지 않으니, 제대로 된 영화가 나올 수 없었던 것 같다. 닝하오 감독의 <크레이지 스톤> 정도가 최근에 성공한 저예산 코믹영화다. <크레이지 스톤> 이후 코믹영화가 조금씩 나오는 것처럼, <연애매뉴얼> 이후에는 중국의 로맨틱코미디영화도 계속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 <연애매뉴얼>은 중국 본토에서 만든 로맨틱코미디라는 점이 신선했다.
= 어떻게 봤나.

- 다른 평가는 제쳐두고 일단 배우 장쯔이만을 놓고 본다면 큰 결심을 하고 연기한 것 같더라. 새로운 얼굴을 봤다.
= 배우로서 너무나 듣고 싶었던 말이다. 배우란 항상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그런 말 들으니 기분 좋다. 이번에는 정말 밝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예전의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감독이 신인이라 투자를 받지 못하고 있더라. 나로서는 욕심이 있었기 때문에 직접 프로듀서로 참여하기도 했다. 내 도움이 없었다면 이 작품은 만들어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일단 화려한 궁중복장이나 치파오를 입을 필요가 없어서 편했을 것 같다.
= 당연히 무협영화, 고전영화에 비해서는 편했다. <2046>의 경우는 스타일을 만드는 데에만 하루에 3, 4시간씩 걸렸다. (옆에서 매니저가 5, 6시간이라고 정정) 아, 그랬던가. (웃음) 어쨌든 귀여운 모자도 쓰고 액세서리도 걸친 내 모습이 재밌고 즐거웠다.

- 장쯔이였기 때문에 신선하게 보이는 것 같다. 오바이트를 하려다 삼키고, 마스카라가 번지도록 울고, 깁스한 채 다리를 긁는 연기는 사실 한국 여배우들에게는 익숙한 모습이다.
= 로맨틱코미디가 많으니까 그렇겠지. 아무튼 지금 중국 관객의 반응이 좋다. 기존의 장쯔이는 자신과는 동떨어진 멀리 있는 인물이고 빅스타였는데, 이번에는 옆에 사는 친구 같기도 하고 자신들의 모습 같기도 한 듯하더라.

- 흥미로운 장면 중 하나는 안나(판빙빙)가 운동하는 헬스클럽에서 어설프게 춤을 따라하는 장면이었다. 당신은 6년간 무용을 했고 이전 영화에선 늘 무용, 무술, 연기를 완벽히 보여줬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지우고 싶어 하는 야심이 보였다.
= 하하하. 그런데 춤을 잘 추고, 액션을 잘하는 것보다 못하는 게 더 힘들었라. 춤과 액션이 내 몸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는 걸 알았다. 나도 모르게 내 몸이 제대로 따라하더라. (웃음)

- 예전에는 소피 같은 여자를 연기할 기회가 없었나? 아니면 그런 생각이 없었던 건가.
=적합한 작품이 없었다. 코믹 연기를 하는 데 자신감도 별로 없었고, 생각도 잘 안 해봤다.

-두려웠나.
=두려움이라기보다 이런 장르의 영화 중에 나에게 적합한 캐릭터가 담긴 시나리오를 본 적이 없다.

-한편으론 중국의 대작 영화감독들이 너무 사랑하는 배우라서 그런 게 아니었을까.
=음… 그건 아닌 거 같다. 어쨌든 이 작품이 끝나고 나면 더 많은 코믹 장르 시나리오가 들어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첸카이거, 장이모, 펑샤오강 등의 감독이 자신들의 영화에 당신을 출연시키면서 기대한 게 무엇일까 생각해본 적 있나.
=모르겠다. 아마 그 역할을 해낼 수 있는 힘이 배우에게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찾지 않았을까?

-배우로서는 기대한 부분이 있을 것 같다. 그 영화들은 모두 대규모의 글로벌 프로젝트였다. 글로벌 스타가 되기 위해 기대했던 부분은 없었나.
=그런 건 없다. 다만 배우로서 거장들과 일한다는 건 매우 편한 일이다. 그분들의 수준이 이미 상당하고, 연륜도 있기 때문에 배우에게 줄 수 있는 편안함이나 믿음이 있다. 나는 내 역할에만 충실하면 된다. 편하게 일할 수 있다. 반대로 신인 감독과 일하게 되면 내가 내 역할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주변의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거장들은 내 연기가 비뚤어지면 잡아주고 데려온다. 그래서 그런 감독들과 일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고정적인 이미지에 대한 답답함이 있지는 않았나.
=배우들은 항상 기존에 하지 않았던 새로운 역할을 하고 싶어 한다. 비슷한 역할을 너무 많이 하면 지겨우니까. 그런데 그걸 쉽게 바꾸지 못하는 것은, 관객은 한 배우가 무언가로 성공하면 그 캐릭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코믹한 연기, 우스운 연기를 했던 배우가 갑자기 엄숙하고 무거운 캐릭터를 연기하면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 배우의 마음과 관객의 마음이 일치하는 게 참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배우는 항상 고민한다. 이번에 소피도 기존에 내가 해왔던 캐릭터와 180도 다르다. 나로서도 엄청난 변화인데, 개인적으로는 변화를 잘한 것 같고 성공적인 것 같아 다행이다.

-할리우드에서 제의가 오는 작품들은 어떤가. 도전이 쉬운 편인가. 어려운 편인가.
=할리우드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내가 할리우드영화를 접하고 선택할 때, 조심하는 건 있다. 대부분의 할리우드영화에 등장하는 중국 배우나 아시아 배우들은 도둑질을 한다거나 어두운 쪽으로 묘사되는 캐릭터들이 많다. 그런 역할은 거의 거절하는 편이다.

-그렇다면 지금쯤 소피를 하면 되겠다 생각하게 된 변화의 계기는 뭔가.
=한꺼번에 온 거 같다. 생각, 타이밍, 기회가. 새로운 걸 원했고, 시나리오가 들어왔고, 읽으니까 너무 재밌었다. 마침 투자자도 없어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져 있지도 않았기 때문에 내가 만들 수 있었다. 모든 게 우연의 일치라고 할까.

-<연애매뉴얼>을 보면 한 시대를 풍미한 로맨틱코미디영화의 요소들이 집약됐다는 느낌이다. 제작자로서 다른 영화를 벤치마킹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진 않았나.
=그런 생각 안 해봤다.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 이 작품이 똑같은 장르의 다른 영화에 비해 굉장히 독특하다 생각했다. 당연히 이미 전세계에서 나온 로맨틱코미디영화가 많기 때문에, 그 영화에서 볼 수 있었던 모습이 <연애매뉴얼>에서 보여졌을 수도 있다. 감독이 일부러 성공한 영화의 장면들을 짜깁기하려고 했던 건 아니다.

-영화 속 베이징은 뉴욕 같더라. 로맨틱코미디의 글로벌 스탠더드를 지향한 것처럼 보였다.
=감독은 영화 속 도시를 사람들이 봤을 때 어디라고 규정할 수 있는 도시가 아닌 환상 속의 도시처럼 그리려고 했다. 영화 속 택시도 베이징에 없는 택시다. 영화를 위해 따로 만들었다.

-소피는 실제 당신 나이 또래의 캐릭터다. 그런 점에서 공감할 만한 부분이 있었을 텐데.
=소피라는 인물에 대한 이해도는 완벽했다. 그렇지 않았으면 이렇게 연기 못했겠지. 소피의 많은 부분이 나와 닮았다. 젊은 여성이 가지는 사랑에 대한 집착이라든가 어떤 일을 당했을 때 처리하는 방법이라든가 같은 여성으로서 공감할 만한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동년배 여성들에게 당신은 선망의 대상이다. 글로벌 스타고, 능력있는 애인이 있고, 인정받으며 일한다. 그런 당신이 실제로도 소피나 브리짓 존스 같은 일상을 경험해본 적 있을지 궁금하다.
= 장쯔이의 실재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나 또한 평상시 아무 할 일도 없고 완전히 풀어질 때, 릴렉스될 때는 그들처럼 편안히 나 자신을 놓는 경우가 있다. 나도 다른 스타나 유명 인사들을 보면 그들의 생각은 어떨까 호기심이 드는데 그들도 평상시 생활은 일반인과 똑같을 거다. 특히 여자들은 누구나 소피나 브리짓 존스 같을 때가 있을 수밖에 없다.

-리차드 커티스 감독과 함께 로맨틱코미디영화를 준비 중이라고 들었다. 영국 배우와 중국 여자 감독의 사랑 이야기라고.
=맞기 한데, 그 프로젝트에 문제가 좀 생겼다. 안 하는 건 아니고, 무기한 연기됐다.

-지금까지 대작영화 중심의 연기가 당신 연기 인생의 1기였다면, <연애매뉴얼> 이후를 새로운 2기의 시작으로 봐도 좋을까.
=지금이 제일 큰 변화의 시점이긴 하다. 또 계속 변화하고 싶다. 그런데 만약 다음 영화가 또 대작이면 어떡하나. (웃음) 어쨌든 앞으로도 로맨틱코미디를 계속 하고 싶다. 제의가 안 들어오면 직접 또 만들어볼까 한다.

-대부분의 여배우들은 어릴 때 밝고 명랑하고 사랑스런 소녀 캐릭터를 연기하고 성숙해가면서 여인을 연기한다. 그런데 당신은 그 반대다.
=하하. 사실 친구들은 지금 이 나이에도 그런 소녀의 모습이 나오냐며 신기해하곤 한다. 일단 항상 성격이나 마음가짐을 젊게 유지하려고 한다. 다행히 외모도 실제 나이보다 어려 보이니까 한동안은 더 어린 여자도 연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웃음)

통역 권효진

관련 영화

관련 인물